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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적벽가 곱씹을수록

neige 2015. 9. 21. 01:26
뒤끝 쩌는 것 같지만 이것저것 리뷰랑 기사들 찾아봤는데....
그냥 군사님이 역대 최고로 예뻤음ㅎㅎㅎ 관조커플 공식이라죠ㅎㅎㅎ하고 흘려보내야지 하고 있었는데 
칭찬일색이라 좀 한숨이 나와서...

애초에 적벽가를 가지고 영웅보다 민초의 한을 다룬다 운운했을때 이미 우려했다고 했잖음

근래 나오는 작품들, 특히 역사물에서 민중 운운 백성 운운하는 거 굉장히 많은데 열중아홉은 사실 다루는 방식이 몹시...후지다 
슬프게도 이번 창극 적벽가도 그 후진 시선을 고스란히 안이하게 가져다썼음

백성이란 희생자이며 불쌍하고 애달프고 가엾게 여겨야할 존재라는 그거
위로해주기 보다는 같이 울어주겠다던데-
일단 그 연출의도대로 극이 펼쳐졌는가를 보면, 글쎄다

예를 들어서 조자룡의 놀라운 활약으로 넘어간 당양싸움을 보자.
원작은 조자룡의 무용을 눈부시게 그려내지만 그렇게 강조하는 대로 백성의 한을 강조하는 연출이라면 여기서 창의 내용 그대로 백성들을 배경으로 다뤄버리는 것 너무 안일하지 않나? 

출의 말에서 이 영웅들의 활약에서 숨돌릴 곳이 아이를 구하러 사지로 들어간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는데 물론 이 대목에서 조장군이 최고로 멋있는 것과는 별개로 연출이 정말 그렇게 원작의 틀과 흐름을 깨엎어서라도 그리고 싶은 게 민중의 이야기였다면, 부각시켜야 할건 자룡의 눈부신 활약이 아니라 죽어가는 그 많운 백성들 가운데 아두만이 구원받고 미부인의 희생만이 주목받는다는 거 아니었을까? 자룡이 아두를 구한게 불쌍한 아이, 한 생명이어서였나? 아니다. 주군의 아들이라서였지. 그럼 아예 대조적으로 주군의 아이가 아니기에 구원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같은 죽음이라도 미부인처럼 시선조차 받지 못하고 뭉뚱그려진 다른 어머니들을 보여줄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여긴 또 원작대로 따라가놓고서 에필로그에서 아이 보여줄 일이 아닌 거지. 진짜 고통받는 백성의 한을 보여주는 게 연출의도 였으면 무의미한 장판교씬의 제창대신 그런 고통을 제대로 다루는게 낫지 않나? 민중이 주인공이라는 의미가 무대 앞에 나와서 떼창한다는 의미는 아닐 거 아냐.

오강귀도 대목도 그렇다. 한 화면에서 벌어져야할 사건의 시차를 억지로 만들어서 원작을 깨면서-그래, 사실 내가 결정적으로 욱한 건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대작을 만들어냈다는 자화자찬때문임. 재미있는 부분 좋아하는 부분 열에 아홉은 못 건졌고만 무슨ㅋㅋㅋ-뱃사공들을 강조할 거였으면 거기서 뒤늦은 뱃노래를 부르는게 최선이었나? 배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재물 손괴를 당한 사공의 운명은? 서성정봉이 정말 으름장대로 사공들을 오강의 물고기밥으로 만들었다면 그들이 적벽의 첫 희생자인거 아닌가? 아니면 하다못해 자룡이 활을 쏘고 다급하게 쫓아가던 서성정봉을 곤경에 빠뜨리는 순간을 목격하는 사공들이 큰 싸움을 앞두고 벌어지는 내부의 싸움을 비웃거나 한탄할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냥 시키는대로 노만 열심히 젓는 민중을 뭐 새삼 돈들여 다룰게 있다고. 뜻밖의 횡액에 휘말려 황급하게 재촉하는 사공들의 심리는 날아가고 그냥 왜 1막 엔딩인걸 알려주려는 올림픽 개막식 같은 파워풀하고 멋진 제창입니다-이걸로 바뀌어야 했던 건가.

그리고 적벽개전. 이거 진짜ㅋㅋㅋㅋ
모던하거나 추상적인 무대 좋다 이거야. 나 모던하고 추상적인 거 좋아함. 근데 모던과 추상을 떠나서 시선이 이렇게 엇나가면 연출의도가 안 살아나는 거 아님? 적벽가 처음 들었을때 적벽개전 부분에 놀랐던 게 그냥 장강을 대낮같이 밝힌 큰불-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고 심지어 숨겨둔 비상을 까드득 깨물어 먹고 물에 빠져죽는 갖가지 죽음을 하나하나 읊어줬기 때문인데 그 사람 하나하나를 보는 원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대에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비상 물고 죽는 걸 보여달라는 게 아니라 부채로 가려지고 스러지는 그 움직임이 원작이랑 시너지 효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거지. 시너지는커녕 완전 따로 놀았는데 연출의도대로라면 적벽개전은 주인공인 민중이 죽어가는 그 중요한 순간이잖아.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민중을 다루는 방식이 몹시 후졌다는데 있음.
그리고 더 슬픈 건 적벽가 자체가, 이렇게 후진 시각으로 소비되는 작품이 아니라는 거지.

농담으로 관조가 대세커플이라 화용도에 힘이 들어갔다고 했지만 그건 블로그에서나 하는 말이고 
애초에 왜 화용도가 인기있을까?

