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의 적벽과 함께 꽤 오래 기다린 느낌인데 드디어 방영.
제작비 문제로 이미 방영 전에 판권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기저기에 팔았다는데 국내 방영 정보는 하나도 없고 해서 어떻게 보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대륙의 서비스란 호기있는 것이라 공홈에서 로그인 없이도 다시보기가 되더라. 화질 좋고 광고도 없다. 오오 대륙의 기상. 한글 자막은 없지만 간체 자막에 덕심을 더하니 아주 외국어는 아니고 가끔은 옛날에 학점만 따고 까먹은 초급중국어 문법이나 단어가 생각지도 않게 떠올라서 도움을 주기도 해서 볼만하다. 아니, 사실 아랍어 자막에 러시아어 더빙이라도 챙겨서 봤을거다...
오프닝은 나름 하이라이트 부분을 모아서 세피아톤으로 보여주는데 솔직히 화면 답답해ㅠㅠ 새로 찍어서 색감도 깔끔하던데 노이즈를 너무 강하게 줘서 그닥 임팩트있는 오프닝은 아니다. 돈많이 들인 전쟁장면을 넣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어차피 두고두고 나올거 주요인물이나 좀 오래잡고 훑어줬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면서도 이건 이 장면 이건 이 장면 끼워맞추고 있더라.
+오프닝 가사야 뭐 대하 사극 가사답고 처음 볼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장면 하나하가 다 마음 아파...
처음 오프닝을 볼때만 해도 이러니 저러니해도 들뜨고 신났는데
그리고 의외로 여몽이 오프닝에도 나왔구나 우왕
문득 사마씨의 진나라가 사랑을 못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고생끝에 통일은 했는데 태평천하를 못 만들어서 그런 탓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오프닝 후 삼국지라면 당연히 따라오는 천하정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가차없이 황건적 부분은 커트. 보통은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하진 주살, 보복으로 십상시 살해, 난장판 속에 동탁 등장으로 끌고나가는데 다 쳐버리고 동탁이 이미 상국으로 앉아 권력을 틀어쥔 상태로 등장.
낙양 장락궁으로 가는 구도는 영화 <적벽>하고 크게 다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뭐 딱히 달리 시작할 필요도 없겠지만 예고편에서 하도 봐서 두근거림은 적었음. 미술팀이 <영웅>, <연인> 작업을 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어두우면서도 화려하다. 세트는 확실히 84부작보다 돈과 인력을 들인 티가 나서 눈은 즐겁다. 하지만 몰입도를 생각하면 <와신상담>의 화면이 좋아서. 어둡지만 그편이 좀더 촛점이 맞춰진다고 해야할지 삼국의 화면은 화려하기는 한데 눈앞에 그냥 쫙 펼쳐주는 느낌이라서 몰입도가 좀 떨어지더라. 아무튼 신을 신고 칼을 차고 천자까지 일어나는 경의를 받으면서 퇴조하는 동탁이나 잠깐 보인 불만을 삭이는 헌제의 표정. 끝나자 우르르 신을 신으러 나가는 신하들과 그걸 돕는 시종들이 소근소근 왕윤의 생일을 빙자한 초대를 받는 부분도 좋더라.
이런 시작의 장점이라면 역시 조조의 부각이 쉽다는 점. 동탁의 재채기 한 번에 떠는 조정을 보여주면서 조조를 등장시킨다. 자막이 없는 관계로 정확한 대사는 알 수 없지만 신하들이 모두 몰려나간 빈 조정에서 신을 신으며 내시의 턱을 들어올리며 무언가 나직나직 말하는 조조는 격한 동작 없이도 시선을 모은다.
+다시 봐도 소공공-하고 부르는 조조님은 멋지시고도. 나 무시하니? 하고 나직나직 묻는 조조님 앞에 황망하게 엎드릴 수 밖에 없는 어린 내시 심정도 이해가 갈만큼. 원외와의 대화는 오, 역시 이래서 자막을 봐야하는 거였어 싶다. 유비님의 등장도 상당히 처참하게 바닥에서 시작하는데 그나마 조정에서 효기교위까지 하고 있는 조조에게 원외가 시키는 혹독한 자아비판은 원외의 조카인 원소가 조조를 보는 시선까지도 짐작이 갈 정도다. 그 모욕을 웃는 낯으로 당당하게 저 조조는 환관의 자손이라 천하니 어찌 귀한 분들과 어울리겠습니까하고 답하는 조조도 대단. 어쩌면 동탁이 조조를 아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해가 가고. 원외가 자신을 깔아뭉개는 소리를 웃는 낯으로 받아주다가 정작 문제의 핵심인 동탁의 재채기 소리에도 벌벌 떠는 귀하신 분들의 작태를 비판하면서 이제야 존비의 차이를 명확히 알겠다고 일침을 놓는 대사도 멋지다. 약자인 조조에게는 오만하게 굴고 강자인 동탁에게는 뒤에서 욕할 뿐 비굴하게 기는 신료들의 태도를 찌르는 아픈 소리. 출신 하나만으로 사람으로도 안 보는 꽉 막힌 원외의 굳은 머리는 이미 난세에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구세대라는 점에서 조조가 확실하게 난세를 살아갈 신세대로 보인다고 해야할까. 1회에는 아직 안나오지만 조조가 왜 유비에게 반했는지가 이런 부분에서 이해가 간다. 돗자리 장수나 환관의 자손이나 당시 조정대신 명가 출신에게는 마찬가지로 비천한 쪽에 속하니까.
