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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각, 인사조치에 항의하다 본문

三國志

제갈각, 인사조치에 항의하다

neige 2008. 11. 26. 20:15



*언제나 그렇듯이 서푼의 추측과 닷푼의 망상, 한푼의 기록에 근거한 삽질입니다. 모자란 한푼은 귀찮아서 정확한 연대고증을 건너뛴 고로 빠진 기록 부분입니다. 얼른얼른 자치통감을 사야겠습니다만 이번 달 책지름은 고우영삼국지에 쓴 관계로 자치통감은 완간을 빌며 기다리겠습니다;;





제갈각이 육손에게 보낸 서신을 이야기 하기위해서 먼저 이 서신이 어떤 상황에서 쓰여졌는지를 봐야합니다. 진수도 버린 오나라니까 정확한 연대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제갈각이 이 글을 쓴 것은 아마도 240년 이후로 생각됩니다. 이 즈음 제갈각은 단양에서 훌륭한 전공을 세우고 위북장군 도향후로 봉해졌습니다. 여강 환구에서 둔전하면서 서현을 습격, 수춘을 취하려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합비. 손권이 내내 집적집적 거리다가 결국 장료 죽고 먹기는 먹었는데 먹고나니 위나라에서 합비 "신성"을 쌓는 바람에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게 되었던 그 합비를 내가 먹어 보이겠다 기세등등하던 때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한창 잘 나가는 각에게 손권은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승상님보다 오래 살아남은 사마의가 제갈씨의 꼬꼬마를 잡아주리라 벼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오서에는 손권이 군사를 일으켜 대응하려고 했지만 점보는 자가 불리하다고 주장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결국 이 말을 옳다고 여긴 손권의 결정으로 제갈각은 시상으로 물러나와 주둔하게 됩니다. 난 할 수 있다-날뛰려던 팔팔한 어린애를 쉬쉬 달래서 뒤로 빼놓은 격인데요. 시상에 물러나온 제갈각은 미인이라 소문났던 대도독을 본받아 말의 출산을 돕고 금을 켜는게...아니라 육손에게 편지를 씁니다.

"점을 쳐서 형세를 살피는 자 望氣者"
미신을 싫어하기로는 조조와 다르지 않았던 형 손책과는 달리 손권은 강남 사람답게 절도 크게 건립하고 도사와 점복도 꽤 좋아했습니다. 오서 말미에는 오나라에서 일했던 도사와 점복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가쪽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갈홍이란 사람도 오나라 출신이죠. 콩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승천할 수 없다-거나 하는 실용적인(?) 도가의 수련 방법이 진나라 장화의 <박물지>에 남아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일손이 딸려서 사관이 없었던 촉나라와는 달리 오나라는 사관을 두고있는 정상적인 체제여서 일식이나 상서로운 조짐에 관한 기록도 제법 상세하게 남아있는 편입니다. 그러니 손권이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점복에게 일의 성패를 물었다는 것은 그렇게 별난 일은 아닌것처럼 보입니다. 관우를 잡을 때도 우번이 점괘를 뽑아 성공을 예언하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갈각은 손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점복이란 하늘의 뜻을 받아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이에 이렇게 저렇게 하늘의 움직임 아닌 땅위의 움직임에 대해 첨언하는 말이 섞이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손권으로 하여금 그것이 옳다고 여기게 만들었던 것 역시 손권 혼자만의 결론은 아닐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야심만만한 사람의 머리에 떠올랐을 겁니다. 아마도 이 직전까지 자신은 손권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줄만한 실력을 보였다고 자신에 차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갈각은 자신이 시상으로 물러앉은 것이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승리를 시기한다, 자신의 성장을 견제한다-고 여겼던 것이고 그 결과 육손에게 아래와 같은 서신을 쓰게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하의 단락은 임의로 나눈 것입니다.  


