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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Miserables

Stars

neige 2011. 11. 25. 00:24

카디프 토치우드 본부 밀레니엄센터에서 있었던 25주년 투어 공연 중 얼 카펜터의 Stars에서 오케스트라가 오르간 연주를 하는 걸 듣고 생각나서

레미즈에 발목이나마 담그게 된건 올 4월쯤에 빌 어거스트의 레미제라블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였는데 뮤지컬 레미제라블 
OST를 들어본 건 작년 11월쯤이고 완역본을 읽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OST를 듣기 시작한 건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좋다던데 그럼 이왕 결제하는거 앨범 전체 결제하자 싶어서 듣게 된 거고, 완역본은 OST 듣고 다니다 보니 내가 원작은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은데 마침 찾아보니 동서판이 할인중이었다는 이유. 그래도 그때는 이제야 제대로 원작을 읽었네 수준의 뿌듯함과 영감님 수다 너무 길다는 거랑 헑하게 무겁고 무섭다는 느낌을 가졌지 이걸로 덕질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원래도 프랑스를 썩 좋아하지 않았고 프랑스혁명은 대혁명이고 7월혁명이고 간에그래서 혁명의 적자는 애저녁에 죽었고 그 서자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남아 1차대전을 낳았다더라 수준이어서 그닥 경외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뮤지컬도 경감님 독백은 흐음...이런건가 수준이었고 원래 목적했던 DYHTPS 말고 끌린 노래는 Bring him home이랑 신선조!의 히지카타 부장님이었던 야마모토 코지가 마리우스역이었을때 부른 Empty Chairs at Empty tables가 이런 노래였구나하는 정도로 관심은 가라앉았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서 휴일에 EBS를 틀었다가 무서운 영화를 보고 말았던 거다. 자베르가 코제트랑 눈 맞아서 둘이 손잡고 핑크핑크하게 춤추고 노래하다가 발장 앞에 무릎 꿇고 장인어른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안 주면 님 체포ㅋ하는 이야기였다면 차라리 AU로 보여서 발장은 뒷목을 잡고 마차를 집어던질지언정 보는 나는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텐데. 원작에서 받은 느낌들이 아예 잊혀졌으면 모를까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런 전개에 그지없이 상큼한 그 결말이라니.

대체 그 많고 많은 레미즈 2차는 다 저런 거냐 싶어서 검색을 돌리니 딱 경감님처럼 생긴 배우가 마이크 앞에 서있는 영상이 있더라. 1차 충격은 가사를 대충 흘려들어 발장이 코제트 손잡고 물통 들어다주면서 밤길 무서워하지 말라고 목동마냥 별님들 이야기라도 해주나보다 생각했던 Stars가 경감님 넘버라는 거. 2차 충격은 위고선생님 여기 보이세요? 경감님이 책에서 걸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ㅇ<-< 

그렇게 단박에 낚여서 이전까지는 관심도 없었던 뮤지컬을 돌아보고 DVD를 질러대고 CD를 구하고 포럼을 헤매고 유툽을 방황하고...결국 돌고돌아 다시 원작을 파고 있으니 이 모든 삽질의 계기는 Stars와 PQ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이 없었으면 울면서 원작 다시 읽고 거기서 끝이었고 적금의 목적도 달라졌겠지.  
 
별을 보고 그들의 변함없는 질서를 칭송하면서 발장을 잡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Stars는 원작에는 없는 대목이고 웨스트엔드 레미제라블의 원조격인 프랑스 오리지널 버전에도 없는 노래다. 이 노래로 자베르라는 캐릭터가 뮤지컬만의 광휘를 입고 새롭게 그려지면서 주인공 발장과 나란히 서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가히 신의 한 수. 노래 자체로도 아름답고 가사도 옳지는 않으나 뮤지컬의 자베르답고 거기에 잘 부르면 더 쓰러지게 좋은 노래인데다가 대체로 자베르 역의 배우들은 Stars는 잘 부르는 편이다. 랩수준으로 격하게 빠른데 멜로디는 엄연하게 있어서 숨차기 그지없는 최후의 독백에 비하면 배우의 역량을 그래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넘버. 10주년에는 없는 연출인데 25주년에는 Lord로 시작하는 부분에서 경감님이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한다.

그래서 문 떡밥이 하나. 

