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슨 가발 얼마나 웃긴지 얘기할거야 알라냐 얼마나 작고 귀엽고 못되먹었는지도 프랑스어판 레스타테가 얼마나 좋은지도!!!
....그래도 명색 첫 돈 카를로에다가 입덕작인데 이렇게 끝내면 너무 서운하니까 좋았던 것들 조금만 더 얘기해보고 넘어가자.
먼저 하르테로스의 세상 허무함을 아시는 이여Tu, che le vanità
바리톤을 파고 있는 오페라 늅늅으로 상대적으로 소프라노는 잘 안 찾아 듣게 되는데, 그게 이성의 음역에 더 끌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소프라노는 귀가 좀 힘든 경우가 많아서. 특히 레전설이신 옛분들의 레코딩은 진짜 힘들 때가 많음. 이건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면 나아질 문제겠지만 하르테로스 처음 듣고 신기했던 게 귀가 별로 안 힘들다는 거. 덕분에 비슷한 음색의 소프라노들을 찾아서 이쪽도 야금야금 듣는 걸 늘려가고 있음.
하르테로스는 앞에서부터 쭉 의젓하고 품위있는 엘리자베타라서 좋았던 한편으로 그래서 마음 아팠는데, 과연 세상 허무함을 아시는 이여에서 옛 사랑을 기억하면서도 로드리고와의 약속을 지켜 카를로를 보내줘야하는 괴로움을 드러내는 부분이 너무 가련하지 않아서 좋았다.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제 오직 죽음의 평화뿐-하고 빌고 있는 이 왕비 역시도 아직 젊다는 걸 생각하면 카를로놈 진짜 여기저기 이게 무슨 짓이야 싶고 원망스러운데 이 카를로가 정신차린 척 로드리고와의 맹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또 아이고 저걸 두고 먼저 죽냐 로드리고 왜 그랬어ㅠ
오페라에서는 생략된 로드리고와 엘리자베타의 약속이 13잘츠에서는 연출로 드러나는데 바로 이 장면.
2막 1장 우정의 이중창에서 로드리고와 함께 기도하던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4막 2장에서 로드리고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맹세가 엘리자베타가 로드리고의 자리에서 카를로를 감싸주면서 완성되는 것. 물론 완성되나마나 이미 틀렸지만. 어른스러운 하르테로스엘리자베타와 그 와중에도 사랑하는 그녀에게 믿음과 격려를 받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년같은 카우프만카를로의 대비가 참 좋긴 좋음.
사실 희곡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짧고 극적인데 베르디가....이별 장면을 너무 끄셔서 직전까지 아 로드리고/카를로구나 잘 보고 몰입해있다가 아 맞다 엘리자베타/카를로였지 잊었던 이 커플이 뒤늦게 생각나면서 아 빨리 헤어져 펠리페 온 단 말이야ㅠ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주는 부분. 게다가 희곡에서는 단호하게 카를로가 엘리자베타를 품에 안고서도 보세요 저는 이제 당신의 아들일 뿐이고 아무런 다른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쳐내는데 오페라에서 이렇게까지 애틋하게 차마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들로 그려놔서 그건 좀... 하지만 음악은 좋음. 애써 씩씩하게 로드리고의 당부를 옮기다가 이제 안녕 영원히 안녕 영원히 영원히...끊어질듯 끊어지지 않고 손을 뻗는 게 들려서. 이런 거 듣고 있으면 확실히 베르디 진짜 심장 쥐락펴락 하는 걸 이렇게 잘 아시니까 당대부터 지금까지 사랑받으시는구나 싶긴함.
그리고 문제의 엔딩.