양경숙(楊敬叔)이 고아한 이론을 강술하여 전했는데, 바야흐로 현재 인물들은 그것을 글로 새겼으며, 도덕과 사업을 지키는 자는 또 몇 명 없으므로 마땅히 서로 돕고 보조하여 위로는 국사(國事)를 일으키고 아래로는 서로 중히 여기고 아껴야 합니다. 또 세상 풍속이 서로 훼방하기 좋아하여 이미 성취한 것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도에 손상을 입도록 하니, 장차 앞으로 나아가려는 무리들은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웃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듣고 탄식했으며 진실로 혼자 손을 치며 격분하였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양경숙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아설을 주창한 양자라면 양자라고 불러줬을 것 같은데 아닌것 같고, 그럼 전한시대의 양웅인가 했지만 그 양자는 자가 자운이라니 그 사람도 아니고, 오나라 당대의 인물인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고요. 다른 나라 사람이나 후한말 사람인가....싶지만 그렇다고 양씨성을 가진 사람을 다 찾아보자니 솔직히 귀찮아서 넘어갑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 부분이겠지요. "세상 풍속이 서로 훼방하기 좋아하여 이미 성취한 것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도에 손상을 입도록 하니" 대놓고 서두부터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각입니다. 육손이 이 편지를 받아본 순간의 위경련과 혈압 상승이 느껴지지 않나요. 에누리 없이 영감이 나 태클 건 모양인데 나 화났거든? 하고 따지고 있으니까요.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자는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공자의 문하생 대략 3천 명 중에서 특별하게 돌출되는 72명, 자장(子張)ㆍ자로(子路)ㆍ자공(子貢) 등 70명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아성(亞聖)의 덕을 갖추고 있지만, 각기 단점이 있어 전손사(孫師:자장)는 편벽되고, 중유(仲由:자로)는 법을 만들지 못했고, 단목사(端木賜:자공)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점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중니(仲尼:공자)는 이런 제자들이 갖추고 있지 못함을 문제 삼지 않고 손을 이끌어 친구로 간주했으며,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그들의 단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왈칵 속에 든 감정을 쏟아놓고 난 각은 순순히 인정은 합니다. 그래, 나 당신 보기에 완벽하지 않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겠어. 공자님도 모자란 제자들 잘 이끌어 데리고 살았잖아-하고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각의 말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공자가 성인이지 달리 성인이겠어요.
 


게다가 현재는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 마땅히 지난 옛날보다 관대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현재의 시세는 복잡하지만 훌륭한 인물은 적으며 국가의 각 부처의 관리들은 항상 충족되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정이 사악하지 않고 재력을 다하려는 뜻이 있으면, 곧 임용을 장려하여 본래의 직책에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작은 것에서는 취할 만한 재능이 있지만 개인적인 행동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마땅히 너그럽게 용서해야지 하나하나 꾸짖어서는 안됩니다. 



이 부분에서 각의 자신감이 드러나서 재미있습니다. 그렇죠. 걸출한 인물은 다 세상을 등지고 셋으로 버텨온 천하도 슬슬 흔들림이 보이기 시작하고 삼국지를 플레이하자면 한창때는 거들떠도 안보던 7, 80대 능력치의 인재들이 참 유용한 그 시대. 사실 저도 반쯤은 까는 재미로 사랑하는 각은 그리 모자란 인재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능력치로는 오나라의 후발주자들 중 누구보다도 걸출했다고 할 수 있거든요. 에, 물론 육손의 아들 육항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람이 워낙 겸손하고 차분하고 인자해서 재미는 없어요-_-; 그나마 양호와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 정도가 재미있을 뿐이지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전의 각은 단양에서 수만의 백성을 끌어내고 병력을 늘리는 공을 세웠습니다. 묘하게도 육손이 젊어서 처음 했던 일이 이런 거였습니다. 육손은 창고를 개방해 곡식을 나눠주고 도적의 우두머리를 잡고 얌잠과 농사기술을 가르쳐주고 해서 역시 수만의 인구를 오나라 백성으로 만들었거든요. 오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백성의 도망과 이민족의 불화가 꼬꼬마 육손이 도독이 되고 승상이 되는 긴 세월에 이르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동시에 각으로서는 영감이 한 일 나도 할 수 있다고! 이렇게 항의할 수 있는 증거가 되주었을겁니다. 여튼 요약하면 나만한 인재가 어디있다고 이렇게들 발목을 잡아. 성격 좀 나쁜게 뭐 그리 대수? 이런 단락입니다.


리고 재능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세미하게 논의하고 가혹하게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가혹하게 요구하게 된다면 옛날의 현인과 성인도 오히려 완미(完美)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 있어서야? 때문에 도덕으로써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며, 보통 사람의 표준으로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쉽습니다. 이와 같으면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간에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좀...=_=a 능력있으면 도덕성이 모자라도 된다는 말로 읽혀서 이거이거 각이 이놈 이 시대에 모럴해저드냐라고 흠칫했습니다만 번역의 "도덕" 부분이라는 것을 굳이 각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보자면 곧이 곧대로 비윤리적이도 용납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덜 되었어도 능력있는 나를 써줘!라는 말 정도가 될까요; 하지만 나라를 경영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권한을 가진 인재로서 각의 성격은 사실 유용성을 능가하는 결함이 될 수밖에 없었을텐데 말이죠...여기서도 스스로를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각의 자신감에 웃고 가고요.


