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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삼고의 예, 그 전후 본문
소설 제갈공명 上
진순신 | 까치
부재중인 것을 알면서도 유비가 처음으로 방문했던 그 다음날 큰 눈이 내렸다. 눈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온 공명은 그날 밤에 고열에 시달렸다.
두번째 방문이 이루어졌으나 공명이 앓고 있다는 전갈을 들은 유비가 예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는 돌아간 것이다.
.........
오환 토벌을 위해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조조를 치자는 유비의 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대다수 양양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조조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놓친 이상 조조가 남하한다면 투항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높았다. 그러나 반조조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유표는 건강이 기울어 판단력도 둔화되어 있었다.
손권 진영은 영수가 젊었으므로 투항론쪽이 오히려 약세였다. 공명은 서주 대학살 정경을 상기했다.
(천하를 조조의 손아귀 속에만은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백성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감정에 치우친 사고가 점차로 강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누가 천하를 잡아야 하는가?
(내가 보좌하는 사람이다. 당대의 환공(桓公)에게 천하를 잡도록 해야 한다)
양양의 객사에서 피가 끓어올라, 융중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는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발열이 눈 녹듯이 깨끗이 스러진 것은 아니었다. 창밖 뜰에서 풀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더미가 낙하한 것이다.
(이 분이 환공이시군........)
공명은 유비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귀가 이상할 정도로 크다. 그러나 이 얼굴에는 이 귀가 아니고서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
공명은 자신의 시선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다. 한참 바라보고 있는 눈은 어느 결엔가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되기 십상이다. 유비의 눈은 공명의 이와 같은 시선을 정면으로 되받으면서 깜빡이지도 않았다.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삼고三顧의 예, 그 전후, p209~210
오랜만에 꺼내본 진순신의 제갈공명입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스물 일곱 한창 나이에 눈 좀 맞았다고 열이 올라 앓아 눕는 우리 군사님은 병약미인. 금성무 군사님은 송아지도 망아지도 다 받아내는 밭고랑 꽤나 갈아봤을법한 튼실한 영농청년이지만 원래 군사님의 기본 이미지는 이런게 맞긴 하죠^^;;
자, 그럼 제대로 시작해보면 우선 서주 이야기. 조조가 서주에서 벌인 일대 학살-뭐, 실은 학살이 아니라 좀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위무제전에 대놓고 많은 사람이 학살되었다고 나와있으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이 군사님이 조조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거의 정설로 굳어진 듯합니다. 상당히 많은 매체에서 서주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혹은 피해 당사자가 되는 어린 군사님이 나오거든요.
서주의 학살과정에서 아버지가 조조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설정을 내는 소설도 있는데 설정이니 작가 마음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건 제 취향은 아닙니다^^; 서주의 학살에서 십대의 군사님이 본 것은 그 자체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였지 단순히 한 개인의 원수는 아닌 쪽이 좀더 근원적인 반대극에 서는 의미가 있달까요. 간단히 스케일이 작고 너무 직접적이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원수니까 증오가 깊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증오를 발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광경을 목도한 혐오감과 거부감이라는 씨앗 쪽이 좀더 오래, 결국 자신이 닳아질때까지 그렸던 무언가로 더 잘 이어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찌 되었든 여기서의 군사님은 내가 보좌하는 사람이 천하를 잡게 해야 한다는 자신감이 살아있는 모습이라서 이것 역시 한 가지 즐거움입니다. 내가 모시는 분이 당대의 환공이라는 말, 자신은 관중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라 될 수 있다는 확신. 사실 이 나이에 이만한 확신이 있기란 쉽지 않은 건데 말이죠. 이후로 이어지는 유비와의 이야기도 관중과 환공의 이야기가 서두에 나오고, 군사님을 얻게 된 유비는 "환공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만"이라고 덧붙이는 말을 하고요. 뭐, 사실 환공은...관중 죽고 난 뒤가 안습이라서 썩 좋은 비유는 따지고 보면 아니지 않나 싶지만, 유비 저 먼저 꼴랑 죽고 홀로 남아 사위어가는 군사님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꼴저꼴 안 보고 환공보다 먼저 죽은 관중 쪽이 속은 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_=a
진순신의 제갈공명에서의 삼고초려는 군사님의 시각에서 쓰여 있기 때문에 사실 읽고 있으면 군사님이 유비에게 어떻게 낚이는가가 훤히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유비가 웃는 것을 보고 훌륭한 소안笑顔이라고 생각하면서 웃는 유비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든가, 어떤 것도 맺힌 것이 없는 시원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든가-하고요. 전에 인용하기도 했지만 근이 형을 만나러 가서도 유비의 열기에 감싸여서 자신이 근근히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연의에서는 유비가 군사님께 반한 이야기로 나옵니다만 이렇게 군사님의 입장에서 유비를 보는 것도 참 재미있으면서도 마음 쓰라린 부분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촉파라면 사실 유비빠가 되어야 하는데 에라이 귀큰 놈따위 절로 씹어 외치는 승상파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날 이후의 전개가...-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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