희곡에서는 카를5세의 유령이 궁 안을 배회한다는 괴담을 빌어서 유령으로 가장한 카를로가 왕비의 처소에 들러 이별 하다가 왕에게 잡히고 왕은 이 둘을 대심문관에게 넘기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게 싫었던 베르디는 카를5세의 무덤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죽은 황제가 카를로를 무덤속으로 데려간다는 것으로 결말을 바꿨는데 덕분에 이 부분은 연출이 저마다 달라져서 찾아보면 꽤 재미있다. 은둔생활을 하면서 생존해있던 진짜 카를 5세가 근위병의 칼에 찔려 죽은 카를로를 구하지 못하고 펠리페를 비난하는 눈으로 보는 현실적인 연출도 자주 있는데 솔직히 그건 좀 재미 없었고, 이 끔찍한 비속살해의 순간을 보다 못한 카를5세가 동상에 깃들어 망자들의 세계로 손자를 데려가는 듯한 13잘츠 연출이 초현실계에 속하는데 이거 난 좋았음. 특히 카를5세의 음성을 듣는 순간부터의 카를로의 표정이.
2막 1장에서 카를로가 조부의 음성을 처음 들었을때 보인 반응은 공포였다. 불가능한 사랑에 괴로워하면서도 아직 살아갈 수 있었던 시점의 카를로에게 죽은 자의 음성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때문에 그 팔에 안겼을때 무서움에 떨었던 것.
하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었던 로드리고가 죽고 로드리고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그 이상은 온전히 자기 혼자의 어깨에 짐지워진 지금, 아버지와의 사이는 회복불가능하게 깨어졌고, 로드리고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서 사랑과도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상황. 이미 죽은 로드리고를 붙들고 네 신성한 불꽃으로 날 채워달라고 되풀이하던 카를로는 뒤집어 말하면 이제 완전히 텅 비어버린 상태. 애초에 이런 카를로가 로드리고의 소망을 이룰 수 있을거라고, 플랑드르를 구하고 스페인으로 구하고 엘리자베타의 말대로 영웅이 되어서 로드리고의 죽음을 기리게 될거라고는 카를로 자신도 믿지 못 했을걸. 엘리자베타가 모든 걸 떠나보내고 이제 죽음만을 빈다고 했지만 카를로도 마찬가지는 아니었을까. 그 기특하고 애틋하게 되풀이하는 맹세의 말은 사실은 다 실패한 자기최면일 뿐이고 차라리 무덤 속 네 곁에 나도 눕게 해달라는 그 애원이 가장 진심어린 말은 아니었을까. 간신히 도망가려던 시점에 들린 죽은 조부의 음성에 이제야 구원을 찾은 듯이 웃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
카를로의 표정이 이제야 안식을 찾았다는 환희에 찬 표정이어서 이건 일종의 안락사가 아닌가 싶게 그려졌다. 로드리고의 그 노력과 당부가 무산되는 순간인데 카를로 표정이 이렇게 예뻐서 이대로 무덤속으로 끌려들어가 천국에 올랐대도 로드리고는 이 카를로한테 화도 못 내고 안아줬을 것 같지 뭔가.
이 오컬트적인 결말이 좋은 건 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신의 무력함때문이다. 모두가, 엘리자베타나 카를로는 물론이고 신권에 눌리는 왕권을 고통스러워하는 펠리페2세도, 자유를 위해 싸우는 로드리고조차도 신을 믿고 의지하고 있지만 정작 이 안에서 신이 뭔가를 이뤄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아흔이 넘은 이단심문관이라는 한 인간이 신의 권위를 업고 그 권위로 왕국 전체를 지배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들이 믿는 신의 뜻인가 하는 괴리감이 계속 생겨나는 가운데, 신의 이름으로 잔인하게 불태워지는 인간을 향해 신이 내릴 수 있는 은총이란 겨우 천국으로 올라와 그 영혼에 평화를 찾으라는 천상의 목소리뿐이라는 부분과 결말에서 카를로를 현실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하고 고작 무덤 속 평화 안으로만 끌어안을 뿐이라는 허무함이 모두 통하는 부분이라서.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의 아들을 스스로 거둬가버려 손을 끊어버리는 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극적인 부자관계의 반복이라 펠리페에게는 가장 비참한 벌이라는 느낌.