한왕조 말년 이래부터 사대부, 가령 허자장(許子將;허소)의 무리들 중에서는 더욱 서로 비방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화를 야기시키기도 했는데,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까닭을 살펴보면 크게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억제하는 예절은 다할 수 없으면서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는 바른 도의로써 질책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예의에 부합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공정한 도의로써 다른 사람을 꾸짖으면 사람들은 참아내지 못합니다. 내심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복종하지 않고,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질책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서로 원수가 안될 수 없습니다. 



 허소가 인물평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될테고요.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자신을 억제하는 예절은 다할 수 없으면서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는 바른 도의로써 질책한 것입니다." 이 문장인데요. 꽤 정중한 투로 말하고 있지만 줄여서 "너나 잘하세요."가 됩니다.  


서로 한 차례 원수가 되면 소인들이 그 중간에 모이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모이게 되면 뜬소문이 여러 차례 전해지며 나날이 참언이 쌓여 혼란스럽게 뒤섞여 이르게 됩니다. 비록 지극히 현명하고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도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스스로 진위를 결정짓기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이미 틈이 생겼으며, 게다가 사리를 명백히 할 수 없는 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장이(張耳), 진여(陳餘)는 서로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소육(蕭育)과 주박(朱博)이 끝까지 좋은 사이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본래 이로부터 말미암은 것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과실을 버리지 않고 미미한 일에서 서로 꾸짖으며,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가가호호 원수가 되어 한 나래에 품행이 완전한 선비는 다시 없게 될 것입니다.



장이와 진여는 진나라 말기 함께 봉기해서 조나라를 잠깐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한 친구들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오해와 오해가 겹치는 바람에 각각 항우와 유방의 진영으로 갈라져서 니 목을 내놔라 니목이라 내놔라 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원수가 되고말았다고 합니다. 전한시대 사람인 소육과 주박도 역시 서로서로 천거해줘서 벼슬이 높이 오른 친구사이였지만 결국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겨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고 하고요. 사실 저는 한서를 안 읽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갈각이 육손에게 경고한 참언이 쌓여 서로가 원수가 된다는 흉종극말凶終隙末의 경고가 재미있습니다. 이 즈음의 육손은 아직 손권에게 쪼이기 전이라 권력이나 병력으로는 그리 크게 아쉽지도 위태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갈각이 아무리 손권의 신임을 얻고 재능이 빼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육손의 지위를 흔들 위험은 아직 되지 못한 시점이었죠. 그럼 제갈각은 무엇때문에 당신과 내가 갈라서게 되면 위험할텐데-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제갈각과 육손은 이렇게 긁어대고 긁히는 사이지만 파벌로 보면 같은 편이었습니다. 막장의 오나라 후계자 싸움에서 일단 같은 진영에 속해있었으니까요. 대의고 명분이고 간에 후계자 싸움이라는 건 사실 따지고보면 우리파/가문이 대대손손 이 나라랑 잘 붙어서 먹고 살 수 있느냐가 초점이라고 본다면 제갈각은 반대파인 전종과 비슷한 이유로 태자파에 서있었는데요. 여기서 잠깐 오나라 사람들의 족보관계를 봐야합니다.

장소. 오나라의 꼿꼿한 영감님에게는 장승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소가 조조보다 약간 연하였으니 장승은 조조의 아들 또래 즉, 군사님과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그런 장승과 제갈근이 친한 친구사이였는데요. 장승이 상처喪妻하자 장소가 맏며느리감으로 찍은 것이 제갈근의 딸이었습니다. 물론 제갈근도 장승의 사람됨이 마음에 들었는지 딸 줘도 되겠다 생각했고요. 양가 어른들은 마음이 맞았는데 장승은 곤란해합니다. 그렇죠. 친구딸인걸요; 아마도 나이차가 꽤 났을법한 제갈씨 소녀를 두고 장승이 '그 아이와 나는 삐-살 차이'하고 하사장 대사를 읊고 있을때 나선 것이 손권입니다. 손권의 중매로 장승과 제갈씨 소녀는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태자 손화와 결혼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태자는 제갈각의 조카사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갈각이 노왕과 친했던 맏아들을 독살하면서까지 태자를 지지했던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갈각은 장씨일가와 더불어 태자파의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씨는 그렇다치고 잘 나갈 기세인 제갈각과 육손이 불화를 일으키면 누가 좋아할지는 뻔하지 않은가. 제갈각이 육손에게 경고한 것은 그런 의미였을겁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철저한 태자파였던 제갈각이 이궁의난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또 태자가 쫓겨날 때 자기는 쏙 빠져 살아남았는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 사례 저 사례 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서신의 한줄요약은 '내 발목 잡지마.' 정도가 되겠습니다.
두 줄 요약하면 '내 발목 잡지마. 너나 잘하세요.'가 될까요.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이 일로 육손이 자신을 책망하고 있음을 알고서 제갈각은 다시 이런저런 말로 노인네 심사를 풀어주려고 했다고 오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책망하다'라고 되어있는데 원문은 嫌己, 자신을 싫어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낄낄낄) 어지간한 육손도 이 오만한 편지에는 참을성이 바닥나서 불편한 심사를 일부러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차츰차츰 홧병의 징후가 보였던 것인지 어느쪽이든 제 성질대로 갈겨서 편지 보내놓고 영감 반응 전해듣자 앗 뜨거하는 제갈각을 생각하면 제법 귀엽기도 합니다. 그리고 육손이 말년에 장소의 빈자리를 메우듯이 상대를 막론하고 아끼지 않던 잔소리 쓴소리 중에서 제갈각에게 한 말이 어쩌면 이 서신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나보다 높은 관직에 있는 자에게 반드시 받들어 함께 승진하고 나보다 낮은 관직에 있는 자는 도와줍니다. 지금 당신을 보니 기세가 윗사람을 능멸하고 마음은 아랫사람을 멸시하고 있는데, 이는 덕행의 기초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서신 이후로 이어진 제갈각의 노력에 육손이 마음이 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마침 육손이 죽자, 제갈각은 대장군으로 승진하고 부절을 받았으며 무창에 주둔해서 육손을 대행하여 형주 자사의 일을 겸하게 되었다.




