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레 미제라블의원작을 파고 있는 관계로 뮤지컬을 보는 시각은 잘 만든 2차창작이로구나-에 가까움. 후기 역시 원작팬의 잡담이 상당 분량 섞여있음. 더불어 별의 요정 법의 대천사 이런 말 당연히 진리 아닌가요? 할 수 있는 더러운 경감님빠.
이건 솔직하게 변명을 하고 시작하자. 이번은 작정하고 보려고 보려던 게 아니라 민음사 레미제라블 예약 이벤트 당첨이었다;; 삼덕질하며 판본별로 삼국지 모으던 가락이 남아서 어차피 책장은 터지는 거 번역판별로 사자 싶어서 예약하길래 질렀는데 이런 거 뽑히는 일이 잘 없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 사실 좀 무서웠...; 티켓 관련해서 좀 일이 있었지만 그건 여기다 또 옮길 일은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보러갔음.
자리는 S석 C구역 뒤쪽. 무대 오른쪽 사이드.
이전에 두 번 다 왼쪽에서 봤고 앞으로도 중앙이 없으니 왼쪽에서 볼거라서-발장의 복수가 왼쪽 끝에서 있는데 내가 어떻게 왼쪽을 포기하겠나-오른쪽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무대 전체가 다 보이는 거리라 재미있더라. 상대적으로 동선이 오른쪽에서 좀 더 중앙으로 이동한 것도 같았는데 이건 내 위치가 바뀐 탓인것 같기도 하고. 추수장면이나 ODM때 거리처럼 세트보다는 영상과 조명이 함께 보이는 장면이 예뻐보였음. 대신 세느강 장면은 물에 떨어지는건지 허공을 나는 건지 애매해보이더라. 소리는 뒤쪽이라 오히려 오케스트라 소리가 상대적으로 죽어서 그런 건지 프리뷰 지나고 본공이라 정비를 한 건지 내가 세번째로 봐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소리 기준으로 따지면 오늘 앉았던 쪽이 훨씬 깨끗한 느낌. 물론 그래도 컨프롱은 뭐라는 건지 안 들렸습니다; 뭐 아무튼 서로 너는 날 모른다고 싸웠겠지. 그러니까 이 양반들아 앉아서 차분하게 대화를 좀 해요. 두 분이 대화만 제대로 했어도 둘 다 말년이 그렇지는 않았을거 아니에요ㅠㅠ
앙상블 좋은거야 여전하고 떼창만이 아니라 소소한 장면에서 연기들도 보이니까 더 좋더라. 공장언니 완전 파워업하셨음. 나도 거기서 팡틴이 너네 남편이랑 애인이나 걱정하라던건 아차싶기는 했는데 그래도 언니 무서워요ㅎㄷㄷㄷ 바마타브와 팡틴이랑 싸울때 합이 약간 안 맞거나 노래가 약간 덜 나오거나 아무튼 한 부분씩 사소하게 걸리는게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좋았다. 그런데 대체 나는 왜 이리 바마타브와를 주시하는 건가. 아무튼 앙상블 좋아요. 진짜 앙상블 상 그런거 있으면 줬으면 좋겠다. 레미즈는 특히나 앙상블이 극의 토대요 주인이고 '레 미제라블'인데 진짜 앙상블 잘 해줘서 좋음ㅠㅠㅠㅠ
카페씬에서 마리우스 우&아때 졸리 옆에 앉아서 듣고 있는게 레글르가 아니라 즈앙이라서 역시 아미들은 구현 잘 안 해주고...하고 있었는데 원작에서 마리우스가 그 상태였을때 쿠르페락이 저거 미친거 아님? 걱정하니까 아냐, 저건 진심이야 인정(?)해주던게 즈앙이라서 그냥 그거랑 연결된다고 혼자 좋아하기로 했다.<-더러운 원작근본주의자의 가련한 노력을 보고 계십니다.