어린 자베르는 어디서 자라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이걸 정확히 알려면 18세기말 프랑스 교정시설의 복지체계를 알아야하는데, 거기까지 가자니 자료 찾기가 막막하고 귀찮으니 적당하지는 않지만 현행법하고 비교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출산을 교정시설내부에서 했을 경우 18개월까지는 시설 안에서 양육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적절한 보호인이나 행정관청에 아이를 넘겨야한다. 적절한 보호인의 경우 대체로 친척인데 부모 어느 쪽을 보든 그런 적당한 양육자를 찾아 아이를 맡기기는 어려웠을 부류라는걸 생각해보면 어린 자베르는 시설로 갔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파리에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버려진 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있어서 일년에 5500명정도의 아이를 수용했다니 감옥 안에서 태어난 아이도 비슷한 툴롱의 시설로 갔을 것이다.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는 약간의 양육비와 함께 유모에게 보내져 저임금 노동자로서 사회의 밑바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그나마 밝은 미래고 떠돌이공연패나 거지 무리에게 '빌려져' 구걸에 동원되거나 결국 부모와 같은 범죄자로 남게 되는 것이 대다수의 결말.

그래서 툴롱의 오래된 수도회들을 찾아보다가 발장이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던 수도회에 생각이 이르렀다. 동서판에서는 툴롱의 감옥에 있는 학교가 이뇨랑띤느의 수도사들이 경영하는 학교라고 나온다. 성인 이름치고는 미묘해보이는 이뇨랑띤느라는 수도회를 찾았다. 네이버에는 결과가 없다. 구글도 마찬가지로 없다. 이냐시오를 프랑스 사투리로 읽어도 이뇨랑띤느는 안 될 것 같은데 거기다 띤느라니 어쩐지 여성형 같기도 하고 아 젠장 원문이 뭐야 최소한 영역본이라도 찾아보자-> Ignorantin friars란다. I 가 대문자로 쓰였으니 무식한 수도사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뒤져보니 Jean-de-Dieu 수도회 수도사들의 별명이란다. Jean은 요한이고 Dieu는 갓, 하느님이다. 아,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였구나. 허탈하다. 이렇게 쉬운 걸 두고 이뇨랑띤느가 뭐야 이뇨랑띤느가 원어발음은 이뇨랑탕에 더 가깝게 들리더만ㅇ<-<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의료와 복지를 위해 활동해 온 수도회다. 별명 자체도 라틴어를 가르치지 않는 수도회라서 생긴거라는데 아이들과 빈민의 교육에도 힘쓰고 있는만큼 툴롱의 감옥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죄수들을 위해 학교를 열었다는 게 납득될만한 성격의 수도회로 현재는 의료봉사를 주로 하고 있는데 혁명기에도 자선활동을 하고 병원을 세우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고 자베르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시설에서 자랐어요!라는 건 비약이고 당시에 이런 활동을 하던 수도회가 많았을테니 거기 중 어디 한 군데서 자랐을 수도 있겠다 싶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크리에잇을 얹어 같은 수도회에서 학교도 운영하고 고아원도 운영해서 여기 수사님 두어분쯤은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감옥에서도 죄수들을 가르쳐서 둘을 모두 제자로 두었다고 하고 싶지만, 사실 이건 시기가 안 맞는다. 발장이 세상에 복수할 마음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40대였고 이때의 자베르는 28, 29살이라 같은 수도회 소속의 고아원에 있었다고 해도 다 자라서 나간지 10년도 넘었을 즈음이다. 굳이 엮자면 그때까지 쭉 툴롱의 간수로 일하고 있어서 전에 자기를 가르쳤던 수사님이 받아들인 새 제자가 24601이라든가는 가능할수도 있겠다만 너무 멀리나간 크리에잇이라는 느낌. 40살에 경위가 되는 승진속도를 고려해보면 이때쯤에는 이미 교정시설 떠나서 현장으로 가 있어야 할 것도 같으니 연결고리가 있다쳐도 새삼 옛 은사님 찾아올 타입도 아닌 경위님이 알리는 만무하고. 시기상 어느 수사님은 20여년의 간격을 두고 글을 가르쳤던 두 어린양을 기억을 할 수는 있겠다만. 둘 다 귀엽지는 않은 제자였겠네. 

아무튼 글은 쓰고 읽을 줄 알고 책은 좋아하지 않지만 닥치는대로 읽어 아주 무식하지는 않다-는 원작의 설정에 근거해 본다면 최소한 프랑스어 읽기 쓰기 교육은 받았다는 건데 아직 초등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의 이런 기초교육은 수도회에서 제공했으니 원작에서도 이래저래 수도원에서 뭔가를 배웠을 법은 하다. 그때에도 수도회에서 교육을 제공하는 이유는 어린양들의 복된 미래를 위해서는 아니고 선교가 목적이었으니 교리문답이나 당시에는 라틴어로만 가능했던 기도문도 배우기는 했을거고 혁명을 거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교회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나 성직자에 대한 순진할 정도의 맹목적인 신뢰를 배운 것도 아마도 거기에서.