오페라든 희곡이든 보고 있으면 아니 도대체 왜 로드리고같은 멀쩡하고 지각있는 사람이 카를로같은 것 때문에 희생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데 햄슨 로드리고는 거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을 줬다. 카를로를 사랑하니까. 로드리고가 이렇게 답을 준 것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더해서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로드리고 외에는 아무도 기댈 사람이 없는 한없이 연약한 카우프만 카를로는 왜 로드리고가 카를로를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구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답까지 주고 있다. 인터뷰에서 카를로는 일종의 희생자라고 말했던 게 그것. 물론 플랑드르 사람이나 엘리자베타나 펠리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게 어디서 희생자코스프레야 버럭 화가 날 수도 있긴 하지만 로드리고가 자유를 주고 싶고 구해주고 싶었던 대상이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아버지이자 왕인 펠리페에게 억압받고 새어머니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에 이만큼 고통받는 카를로야말로 억압받는 불쌍한 인간이 아니었나. 적어도 카우프만 카를로는 그랬다. 그러니 이런 가련한 어린 양을 로드리고가 사랑하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모순처럼 느껴진다. 혁명가가 구하려는 민중이 항상 현명하고 이성적이지는 않다는 걸 생각하면 더구나.
아 진짜 5막은 다른 부분에 비해서 안 파고 안 듣고 안 봐서 할 말이 아 좋네요 이거 밖에 없는게 보여서 부끄럽고 웃프지만 아무튼 이렇게 끝!!!
- 후일담
오페라의 엔딩을 카를로의 감금으로 볼 것인가 죽음으로 볼 것인가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카를로 인생이 끝났다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고 어쨌든 그 이후의 일들을 이야기 하면-.
먼저 임신중이었던 엘리자베타는 카를로 사망 이후 몇달만에 조산으로 사망하고 펠리페는 홀로 남아 재혼하는데 그때의 상대는 자신의 조카이자 역시 카를로의 약혼상대. 이건 딱히 펠리페의 잘못은 아니고 정략적인 이유. 펠리페는 이후 소원하던 아들들을 낳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영특해서 기대를 모으던 아들은 일찍 잃고 어쩌다보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에게 왕위를 어쩔 수 없이 물려주는데 이게 펠리페3세.
희곡에서 레르마가 카를로를 눈물로 보내면서 제 자식들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미래를 부탁하는데 이게 실러의 고증이 들어간 게 펠리페3세 대신 국정을 맡았던 총신이 레르마. 정황상 희곡의 레르마의 아들쯤 될듯ㅋ 물론 로드리고의 이상에 따른 황금시대는 오지 않았으므로 펠리페 3세는 스페인을 잘 말아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왕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싶다. 국정은 신하한테 다 맡겨놓고 나랏돈으로 미술품 수집하고 성 짓고 덕질하고 얼마나 좋아. 이런 마음으로 살면 그 죄로 내세에 혁명기 귀족으로 태어나서 가로등에 매달리려나;;; 펠리페의 외로운 마지막을 지킨건 엘리자베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희곡에서 펠리페가 카를로의 딸이 아니냐고 의심해 밀쳐버린 그 딸이다.
그리고 에볼리. 에볼리는 사실 카를로의 죽음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이후 펠리페의 이복동생 돈 후안-돈 조반니 원형인 그 돈 후안과 다른 사람임. 레판토 해전의 기독교 연합군 총사령관-의 측근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펠리페와 후안의 사이를 갈라놓고, 결국 상심한 후안이 부상으로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후에 펠리페가 이 일을 꼬투리 삼아 추방, 유폐시킨다. 에볼리와 손잡고 후안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은 펠리페의 끈질긴 추격에도 살아남아 영국으로 건너가 오래오래 펠리페 까대면서 잘 살았음. 거봐 카를로도 도망갔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까. 아님 로드리고가 카를로 버리고 그냥 혼자라도 도망갔으면 살 수 있었을텐데.
