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
호작질 본문
잘 살아있는데 뭘 길게 잡을 여유가 없어서 짬짬이 호작질
제대로 된 글이 아니라 옆방으로 옮기지는 않음
좋은 건 많을수록 좋으니까 자베르도 그러함
1. 러셀 자베르는 아침부터 베이컨베이컨햄햄계란계란해서 든든하게 먹어야 되는데
필립 자베르는 빵 한조각에 블랙커피만 먹는 쪽이라
러셀자베르가 앞치마 두르고 열심히 상차려놨는데 무시하고 토스트나 씹고 있어라
일어나면서 창문 확 열고 팬 돌려서 환기시켜버리면 러셀 자베르 무안하겠지
2. 필립자베르는 혹시 몰라서 알람 맞춰놓기는 하는데
알람 울리기 1초전에 습관적으로 눈 딱 뜨는 타입이라 알람 2초만에 끄는데
러셀자베르는 예비로 다섯개 맞춰놓고 그중에 3개 다 울릴 때까지 못 일어나면 좋겠다
대신에 필립자베르는 저기압이라 아침에 특히 기분 더럽고
러셀자베르는 알람과 전쟁하면서도 일단 눈뜨면 꿩강함
필립자베르가 하루는 못 참고 러셀자베르 침대 머리맡에 휴대폰 배터리 빼버리고 혼자 제복입고 출근해버리면 좋겠다 필립 자베르가 특히 더 성질이 난건 러셀자베르 알람소리는 러셀자베르가 부른 Stars라서
3.러셀자베르가 살뺀다고 간식 끊고 아침에도 뮤슬리나 말아먹고 다니는데 야근하고 밤샘수사하다가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자판기에서 캔디바 수북하게 뽑아 들고 가다가 필립자베르랑 마주치면 좋겠다
필립자베르가 발렌타인데이는 멀었는데? 하고 러셀자베르 손에 든 거 털어가면 좋겠다 사실 필립자베르는 동거하면서 러셀자베르가 사놓는 간식 권하는 거 못 이기는 척 받아먹다가 맛들렸음
4. 파견나갔던 25주년자베르가 들렀으면 좋겠다
러셀자베르는 바짝 긴장하면서도 워낙 기 세고 무서운 자베르라 공손하게 인사하는데 25주년자베르가 러셀자베르는 보지도 않고 필립자베르한테 선배 요새 좀 물러지신것 같네요하고 툭 던지고 가면 좋겠다
러셀자베르는 시무룩해있는데 필립자베르가 러셀자베르 눈 축 처진 거 보고 서류철로 어깨 툭 치고 지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필립자베르랑 25주년자베르랑 건물 비상계단에서 심도있는 컨프롱
5. 필립자베르랑 러셀자베르랑 동거하면서 같이 근무하는데 발장들은 어떻게 하지
러셀자베르가 탐문 나갔는데 이상하게 호감가는 거지가 있어서 다가가보니 거지가 커다란 눈을 드는데 필립자베르가 발장 낚으려고 위장한 거
러셀자베르가 순간적으로 놀라서 헉 시발 잠복중인데 나때문에 들키겠네 어떻게하지 동냥그릇을 엎을까 돈을 드릴까 고민하는데 러셀자베르 뒤로 콤발장이 지나가다가 러셀자베르 제복보고 놀라서 숨어버림
덕분에 필립자베르는 한파주의보 내린 거리에서 며칠 더 잠복하게 됨 러셀자베르는 자기 근무 끝나고 눈에 안 띄는 골목에 차세워놓고 필립자베르 거지 뒤에서 지켜보다가 필립자베르가 자리 걷으면 자기도 자리 떠남
6. 필립자베르랑 러셀자베르랑 동거하면서 같이 근무하는데 어느날 어쩌다 둘 다 휴일이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
모처럼 둘다 출근 안 하고 집에 있는데 둘다 묵묵하게 일만함 그러다 뉴스 보려고 틀어놨던 TV에서 엑스맨 시리즈 해주면 좋겠다
울버린 보고 러셀 자베르가 급 기분 나빠하니까 필립자베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러셀자베르가 저 오소리한테는 슬픈 전설이 있어요...하고 축 처져서 서류 던져놓고 바람 쐬러 나가버림
필립자베르가 오소리가 뭐?하고 무시하려다가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러셀자베르 찾으러 나감 러셀자베르는 하염없이 걷다가 어느 성당 들어가서 주님 휴발장을 잡게하소서 기도하는데 미사 준비하러 나왔던 콤주교가 형제여 무슨일이라도?하고 다정하게 물어봄