애초에 수도회 떡밥을 물게 된 건 이미 말했듯이 뮤지컬때문이다. 원작의 경위님은 향수에 나오는 그루누이가 자랐던 보육원 비슷한 곳에서 자랐다고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기도하는 Stars를 듣고 있으면 뮤지컬의 경위님은 100% 어려서 엄격하고 중세적인 종교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을것 같단 말이지. 도둑이고 집시인 부모가 그런 공고하고 견실한 종교관을 물려주지는 않았을테니 수도회 소속의 시설에서 그랬지 않았을까, 어른이 될 때까지 쭉 거기서 자라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유년기의 일부를 그 시설에서 보냈고 그때 배운 종교관과 선악관이 평생가치관의 출발점이 되지는 않았을까라는 느낌이 든다. 

당시 고아원의 실태를 생각해보면  비슷한 출신인 아이들이 뭉쳐있는 속에서 쉽게 또래다운 자잘한 죄에 빠질 수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겠지. 그래서 이 아이는 죄악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뼈에 새기면서, 자신과 부모의 죄악을 평생 씻어야한다는 부담감을 등에 지고 하얗고 말 잘 듣는 어린양이 되려고 애썼을 거고, 그래서 주어진 의무와 처벌에 모두 순응하고, 주일이면 근로기준법이나 연소자노동보호법이 없는 당시의 노동현실이 허락하는 한 교회에 가서 오르간이 울리는 가운데 기도했을거고, 그 또래 아이들이 밀초와 고해실의 어둠과 첫영성체에 대해 가지는 향기로운 환상대신 본격적으로 죄와 고해성사와 보속과 지옥불에 대해서 무거운 심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법도 하다. 키다리아저씨에서 빌려 오자면 굶주린 채로 아무도 없는 부엌에 쿠키단지를 옆에 두고 혼자 있게 했다고 해도 절대 그 입가에는 쿠키 부스러기가 묻어있지 않았을 아이였겠지. 
 
오리지널 런던 버전에는 Lord let me find him 이하가 Scarce to be counted, Changing the chaos,
To order and light으로 계속 별의 질서를 찬양하는거라 원작이랑 가까웠는데 그걸 기도하는 가사로 바꾸더니 성호를 긋고 이제는 오르간 반주까지 얹었다. 오르간 반주 자체는 경건하고 차가운 돌냄새나는 성당 분위기가 나서 좋기는 하고 가사랑도 어울리기는 하고 원작공인 화염검을 든 대천사 미카엘이니 기도 좀 한다고 캐붕까지는 아닌데 이런 식으로 뮤지컬에서 자베르의 신앙심을 더 표현해주면 해줄수록 마음이 복잡해진다. 

신앙심 깊은 자베르라는 설정은 앙졸라스의 혁명의상인 사라진 바오렐을 애도하는 금장식 화려한 빨간조끼 같다. 뮤지컬만의 캐릭터 재해석이고 그게 원작하고는 좀 다른데 나름 괜찮은 방향으로 더해진 변화라고 양보해줄 수는 있다. 문제는 이러다가는 추락 부분에서 깃털 산산히 부서져 떨어지는 날개라도 겹쳐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 이렇게 절실하게 기도하고 법과 함께 신을 모시는 원칙주의자가 인간의 법만 어긴게 아니라 자살이라는 대죄를 범한다. 그대로 세느강 차가운 강물로 뛰어드는게 아니라 자기가 노래한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는 기분. 설마 그걸 노린건가?  

25주년 기점으로 뮤지컬 연출에도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데 자세한 건 안 찾아봤으나 지금 자베르를 맡고 있는 해들리 프레이저의 Stars에도 같은 부분에 오르간 연주가 들어가 있는 걸 봐서는 쭉 이렇게 갈 모양이다. 아무래도 서역에서는 뭔가에 맹목적이고 금욕적이고 가차없는 캐릭터라면 광신도스러운 면도 넣어줘야 이해가 쉬워서 그런가, 그래서 폴 베타니가 영화 자베르 물망에 올랐었나 싶기도 하고. 여튼 자베르의 신앙을 강조해주는 건 여기까지가 딱 한계치라는 느낌이다. 더하면 그건 뭔가 다른 캐릭터가 될 거니까. 것보다 이왕에 바꿀 거면 자베르 퇴장 방법이나 좀 어떻게 손을 대주지. 쓸데없이 사실주의적인 연출을 넣어서 흐르던 눈물이 급 말라버리는 기분인 그거 좀 안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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