"마침 육손이 죽자會遜死", 會에는 때마침, 공교롭게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서신이 240년대 중반, 육손의 실각과 죽음 얼마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게된 이유인데요. 제갈각이 단지 육손의 마음을 풀어주는 쪽에만 노력을 쏟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양축이 태자와 육손을 엮어 탄핵하고 손권이 육손에게 집요하게 사자를 보내 죄를 추궁하는 그 일련의 사건에서 깔끔하게 빠져나온 태자파의 주축 제갈각은 대체 무얼했는지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상으로는 제법 씁쓰레한 재미가 있으니까요.

오나라의 도독라인을 꼽을때 흔히 주유-노숙-여몽-육손을 꼽는데 사실 육손의 뒤를 이은건 주연이었지만 그 뒤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은 제갈각이었습니다. 그렇게놓고 보면 후계자 교체로서는 오나라 역사상 유래없이 껄끄러운 전임자와 후임자였던 두 사람이 되네요. 둘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오하아몽에 괄목상대를 날린 노숙과 여몽은 그나마 애정이라도 있었지 싶다니까요. 그리고 제갈각의 부상은 오나라 도독라인에서 암묵적으로 이어온 "주도독의 뜻을 이어"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벗어난 신세대의 도래가 되는 셈이고요.

그리고 이건 뱀발입니다. 썩 좋지 않은 사이였지만 알고보면 우리가 남이가~가되는 오나라 족보때문에 육손과 제갈각도 결국 한 족보로 얽히게 됩니다. 육손의 아들 육항의 처가 장승의 딸, 역시 제갈각의 외조카였거든요. 제갈각의 실각때 장씨 역시 연좌되어서 육항은 장씨와 이연하고 장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육경陸景은 할머니 손씨, 손책의 딸 손에 자랐다고 육손전의 주에 기록되어있는데 민음사판에서는 누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육경은 손화의 딸, 손호의 여동생과 결혼하는데 앞서 말한대로 손호의 어머니가 장승의 딸이었던 관계로 여기서 한번 더 멀지만 혈연이 얽히게 되는...복잡한 두 집안입니다. 더해서 역시 뱀발이지만 육경만 콕 찝어 장승의 외손이라고 밝혀놓은 것을 보면, 그리고 둘째인 경이 어릴때 육항이 부인과 이연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육항의 다섯 아들들과 딸의 어머니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겠고요. (뭐 그래봐야 이런 걸 궁금해 하실 분은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별로 없으실것 같....=_=a)            

사실, 혼인만큼 결속을 다지는 실속있는 방법도 없다보니 육씨 집안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이리저리 시집장가 보내고 한 것을 따지면 오나라의 이름난 성씨의 성쇠가 다 보이니까 다음엔 이걸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아, 하지만 고씨집안이랑 육씨집안이랑 도대체 어떻게되는 족보인지 잘 모르겠다는 숙제가 아직 있네요;;; 그럼 다음에는 법정이 유장에게 항복을 권한 글을 볼까...합니다^^;






뱀발) 한 삼백년만의 블로깅이자 오백년만의 삼국지 관련글입니다...
별거없이 바빴던데다가 사실 이 글은 눼입어가 반이나 뭉텅 삼키는 바람에 분노해서 닫아두었던 글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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