연출이 배제시킨 이유대로 영웅담이어서? 관공의 고결한 인덕이 드러나서?
아무리 동아시아에 관빠가 창궐해서 왕부터 나서서 사당을 지어올렸대도 그래서 화용도 대목이 인기 있었던건 아님.
화용도에서 그려지는 건 단순히 한 영웅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협천자영제후하던 최고의 권력자가 목숨 하나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온갖 옛정을 다 끄집어 내가면서 빌고 매달리는 순간이다. 저 위에서 비단옷 두르고 점잖게 계시는 분들도 목 떨어지는 게 두려운 건 우리나 매한가지라는 통쾌한 추락의 목격. 그 순간을 영웅담이라 빼버렸어요 하는 건 너무 게으르고 피상적인 해석 아닌가?

명창에게 맡길만큼 중요하게 잡은 새타령 내용이 뭐였나? 죽어간 병사들이 새가 되어서 조승상을 원망하는 것.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징징거림이 아니라 아주 섬뜩하고 무서운 변용 아닌가?
일개 병사가 죽고나서 감히 그 죽음의 원인인 까마득히 높은 윗전을 비난하고 있는 거다. 살아있을 당시의 이들은 부모, 자식, 아내가 그립고 전쟁이 싫었어도 울고불고하는 것은 자기들끼리였다. 살아남은 자는 병사점고를 거쳐 한바탕 그 높으신 분을 까내리고 놀려먹을 수 있었지만 죽은 자들은? 그냥 울며울며 고향으로 날아갔다는 게 적벽가의 새타령이 아니잖아. 죽어서야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자기를 밝히면서 조승상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서슬퍼렇고 선명한 원래의 백성의 목소리를 울음소리로 퉁쳐놓고 왜 안일하게 죽어서 불쌍하잖아, 같이 울어줄 존재가 필요하잖아 거만을 떠는 시선으로만 봤어야 했을까?

새타령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렸는데 그 밑밥이 되는 조조패주부터 군사점고 대목까지는 또 어땠나. 화용도를 뺄 수 밖에 없었는데 군사설움대목 하나만으로는 그 백성들의 한이 드러날리 없으니 군사점고를 넣어주기는 해야해서 조승상의 꿈으로 넣었는데, '꿈'이라는 게 문제인거지. 꿈의 주인은 꿈꾸는 자 본인이고 조승상이라는 필터를 한 차례 거친 비현실이되면 그 신랄한 조롱이 그냥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예민하신 조승상의 불길한 예감으로 무뎌지는 거 아닌가? 진짜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싶었다면 불길하고 어수선한 꿈 자락 속의 허상이 아니라 가장 치욕스러운 그 순간을 똑바로 바라보는 실재하는 민중을 다뤘어야하지 않나? 

애초에 적벽가는 소비되기를 영웅의 이야기로만 소비되지 않았음. 그랬다면 조승상 희화화에 공을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들였여야 할 이유가 없음. 민중들이 자기들의 한을 푸는 건 주저앉아 아이고 내 신세야 우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까마득히 높은 분들을 조롱하고 데굴데굴 굴려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드는 방법도 있었고 적벽가는 그런 방식으로 후련함을 찾아 소비되던 작품임. 

주저앉아 우는 백성뿐만이 아니라 무너지는 윗전들의 추태를 알고 눈 똑바로 뜨고 비웃는 백성들이 그려지는 작품이고 그걸 즐기던 작품인데 이걸 뭘 새삼 새롭고 놀라운 건 발견한 척 영웅 말고 백성 이야기할게요 해놓고 가련한 백성들아-로 해석해버렸으면서, 정작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건 내다 버렸으면서 뭐가 역대급 최고의 무대고 판소리를 오롯이 살린 명품 연출이란 말인가. 민중 민초 백성을 말하는 대부분의 역사물이 오글거리고 아 됐어 그만해 집어쳐 싶은 건 백성보다 더 튀어나와있는 것, 그 굽어내려다 보는 시선을 가진 주체, 이렇게 가엾고 불쌍한 바닥을 굽어볼 줄 아는 나<- 이것만 보이고 정작 백성, 민중에 대한 진정한 이해도 존경도 연민도 없기 때문인데 그쪽으로 아주 전형적이었단 말이야.  왜 백성이 민중이 무섭다는 걸 다 보고 있다는 걸 비웃을 수 있다는 걸 생각을 안 하고 안 보여주는 건데? 시민혁명 다 겪은 지금에 와서 어떻게 백성 보는 방식이 조선시대보다도 후짐? 백성이 개도 아닌데 이름만 불러주면 그걸로 아이고 좋다 고맙다 하고 그만일줄 아나. 연민할 존재로 보는 것과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 사이에 얼마나 넓고 깊은 차이가 있는데 언제까지 너네 불쌍해 불쌍한 거 알아 우쭈주해주면 그걸로 새로운 시각이고 구태를 버린 현대적인 해석이라고 쳐줄거야. 

명색 국립글자 붙은 극장에서 역시 국립글자 붙은 단체가 작품을 올리는데 많은 어른의 사정이 있었을 거고, 솔직히 인선 역시도 그래서 애초에 기대를 놓고 갔는데, 그런데도 해오름에서 걸어내려오면서 왜 우리나라 오페라 연출을 외국에서 불러오는 지 알겠네, 어차피 골라볼 만큼 오페라 다양하게 올라오지도 않는데 다음에 이 연출로 보게되면 음악만 봐야겠네 생각하고 내려오는 기분이 어땠겠나. 오죽했으면 아냐 그래도 좋았던 걸 기억에 남겨놔야해 좋았던 거 좋았던 거...허허허 군사님이 역대 최고 미모에요 허허허로 애써 가리고 왔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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