조조역을 맡은 진건빈은 스틸만 봐서는 너무 풍채가 좋아서 조조라니 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적벽>의 살랑살랑 자태만으로 사람을 홀린 작고 아름다운 장풍의 조조를 본 뒤라 더더욱 곰같은 조조라고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짧게 헤헤하고 내뱉는 웃음소리부터 범상치가 않다. 원외의 성질을 긁어놓고 헤헤히히히하고 웃음을 날리고 가버리는 조조라니 얼굴은 곰인데 곰안에 여우가 있어요. 찾아보니 이분 연기베테랑에 중희 교수님인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
동탁의 눈에 들어 상국부를 드나드는터라 초대를 받지 못한 채 처들어와 말석에 앉았다가 울먹이는 사람들을 비웃고 끌려나고 나와서 쥐새끼들이라고 욕하는 부분의 조조는 아직 투박한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좋았고. 번쩍거리는 게 칠성도가 아니라 사실은 초라한 검이 칠성도라고 내주는 부분은 나중에 왕윤이 혐의 벗는 장치로 등장하는 듯.
삼국지의 다른 인물들이 그렇듯 조조의 이미지도 상당히 전형적으로 잡혀있지만 사실 동탁 즈음의 조조는 답지않게 무모한 행동가로서의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의 조조가 딱 그렇다. 초대받지도 않은 왕윤의 잔치에 쳐들어가는 장면이나 진궁 앞에서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부분이나 그 머리좋은 야심가 조조가 한 일로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암살미수지만 그만큼 나라꼴은 개차반이고 그 원인도 명백한 상황에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들끓고 있는 모습이 젊을적 기도위로 있으면서 건석의 숙부를 장살시켜버린 사건에서 이어지는 연관성이 보여서 조조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한몫 해준달까. 그리고 목숨을 건 도피에서 얻은 깨달음을 실행에 옮기고 18로 제후를 움직이는 능력 역시 본내추럴 촉빠인 나도 객관적인 스펙을 놓고보면 조조가 삼국 군주 중 제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유능함을 보여주고.
+ 동탁과 대화할때 조조는 자신을 臣으로 칭한다. 여포가 자신을 末將으로 칭하는 건 무장이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낮추면서 쓰는 말이니까 당연한데 臣이라고 칭하는 건 조조가 동탁을 단순히 상국 이상의 존재로 받들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칭호가 아니려나. 거기다가 소하에 한신에다가 동탁을 빗대는 추켜세우기는 또 대단. 똑똑해 말잘해 귀여워 동탁이 어이구 우리 이쁜 맹덕♡ 상태인것도 이해가 충분히 간다. 그리고 조정 대신들은 뒤에서 내 욕만 하지 하는 일도 없다는 말도 어쩐지 반박은 못 하겠고. 그나저나 마음에 안드는데 확 걔네 국 끓여먹을까? 에이 걔네 고기 셔요 맛 없어요 하는 대화는 동탁이 한 일이 있다보니까 무섭다. 황약사가 말 안 들으면 다리 부러뜨린다고 하는 협박이랑 비슷한 맥락에서.
처음 등장한 여포는 배우 자체가 어리고 귀여운 느낌이라 메뚜기에 익숙해진 눈에는 아무리 예고와 스틸을 봐왔어도 움직이고 웃고 말하는 걸로 충격. 뽀얀 얼굴에 뾰족뾰족한 병아리 입으로 말하는 여포라니 내가 동탁이라도 적토마 주면서 업어왔을듯...이 아니라 아무래도 초선과의 로맨스를 부각시키기 위한 캐스팅이지 싶다. 그에 비해 초선은 영리하기는 한데...뭔가 부족해...아무튼 예고나 스틸을 보면 여포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모양이니까 어찌될지는 봐야 알겠지
+여포는 다시 봐도 예쁘다. 맨날 호로관 바퀴벌레만 보다가 이렇게 귀엽고 예쁜 여포를 보고 있으니 다시 봐도 눈이 다 훈훈하네. 검정 갑옷에 빨간 전포로 컨셉잡은 의상팀은 상 좀 받아야 할듯. 여포는 보자마자 조조를 맹덕이라고 자로 부르고 기껏 높여준다는게 맹덕형 정도고 벼슬이나 당대 권력이나 성격으로 봐도 여포가 조조에게 존댓말하는 번역보다는 하게체 정도가 어울렸을 것 같지만 맹덕형, 내가 고른 말인데 타봐요-하는 하윤동여포는 좀 많이 귀엽다. 초선보고 벙해져서 굳어지는 것도 귀엽고 말도 바로 못하고 침삼키고 숨쉬고 여포 초선으로 이런 (시작만은) 보들보들설레이는 로맨스를 하려고 이렇게 귀여운 여포를 만들어냈겠지 그러니까누나라고 불러보렴 봉선아. 왕윤의 자결결심은 역시 지레 겁먹은 거였구나. 그만큼 동탁이 무시무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고 왕윤의 최후랑도 연결이 되겠네. 절박한 상황에 닥치면 극단적인 해결책을 찾는 타입이었을지도.
