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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본문

Don Carlo

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neige 2014. 7. 2. 00:03



돈 카를로에 대한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n이버에 상세하게 나와있는 글이 많으니까 그걸 굳이 여기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덕질에 필요한 것만 골라서 이리 틀어보고 저리 파보고 하는 거지. 여기 써놓은 거 보고 어디 가서 그렇다더라 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mm 

실러의 희곡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돈 카를로는 크게 세 가지 버전이 있다. 초연작인 프랑스어 5막, 이게 너무 길어서 막차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임의로 편집 상연을 하는 비극이 벌어지자 베르디가 자를거면 내가 자른다고 손수 줄인 이탈리아어 4막, 그리고 아무래도 자른게 아쉬웠는지 완결판이다 내놓은 이탈리아어 5막. 물론 이 사이 사이에도 어느 곡은 빠지고 어디는 가사가 달라지고 하는 변화는 굉장히 많았다고. 정말 수정 보완이 필요한 다른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베르디가 손을 많이 댔던 걸 보면 아꼈던 것 같기도. 바리톤과 베이스의 아리아, 베이스-베이스, 바리톤-베이스 듀엣에 합창의 묵직함이 진한 음악도 물론 좋지만 실제 역사에 허구를 더한 스토리, 저마다 제 역할을 다 하면서 공감과 연민과 분노를 이끌어내는 캐릭터, 무엇보다도 다중의 삼각관계로 이뤄지는 팽팽한 감정선이 워낙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하니 재미있다. 

세 버전 중 어느 것도 사장되지 않고 취향에 따라 올라온다고 하지만 기존에는 4막 이탈리아 버전이 주로 많이 나와서 이제는 역사가 되신 분들이 참여하신 그러나 화질과 음질은 몹시 슬픈 영상물과 음반들이 4막이 많았고, 우리나라 국립 오페라단에서 작년과 올해 올렸던 공연도 4막 버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레미즈 팔 때는 위고옹의 은혜로 레미즈 라센도 올라오고 영화도 나오더니 돈 카를로 파니까 베르디옹이 긍휼히 여기셔서 국립 오페라단에서 또 해주는구나 신나서 이틀 모두 예매했다가 울면서 표를 놨지. 불순한 마음으로 파서 그랬나ㅠㅠ 아닌데, 내가 레미즈를 순수하게 인류의 빛이고 양식인 고전으로 팠던 건 아니잖아...? 

4막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반이나 영상이 적게 나왔던 5막 이탈리아판은 최근에 이쪽 공연도 많이 올라오고 영상물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13 잘츠부르크에서 올린 돈 카를로도 바로 이 이탈리아어 5막인데 구조적으로 1막 퐁텐블로 숲 백성들의 노래부터 4막 2장 로드리고의 죽음을 애도하는 라크리모사까지 같은 이탈리아어 5막 버전이라도 다른 영상물에서는 생략된 부분을 모두-3막의 발레를 제외하고- 넣었다는 일종의 완전판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내가 음악전공자도 아니고 오페라팬도 아니고 베르디덕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낚였을리는 없지. 






흔히 돈 카를로를 말할 때 약혼녀를 아버지에게 빼앗긴 비운의 왕자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건 사실 훼이크다. 실러의 원작도 그렇고 베르디의 오페라도 그렇고 진짜 주인공은 카를로의 친구로 소개되는 포사의 후작 로드리고. 그리고 진정한 비극의 삼각관계는 아버지와 아들과 새어머니가 아니라 왕과 왕의 아들과 후작. 

로드리고는 실러가 자신의 이상을 불어넣은 인물로 16세기 스페인에서 18세기의 자유를 말하는 인물. 이 자유주의자는 인류를 뜨겁게 사랑하면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하고, 어린 시절부터 왕자 카를로의 마음을 얻어 그 신념의 길잡이가 되어주다가 왕자가 가져올 황금시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왕 앞에서도 대담하고 솔직한 발언을 아끼지 않아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왕의 마음을 얻게 되고, 최후에 이르러서는 왕비 엘리자베타의 인정과 찬사까지도 받게 된다. 희곡 전체에서 가장 비통하고 절절한 사랑의 말은 카를로가 엘리자베타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라 펠리페가 로드리고에게 하는 뒤늦은 고백과 복수의 맹세. 

실러가 희곡을 쓸 때 처음에는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쓰다보니 로드리고와 펠리페의 관계에 마음을 두고 썼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인데 문제는 실러가 앞부분을 먼저 출판을 해버리는 바람에 수정을 할 수가 없었던 상황. 로맨스인줄 알고 앞권을 샀는데 뒷권을 마저 사고 보니 브로맨스였던 반전에 항의한 독자가 있었을 법도 하지만 실러가 직접 독자들의 의문에 답변한 편지글에는 그런 기록은 없다. 오히려 독자들은 정열적인 우정이 정열적인 애정만큼이나 감동적인 비극이었다는 감상을 전했던 모양. 실러는 이런 반응에 아니 독자 여러분 오해하셨나본데 로드리고가 카를로에게 가진 마음은 우정이 아닙니다 정성들여 반박했다. 목숨까지 내줬는데 우정이 아니면 뭐냐고? 뭐겠어. 이래서 고전이 좋다니까. 