에볼리의 불운한 말년이 흥미로운 건 다른게 아니라 펠리페의 이복동생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때문이다. 펠리페2세의 이복동생, 카를 5세의 사생아, 그리고 레판토 해전의 공로자로 아마 제일 유명할텐데 실러의 오리지널캐인 로드리고의 모델이 돈 후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로드리고와 나이가 1547년생으로 같고 실제로도 조카인 카를로나 형수인 엘리자베타와도 친해서 엘리자베타의 딸들의 세례식에 아이를 안고 있기도 했고, 카를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함께 대학에 다니기도 했다. 제일 결정적인 건 로드리고와 같이 열여덟살에 몰타공방전에 참전했다는 것. 로드리고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 그리고 안 가도 되는데도 자원했고 후안처럼 함대에서 싸운게 아니라 실제 성 엘모 요새를 방어한 40명의 기사중 한사람으로 최전선에 있었다는 점이 다르긴하지만 이후 후안이 레판토를 승리로 이끌었던 전략가적인 면은 유럽 북부를 전부 뒤엎으면서 플랑드르 독립을 준비했던 로드리고와 겹치는 부분이라서 아무래도 연상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로드리고와는 사상적으로 전혀 달랐음. 그러니까 살아남았겠지만.
카를로가 플랑드르로 튈 계획을 의논하면서 도움을 청했는데 그걸 펠리페2세에게 알려서 결과적으로 카를로의 감금이라는 결과를 불러왔고 플랑드르 총독으로 부임해서도 알바만큼의 강경책은 펴지 않았어도 자유를 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로드리고 자체가 이 시기 스페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본인도 설마 형인 펠리페가 친아들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할 줄은 몰랐는지 카를로가 죽고 친하게 지내던 엘리자베타도 사산끝에 사망하자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수도원에 들어가있었다고 한다.
펠리페 주변 인물들이 다 그렇듯 펠리페와도 결국 사이가 틀어져서 아끼던 부하를 펠리페가 처형하자 상심끝에 병들어 죽고 마는데 서자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스코틀랜드와의 메리와 결혼을 계획하거나 형이 시키는 일에는 전부 열심히 나가서 싸우라면 싸우고 태우라면 태우고 왔던 걸 보면 나름의 야심도 있었던 인물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비탄 속에 세상을 떴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으로 꽤 다뤄지는 모양이다. 무려 오페라도 있는데 여기서는 펠리페와 후안이 또 한 여자를 놓고 삼각관계라고. 영원히 고통받는 펠리페ㅋㅋㅋ 불쌍해라.거의 잊혀지고 있던 이 오페라를 최근에 올린건 오스트레일리아에서였는데 후안의 작위가 아우스트리아라서. 물론 그 둘 사이에 연관성은 없다고 합니다. 신대륙의 비애나 안간힘 같은 게 느껴져서 웃펐음ㅋㅋ
바로 이런 후안의 몰락에 별 이해관계 없는 에볼리가 손을 뻗은게 흥미로운데 오페라 보고 이걸 보면 에볼리가 카를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초래한 후안에게 공들여 기다려 복수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물론 실제 역사상의 카를로는 에볼리 타입은 아니었을것 같음. 왜냐하면 에볼리 애인이 똑똑한 야심가라서ㅋ
-. 그래서 실제 역사대로의 나이를 확인해보면
카를로의 몰락과 플랑드르 탄압을 기준으로 배경을 1567년이라고 보면 펠리페는 1527년생으로 이제 겨우 마흔. 카를로와 엘리자베타는 둘 다 1545년생으로 스물둘, 그리고 에볼리는 이 둘 보다 연상으로 1540년생, 스물일곱, 이미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에볼리가 검술에 능했다는 기록이 있던데 생전에 아이를 열 명이나 남긴 걸 보면 에볼리 아주 튼튼했던 듯. 역시 멋짐. 그리고 가상인물이지만, 친절하고 꼼꼼한 실러님께서 몰타공방전때 갓 열여덟살이었다고 밝혀준 로드리고는 1565년의 몰타공방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547년생이니스무살. 옙, 로드리고가 카를로보다 연하임.
왼쪽이 스무살. 오른쪽이 스물두살. 왼쪽이 스무살, 스무살, 스무살....