그리고 문제의 도원결의....다시 봐도 웃긴데 황건적 부분이 없어지다 보니 삼형제의 결의의 목적이 사라진 셈이라 감독이 줄일 수 밖에 없었다는 해명이 있던데 조조를 띄워주기는 해야겠는데 도원결의가 안 나오면 항의가 쏟아질테고 해서 내놓은 해결책인지 모르겠지만 일관성도 없고 오히려 굴욕이라서 나중에 재편집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 없겠지. 세트는 굉장히 예뻤다 내내 어두침침한 장안의 궁과 상국부, 조조가 도망가는 들판만 나오던 중이라 분홍빛 도화 가득한 공간은 예뻤는데 편집 어쩔거야 정말...
+이 부분이야 뭐 워낙 잘 아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도원결의라 자막을 보고 따로 덧붙일 감상도 없다. 나름 전설에 남을 도원결의.
진궁은 84부 삼국지의 조연들에게 하도 데여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조연 수준이 이정도라면 앞으로 나올 수많은 인물들에게 기대해도 좋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안심. 잡혀온 조조를 긁어대면서 조조의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거나 조조한테 경도되어서 조조를 따르겠다고 할때의 진지한 표정이나 앞으로 여포와의 조합이 어찌될지 궁금하다.
+어라, 진궁이랑 조조랑 만난 적이 있구나. 거기다가 벼슬 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명함 들고 온 진궁을 요새 조정 꼴이 말이 아니니까 관리하지말라고 조조가 쫓아낸 인연이었는데 진궁의 서운함은 그게 아니라 왜 날 안봐줬어 조아만!이라니 일단 좀 웃고. 조조 잡아가면 상금이 내 375년치 월급, 중모현 1년치 양식이라는 진궁 계산은 다시 봐도 즐겁다. 백근도 안 되는 너한테 그만한 상금을 걸다니 상금 건 놈도 눈이 삔듯-하고 비꼬는 말도 알고 나니 즐겁고. 진궁이 개그캐릭은 아닌데 조조와의 첫만남은 어쩐지 즐거워. 정사랑은 다르지만 연의에서 진궁을 조조와 이렇게 엮은 나관중은 진짜 천재.
자객으로서 칼 하나로 동탁을 죽이려고 든 걸 쉬운 길이라고 표현하는 조조. 진궁도 그렇고 왕윤이나 조정신하도 이미 18로 제후를 모으고 있다고 나오는 원소도 동탁을 죽이면 난세끝 한실중흥시작-이라고 보는데 반해 조조는 동탁 하나를 죽인다고 수습될 상황이 아니라는 걸 꿰뚫고 있다. 그래 이게 다 동탁때문이다-라고 하기에는 이미 늦은때이기는 했지.
진궁이랑 조조가 달리는 길...주유가 마지막으로 형주 보려고 간 길이랑 같아보인다...? 나중에 확인해 볼 것. 원소가 동탁을 불러들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동탁을 불러오자고 할 때 동탁의 위험성을 제일 먼저 간파하고 반대한게 조조였단다.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조조가 자신감에 찬 게 아니라 씁쓰레하게 느껴지는 건 하진이 조조보다는 사세삼공 명문출신이니 원소의 식견이 더 높을거라 판단했다는 말 때문. 하진 자신도 푸줏간 출신이니까 오히려 더 트일 수도 있는데 하긴 그럴만한 그릇이 되면 하진이 아니지.
재해석을 하면서도 연의를 따르는지 여백사 사건으로 1,2화는 끝.
+편미곡이 가사를 몰라도 오프닝보다 더 마음에 들었는데 자막을 보니....잔인한 제작진ㅠㅠㅠㅠㅠㅠㅠㅠ평생을 돌아봐도 뜻이 이뤄지지 않았구나라는 가사에 그 비에 젖은 승상님을 끼워넣었어ㅠㅠㅠㅠ 승상빠는 승상승상하고 울라는 말이겠지 잔인한 놈들ㅠㅠㅠㅠ 강동자제는 풍류를 안다는 가사에는 단금 안 넣었으면서ㅠㅠㅠㅠ아 엔딩에도 아몽이 나오더라...그래 돌아보면 아몽 비중은 생각 이상으로 크기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