그보다 앙상블오오오 앙졸라스한테 시간이 없다고 조르네? 앙상블오오오 그랑테르 노는 거 맞춰주는 것 봐ㅋㅋㅋ 앙상블오오오 쿠르페락이 R 밀어내는 거 다시봐도 귀엽네ㅋㅋㅋ하고 보고 있는데 앙졸라스 노래에 환호하면서 DYHTPS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아미들 중에 누군가 왕정철폐!!를 외치더라. 누구세요.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거절은 거절합니다. 듣는 순간 곧바로 Vive la République!! 나도 그들과 함께다! 나도 죽여라..아, 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격하게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다음에는 공화정 만세도 해주세요ㅠㅠ 아니 그냥 제가 속으로 외칠게요ㅠㅠ 이런 디테일이 보이니까 카페씬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죽겠음. 아미 팬분들 부럽다ㅠㅠㅠㅠ
오늘도 R은 좋았고. 카페씬 처음에 앙졸라스가 때를 기다리라고 할때 다른 아미들은 앙졸라스에게 집중하면서 반짝거리는데 그랑테르만 혼자 불안해하면서 침울해져있다가 마리우스가 나타나자 그야말로 껀수를 잡았다는 듯이 덥썩 덤비더라. 그랑테르가 뮈쟁과 코랭트의 일상을, 서로 두서없는 토론을 하고 한쪽에서 헌법을 논하는데 한쪽에서는 연애상담을 하고 한쪽에서는 극본을 쓰고 한쪽에서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친구들을 취한 눈으로 보면서 구박을 받아가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무의미해보이는 소소한 날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래서 다들 기다리는 그 내일이 오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상상이 가서 좋았음. 술꾼이라도 보는 눈은 있고 생각도 있는 회의주의자라서 바리케이트의 결말을 직감했을텐데도-직감이라니 이상하네 아무튼 시민들이 일어나리라는 걸 기대하지 않았을텐데도-앙졸라스를 잡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도 잡지 못하고 얘네들을 어쩌지 어떡하지하고 마셔대는 것도 좋고. DYHTPS때도 그냥 합류하는게 아니라 머뭇머뭇하고 있는걸 프루베르-로 추정되는 파란 코트-가 다독다독거려서 행렬 꼬리로 데려갔고 DWM에서 드디어 아미들이 R을 쏠 기세로 덤비는 대신 울컥하고 진심으로 화를 냈다가도 다시 붙들고 야 그랑테르 너 이 새ㅋ...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려는 걸 그랑테르가 밀쳐내는 구도로 보이더라. 그것도 치워! 이 멍청하고 눈먼 놈들아 너네 다 죽을 거야!!라는게 아니라 이 징글맞게 사랑하는 것들아 너네 곧 다 죽어갈텐데 대체 나 보고 어떻게 견디라는 말이냐....라는 느낌이라서 좋았음. 앙졸라스도 다른 아미들도 일단 그랑테르가 근본없는 술주정으로 어깃장을 놓는게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분위기고. 그러니까 프리뷰 둘째날은 진짜 쿠르페락이 저 술통같은 놈을 쏴버리자!고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니까ㅋㅋㅋ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오자고 봤는데 덕분에 ALFOR부터 울기 시작해서 레글르랑 DWM보려고 눈물 닦았다가 가브로쉬가 죽을 때 울고 마지막 전투 때 울고 터닝에서까지 울었다. 신파라고 이 노래 싫다고 그렇게 그랬는데 이런 굴욕이ㅠㅠ 그래도 오늘 나한테는 신파가 절실했어ㅠㅠ 가서 깨워/깨울 수 없어할때 울컥ㅠㅠ 깨우란 말이야ㅠㅠㅠㅠ 우리 레글르 푀이 쿠르페락 졸리 콩브페르 프루베르 그랑테르 앙졸라스 비록 배역은 없지만 아마 있을 바오렐까지 이름없는 사람들까지 다 깨우란 말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파리 시민들 왜 16년이나 뒤에 일어났어 왜ㅠㅠㅠㅠㅠㅠ 빈 의자 빈 탁자 때는 말해서 무엇하나ㅠㅠㅠㅠㅠㅠ소리 안 내고 우는 것도 진짜 힘들더라ㅠㅠㅠㅠㅠㅠㅠ
아, 온통 앙상블 얘기밖에 없네;