실제로는 두 분 열여덟살 차이니까 막내삼촌/조카뻘인가ㅋ
카를로놈 반성해라 자기보다 어린애한테 왜 난 안아주지 않고 저 비천한 애만 안아줘 따위로 징징거렸단 말인가 자기보다 어린애가 공 잘 못 던져서 왕이 벌주겠다는 소리에 자수 못하고 있는데 그거 벌 대신 받아줬다는 빌미로 충성 강요했단 말인가 반성해라 반성해 ( mm
어쩐지 희곡에서 로드리고가 왕 앞에서 행동하는 게 나이브한 구석이 있다 했지만 열정적인 이상주의자라서 그런줄 알았지ㅋㅋㅋ 유럽북부를 전부 움직여놓고 거기에 술레이만 대제까지 움직여서 신구교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전략을 짜놓았다고 알바 공작이 감탄했는데 , 로드리고 본인이 자기 입으로 난 세상사에는 약빠르지만하고 말했는데 겨우 스무살이라니. 이 시대 존잘들은 자캐 스펙 대결이라도 하는건가.
로드리고가 겨우 스무살이라는 걸 알고 다시 펠리페와의 독대를 읽어보면 펠리페를 당혹시키는 성급하다고 해야할 솔직함이나 펠리페가 그런 로드리고한테 홀딱 반하는게 전부 이해가 가더라. 마흔살에 중년의 위기를 겪는 왕이 스무살 어린 청년의 이상주의적인 모습에 반하는 것도 좋지만 예순살 노인이 바라보는 스무살 청년은 또 얼마나 예뻤을까. 프랑스어판 독대씬에 펠리페는 처음에 로드리고를 후작이라고 경칭으로 부르다가 속내를 털어놓으면서부터 얘야enfant-부르는데 이게 또 그렇게 애틋하고 어여쁜 것이다.
이 업계가 어차피 실제 나이랑 가수 나이랑 안 맞는 건 예사라서 새삼 충격일 건 없었다. 모 프로덕션은 로드리고가 대심문관 아버지뻘이고 펠리페가 아들인 카를로보다도 어려서 제일 막내인 경우도 있었고 그런 경우 많으니까. 스무살짜리 바리톤이 로드리고 부를 수가, 학교무대라면 모를까 메이저 극장에서 그런 바리톤 찾기 힘들겠지. 서른 되기 전에 이오 모로 잘 부른 바리톤도 계시지만 그러니까 세계대회 우승하고 여태껏 탑 바리톤으로 뛰시는 거고 대부분은 그 또래에 로드리고 아리아 부르면 어휴 나이에 비해 무거운 곡이네요ㅎㅎ 하니까 그렇다 치겠는데, 원작에서의 그 카를로가 그 로드리고보다 형이라는 것 자체가 대충격.
카를로놈 자기보다 어린 애가 공 잘못 던졌다고 떨고 있는거 틈타서 대신 벌 받아주고 그거 빌미로 협박해서 사랑을 구걸한 거였냐. 스무살이나 스물두살은 별차이 안 난다쳐도 대학 가기 전에 있었던 사건이고 당시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가 지금 중고딩즈음이니까 그 이전이라면 중1짜리가 초5한테 너 벌 받을 거 형이 대신 받아줬으니까 평생 나 좋아해야해? 협박하는 거 생각해보면... 아, 좀 한심하긴한데 무지무지 귀엽잖아. 어른스러운 척 다 하던 초딩 로드리고가 눈물콧물 짜면서 카를로 앞에 무릎 꿇고 엉엉 우는 거 상상하면....역시 위험스럽게 귀엽다.
카우프만 아마 면도 시작하기 전일지도-라는 추정과 함께 올라온 사진이니 10대라 치고 이렇게 생긴 형이 사랑을 좀 달라고 매달리면 아 넵 하고 냉큼 엎드려서 넙죽 두손으로 바쳐야 할 것 같은 귀여움과 퓨어함이다.
그리고 초딩 무렵의 햄슨은 이랬음. 이런 표정 짓는 꼬마라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헤미아 왕비 눈에 맞으라고 공 던졌을 것 같은데ㅋㅋ 저 예쁜 카를로가 낚인 거 아닌가 싶으니 다른 사진으로.
좀 컸을 때, 관악기 배우다가 리드 더러워서 그만두기 전ㅋ인데 옆 모습이지만 뒤통수 쓰다듬어주고 싶은 게 이때라면 어른스러운 척 하다가 실수로 공 던지고 왕자 발 아래 엎드려 엉엉 우는 것도 좀 상상이 가기는 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