7. 콤주교한테 휴발장 못잡는 서러움부터 시작해서 고민 다 털어놓고 마음의 짐도 덜고 후련해진 기분으로 러셀자베르가 성당을 나왔는데 집에 돌아가려니까 좀 쑥스럽기도 하고
필립자베르가 자기 미워하지 않을거라는 콤주교님 말씀도 맞는 것 같고 한참 이야기했더니 목도 마르고 해서 아이스크림 사가면 좋겠다
이번만큼은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말고 필립자베르가 좋아할것 같은 걸로 한 통 꽉꽉 채워서
러셀자베르 찾으러 돌아다니던 필립자베르가 이건 경찰이 휴대폰도 안 들고 나가고!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러셀자베르가 아이스크림 들고 막 문 열던 참이었음
야단부터 칠까 하다가 러셀자베르 표정 보니까 마음 약해져서 일단 들어가자고 거실소파에 가서 앉으니까 러셀자베르가 아이스크림 뚜껑열고 스푼 건네줌
-민트초코? -선배 생각나서요 -내가 치약같은가 -그런건 아닌데...뭐 좋아하시는데요? -.... -잘 안들리는데요 -슈팅스타
필립자베르가 5pt 폰트 크기로 작게 말하고 아이스크림 덜어 먹을 그릇 찾으러 가는데 러셀자베르가 뚜껑에 붙은 민트초코 훑어서 우물거리면서 속으로 좋아함 저도 슈팅스타요
8. 러셀자베르랑 콤주교랑 만났으니까 필립자베르도 휴발장이랑 만나면 좋겠다 세계는 혼동파괴망가!
뒷골목 지나가다가 떼강도한테 털릴 뻔한 것 같은 신사를 필립자베르가 구해줌
떼강도는 부하들이 잡으러 뛰어가고 필립자베르는 피해자의 팔을 잡고 괜찮냐고 물어봄 피해자는 필립자베르를 외면한채로 괜찮다고 슬쩍 팔을 풀어냄
꽉 잡은건 아닌데 슬쩍 푸는 남자의 손힘이 예사롭지 않음
부하들한테 잡힌 떼강도가 우리가 발릴 뻔했다고 우리가 피해자라고 아우성치는데 필립자베르가 피해자한테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봄 무슈, 혹시 어디서 울버린 닮았다는 말 들어본적 없습니까?
피해자는 흠칫하는 티도 없이 태연하게 답함 아니오 휴 잭맨 닮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
아 그러세요? 나랑 사는 애는 러셀 크로우 닮았는데
9. 울버린은 아니고 휴잭맨 닮은 남자가 어딘지 수상해서 필립자베르가 러셀자베르 모르게 뒷조사 하면 좋겠다
몰래 하는거라 파견나간 놈자베르한테 들러서 부탁함 놈자베르가 저번 컨프롱 건도 있고 하니 해드리겠다고 함 대신 점심은 사세요
한 번 더 컨프롱할까 하다가 남의 구역에서 민폐고 어차피 배도 고프고 해서 필립자베르는 놈자베르랑 밥먹으러 감
밥먹다가 필립자베르 손에 소스가 묻어서 놈자베르가 냅킨 내미는데 필립자베르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묻은 소스 핥고 있다가 아차함 놈자베르가 딱딱한 얼굴로 툭 뱉음 거보세요 선배 물러졌다니까요
그 시간 러셀자베르는 자기도 모르게 사무실 두번째 캐비닛이 2cm 튀어나온게 눈에 거슬려서 어깨로 밀어서 줄맞추고 있었음 지나가던 동료들이 뒤로 물러남 왜? 뭐가 불만인데 사무집기를 뒤엎으려고 그래ㅠㅠ 우리 말로 하자ㅠㅠ 도넛사올까?ㅠㅠ
10. 러셀자베르가 콤주교가 있는 성당에 다니게 되는데 어느날 필립자베르도 같이 미사에 가면 좋겠다
입당성가 부르는데 러셀자베르 목소리가 평소 말할 때처럼 바리톤이 아니라 톤이 확 높아져서 조심조심 부르는 바람에 필립자베르가 누구세요 낯설어하는 거 보고싶다
Stars부를때는 긴장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원래 노래를 이렇게 하나 몇소절 듣기만 하다가 열심히 노래하는게 안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후렴부분에서 화음 맞춰주면 좋겠다...경감들의 합창돋네
그러다가 제대 앞에 선 주교님 보고 필립자베르가 놀람 Can this be true? I don't believe what I see!