베르디는 상대적으로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사랑을 부각시켰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러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고 오페라에서도 로드리고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어느 리뷰어가 오페라 돈 카를로를 한 줄로 요약하면 '모두가 로드리고를 사랑해'라고 했을까. 물론 카를로를 짝사랑하는 에볼리는 끝까지 로드리고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건 에볼리 같은 언니들은 친구와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맹세하는 로드리고같은 남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적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그런 거고. 대심문관도 나름의 방법으로 로드리고를 갖고 싶어했으니까 다섯 명의 주역 중에 네 명이 사랑하면 그리 사실과 먼 얘기도 아니지 않은가ㅋ 

하지만 원래 내 취향이 그런 이상주의자에 아름다운 주인공 취향은 아니라 희곡에서도 오페라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인물은 펠리페 2세. 세계의 절반을 다스리는 왕인데 돈줄이자 아버지 고향인 플랑드르에서는 연일 반란이 일어나고, 아들놈은 왕관과 아내를 모두 넘보는 것만 같고, 사랑하는 새아내도 아들을 사랑하는 것 같고, 신하들은 왕의 딸이 사실은 왕자의 딸인것 같다고 속살거리고, 종교재판관은 왕만 아니었으면 내 재판정에 세운다고 협박하는 상황.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신이 내려줬다고 믿은 사람, 유일하게 마음 준 단 한 사람이 사실은 아들놈이랑 심장이 묶인 사이라서 왕의 마음을 내치고는 왕 자신의 손에 죽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아들놈이 그걸 폭로하면서 당신이 그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다 감히 착각했냐고 비난하는데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당연히 펠리페 2세를 파는게 맞는데 덕질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의미를 가지는 것... 

2013 잘츠부르크 로드리고가 사람 홀리게 너무 잘했다 ( mm 






원흉은 마의 소굴 유투브. 레미즈때 유투브에서 PQ Stars 보고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 책장도 내 통장도 다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을 못 했나보다. 시대물로 보이는 셔츠 차림의 두 사람이 썸네일이라고 눌러보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자막도 없고 이탈리아어는 당연히 모르니까-솔직히 처음 볼 때는 이탈리아어인지 불어인지 몰랐음- 둘이 무슨 사이인지 왜 죽는지 왜 우는지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또 뭐라는지는 모르겠는데 세상에 이거 뭐야 무서워ㄷㄷㄷ 오페라가 이런 거였나ㄷㄷㄷ 싶었음. 내가 봤던 영상은 돈 카를로 4막 2장 로드리고의 죽음에서 라크리모사까지의 발췌본.














로드리고가 죽고 난 뒤 도착한 펠리페는 아직 진실을 모른 채 로드리고의 계획대로 아들에게 화해를 청하고 그런 아버지에게 카를로는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서 로드리고가 자기를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는 사실을 폭로해버린다. 그래서 로드리고의 희생은 헛일이 되는 거. 테너한테 뭘 시키면 이래서 안 되는건데...( mm


그 폭로로 자신이 사랑한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걸 깨달은 펠리페가 누가 내게 이 사람을 돌려주겠는가 ,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후회와 고백을 쏟아내고, 카를로는 네가 꿈꾸던 세상의 영웅이 되게 해달라고 죽은 로드리고한테 매달리고, 스페인 귀족들은 우리는 뭐하러 살아있나 죽은 자가 왕의 심장을 훔쳐가버렸는데 애통해하는 게 라크리모사. 


여기까지가 내가 처음 접했던 13잘츠 돈 카를로. 

헌신적인 관계성의 어필에다가 이어지는 묵직하고 절절한 노래와 어둡게 내려 깔리는 합창에 가사를 모르고 봐도 이거 뭐야...했는데 찾아 보니까 13잘츠버전이 아니라도 오페라 자체도 재미있고 원작은 더 재미있더라. 이게 정말 카를로-엘리자베타의 금지된 사랑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안 파고 무사히 넘어갔겠지만 불행히도 결국에는 로드리고라는 이상적인 인간을 둘러싸고 왕과 왕자가 싸우는 정치사극이어서 낚이고 말았던 것. 접한 시점에 바로 DVD가 나왔으면 그냥 계속 13잘츠만 봤을텐데 발매일이 두 번이나 연기되면서 지난달에야 나와준 관계로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돈 카를로 영상과 음반과 출연진들-로드리고역의 햄슨이라든가 햄슨이라든가 햄슨...-의 다른 출연작까지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튼 일단 형식적 주인공인 카를로는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로드리고는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길래 왕자는 로드리고를 품에 끌어안고 왕관도 필요없다고 울고 왕은 또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고백을 하고 스페인 귀족들은 저놈이 왕의 심장을 훔쳐갔다 우리는 헛살았다 하는가는 다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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