발장은 파워풀했음. 말그대로 파워풀. 컨프롱 때 시장님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인가요 사흘만 시간을 달라는 것부터 이미 협박조ㅋㅋㅋ 내가 경감님이라도 못 믿을 것 같던데. 아무튼 그렇게 힘이 팍 들어가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거기에 체형차이까지 있으니 싸우는 부분은 아이고 저 흉악한 발장이 우리 경감님 부러뜨리겠네싶었음. 컨프롱 가사는 듣기를 포기했으나 강약으로 밀고 당기는 건 처음보다는 나은 것도 같았다. 아무튼 발장의 파워는 꾸준해서 하수구에서 마리우스를 업고 나와도 10년전 컨프롱때의 기세 그대로라 경감님이 안 비켜줬으면 힘으로라도 뚫고 가겠더라. 마리우스에게 자기 과거를 고백할 때도 마리우스는 감동해서나 코제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입다물어 준 것 같고. 덕분에 엔딩의 BHH 변주때 그런 강한 모습은 간데 없이 쇠잔해진 모습으로 기도하는 부분에서 절로 눈물이...나려는데 천국에서 다시 기운차게 노래하셨음. BHH에서 음이 불안하던 부분은 중간에 숨을 한 번 쉬고 이어서 다시 하는 쪽으로 된 것 같다. 4월에도 이런 BHH이려나....파워가 있으니 Who am I도 강하고 ODM도 한 축으로 이끌어주는 게 확실하기는 하더라만.....
가브로쉬가 좀 더 개구진 느낌이 나더라. LD에서 날 따라와할때 정말 따라가고 싶어지고 경감님 놀리는 것도 가브로쉬다워졌고 그래서 죽을때 눈물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테나르디에 부부의 가사가 이제 거의 들리는 것 같다. 두 사람 몫 번역이 제일 마음에 드는 것 같아.
경감님은 딕션은 여전히 대체로 좋고 여전히 꼿꼿하고 아름답고 마차사고 뒤에 깍듯하게 인사하고 가는 동작도 예쁘고 ...또 뭐가 좋았지 그래 바리케이트에서 들통났을때 당당하던 것도 좋았고...Stars가 뒤에서 들으니까 울리면서 공기를 누르는 파워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좋았는데 발장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스토커의 신성한 맹세 그런것보다는 바로 잡아다 벨 기세의 Stars였다; 밤하늘에서 뭐 하나 시커멓고 뿔달리고 그런게 소환될까봐 무서웠음;; 그리고 발장의 복수에서 세느강까지는...무대와 나 사이에 세느강 검은 물같은 취향의 차이가 찰랑찰랑 차오르고 있다.... 경감님 너무 울지 말고 너무 화내지 말고 왜 죽는지 좀 천천히 알아듣게 말씀을 하시면서 돌아가시면 좋겠는데..보이지 않는 별한테도 막 화내는 것 같고...아직 넘지 못할 높이와 거리는 아니기는 한데 아무리 앙상블이 좋고 카페씬이 좋아도 자베르가 안 맞으면 슬픈데 어떻게 하지......ㅇ<-<
사실 이 3시간짜리 뮤지컬을 여러번 보는 사람보다는 한두번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테니 그 한두번 안에 임팩트를 남기려면 발장도 자베르도 둘 다 강하게 강하게 가려는 것도 이해는 간다. 뒤에서 보니 사람들이 1막 DYHTPS 이후로 슬슬 무너지다가 2막 바리케이트에서는 진심으로 앉아있는 걸 괴로워하다가 자베르가 죽을 때 잠깐 정신을 차려 빈의자빈탁자를 듣다가 다시 무너졌다가 발장 죽을 때 정신차리는게 너무 잘 보여서 나도 처음 봤을 때 바리케이트에서 갈피 못 잡았던게 생각나서 속으로 자음 흘리면서 웃었는데 그러니 더 강하게 더 세게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닐텐데 싶어서 좀 아쉽기도 하고...
어차피 무대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고 생각도 복잡한 채로 보러 간거라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봐서 리뷰랄 것도 없는데 그래도 왕정철폐!!를 들은걸 남겨놓고 싶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매번 커튼콜때 기립해서 어깨가 빠지도록 박수치고 오느라고 건강해질 것 같다.
자체 막공은 아니지만 보러가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후기 쓰는 건 아마도 이게 마지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