러셀자베르는 열심히 마지막 후렴구 부르다가 무심코 A man your age To be as strong as you are! 부르고 아차 가사가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 돌리는데 필립자베르가 놀란 거 보고 같이 놀라라
11. 성당이고 미사중이고 상대는 일단 주교라서 필립자베르가 바로 콤주교를 잡고 너 24601!!하지는 못하겠지
미사를 보는 건지 주교를 보는 건지 모르고 끝나고 나오는데 러셀자베르는 성당 문 앞에서 신자들이랑 인사 나누는 콤주교 보고 인사하고 이야기하면서 눈꼬리랑 입꼬리랑 다 수줍게 웃고 있으면 좋겠다
필립자베르는 그 꼴을 보고는 간다는 말도 안하고 일행도 아닌 것 처럼 쿨스루하고 나와버림
러셀자베르가 주교님 여기는 저랑 근무하는 선배-하고 고개를 돌렸을때 필립자베르는 벌써 가버려서 러셀자베르가 주위 둘러보면서 당황함 But where's the gentleman gone?
12. 필립자베르는 경찰서로 돌아가서 콤주교 뒤 캐보려고 부지런히 사무실 들어가다가 휴일 당직서던 꼬꼬마쪼렙 순경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러경감님 처음엔 쫄았는데 볼수록 졸귀ㅋㅋ -ㅇㅇ씹귀ㅋㅋㅋ -헬스장에서 봤는데 뱃살도 귀여움ㅋㅋㅋ -ㅇㅇ 먹을 거 나눠주면 안 그런척 하면서 좋아하는거 다 보임ㅋㅋㅋㅋ -그런데 필경감님은...안녕하세요, 경감님! 좋은 아침이죠, 형님, 무슈, 경감님...
기겁하고 당황해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인사하는 순경들을 필립자베르가 큰 눈으로 싸늘하게 쏘아봄
순경들이 당직 서는 주제에 과자나 뜯어놓고 잡담을 하는 것도 화가 났고 하필 little people로 인사하는 것도 짜증났지만 진짜 열받은 건 러셀자베르때문이었음
발장이랑 닮아도 너무 닮은 주교 앞에서 긴장감 위기감 다 내려놓고 실밥 풀린 테디베어마냥 웃던 걸 생각하니까 더 울컥함 그러니까 쪼렙부하들한테 귀엽다는 소리나 듣고 다니지 그 자리에서 조인트를 까주고 왔어야 했는데 발장닮은주교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못 그러고 온게 새삼 분함
말없이 노려보는 필립자베르의 분노수치가 점점 차오르는 걸 보고 떨고 있는 쪼렙순경 중 하나는 지옥의 문지방 위에 까치발로 올라선 기분이었음 왜냐하면 그런데 필경감님은, 이 다음에 무서운데 존나 예쁨ㅋㅋㅋ 하는 말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시점에 러셀자베르가 와줘야겠지 선배님 선배님 왜 말도 없이 절 떠나셨나요?
13. 밥먹으러 가기 전에 잠깐 잡썰 두 자베르네 집 와이파이 이름은 Do not forget my name Do not forget me
덕분에 근방 와이파이권역내에는 전과자나 범죄자 없음 범죄없는 와이파이존
원래는 기본명이었는데 와이파이명 바꾸는 거 필립자베르한테 알려준 건 놈자베르였음 놈자베르 와이파이명은 대놓고 I am Javert
와이파이명 바뀐 다음에 주변에 몇집이 갑자기 우르르 방을 빼거나 아예 보증금도 안 받고 튀는 바람에 인근 집주인들이 곤란해했지만 놈자베르 때문인줄은 모름
놈자베르는 오며가며 곤란해하는 소리 듣고 나간 놈들 추적해서 건수 있는 애들은 다 잡아 넣었음
필립자베르한테 선배도 아예 대놓고 하지 그러냐고 그랬지만 필립자베르는 쿨스루했음 알 놈은 다 알아들어 러셀자베르는 필립자베르 집에 이사와서 와이파이 뜬 거 보고 좀 감동했음 선배 멋있다...러셀자베르도 비번은 필립자베르한테 안 물어봐도 알 수 있었음 응 당연히 24601
14. 들어온 러셀자베르는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음 러셀자베르, you are late! 필립자베르는 가라앉은 소리로 따라오라고만 하고 먼저 나가버림
그 뒤를 영문을 몰라하면서 따라가는 러셀자베르를 보면서 순경들은 죄책감과 미안함과 동정심과 그리고 호기심에 도저히 자리에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었음
필립자베르가 워낙 바쁘고 보기에도 좀 어려워보이고 그렇다고 나서서 애들 챙기는 타입도 아니라서 사실 쪼렙순경들은 그동안 러셀자베르만큼 필립자베르랑 엮일 일이 없었는데
교육때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필립자베르한테 야단 맞느니 차라리 무장한 공화주의자들 바리케이드 앞에 맨몸으로 가서 당통X로베스피에르 25금 능욕조교물을 읽어주는게 낫다고, 그러면 적어도 멘탈은 보존하고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음
내가 야단맞는건 싫지만 아무튼 궁금하잖아 순경들이 조심조심 필립자베르가 러셀자베르를 야단치고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휴게실, 화장실을 지나쳐서 비상계단쪽에서 필립자베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음 Save your breath and save your tears!
ㄷㄷㄷ하고 뭐라고 하나 더 엿들으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는 바람에 순경들이 후다닥 복도모서리 뒤로 숨었는데 필립자베르는 돌아보지도 않고 너네 자리 비운 사이에 무전 들어온 거 있으면 둘 다 나랑 여기서 대화할거임하고 지나가버림
순경들이 냉큼 튀어가지도 못하고 쫄아있는데 러셀자베르가 안에서 중얼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림 문을 열어보니 러셀자베르가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고 있었음 -러경감님 어디가세요? -러경감님? 더 올라가시면 옥상인데요??
보아하니 Stars를 부르러 가는 건 절대로 아닌 것 같은 얼굴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는 러셀자베르를 순경들이 둘다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져서 주저앉힘 청년둘을 팔에 매단채로 러셀자베르가 힘없이 중얼거림 There is nowhere I can turn There is no way to go on....
15. 러셀자베르가 집에 돌아온건 한참 늦은 밤이었으면 좋겠다
필립자베르가 집에 가서 콤주교 신상 알아보려고 휙 가버려서 바로 따라가기도 그렇고 괜히 당직 순경들 대신 무전 들어온 소소한 사건들 처리하면서 모의고사보다 골고루 3등급씩 떨어진 수능성적표 받아든 애마냥 집에 가는 시간을 늦추고 늦췄음
그러다 더 늦으면 숙직실에서 자야할 것 같은 시간까지 고민을 하다가 아무튼 집에는 들어가기로 함 어차피 비번인거 뻔히 아는데 굳이 외박하면 아침에 더 혼날 것 같았음 경찰서 숙직실은 여관방이 아니라고
힘없이 걸어가는 러셀자베르를 창문으로 내려다보면서 순경들은 손을 꼭 맞잡고 기도했음 Bring him home Bring him home Bring him home 음이 너무 높고 힘들어서 완창은 못했지만 마음은 간절했음
집에 들어갔을 때는 현관문 잠겨있어서 쫓겨났나 덜컹했는데 그냥 러셀자베르 손이 떨려서 열쇠를 잘못 돌려서 그랬음
집에 불은 다 꺼져있고 필립자베르방에만 불이 켜져있는데 문은 닫혀있었음 평소같으면 왔다고 기척이라도 하는데 러셀자베르는 오히려 들킬까봐 발소리도 못내고 부엌으로 가서 불을 켰는데 깜짝 놀랐다가 더 우울해졌음
필립자베르가 젖은 쓰레기 만지는 걸 싫어해서 그동안 음식쓰레기 버리는 건 항상 러셀자베르가 자원해서 했는데 깨끗하게 치워져있었음 더해서 부엌전체가 반짝반짝한게 물 한방울 떨어뜨리는 것도 용납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최소한의 자기의 쓸모마저 부정당한 기분에 러셀 자베르는 물도 못 마시고 자러갔음
16. 러셀자베르를 위해서 월요일 아침에는 짠하고 분위기가 풀렸으면 좋겠지만
한 남자를 거의 20년동안 쫓아다니는 사람이 뒤끝이 없을리가 없으니 필립자베르는 월요일에도 싸했으면 좋겠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놀라서 일어난 러셀자베르가 늦지도 않았는데 괜히 급하게 아침 준비하러 갔다가 당황함 커피가 없었음
원래 일요일 계획이 모처럼 둘 다 비번이니까 미사보고 생필품 떨어진거 장보고 점심먹고 들어와서 청소하고 일하자-였음
둘이 살고 있는 집은 독신경찰들을 위해서 경찰청에서 장기 임대해주는 주택이라서 그동안 퇴적된 여러가지 이상한 것들이 많았는데 둥굴레차 쑥차 마차 국화차 홍삼차 마테차 다 나와도 커피는 없었음
코코아라도 탈까 유통기한이 199*로 시작하는 스위스미스 캔을 꺼내들고 러셀자베르는 고민을 했음 이걸 먹이면 살인미수로 잡혀갈 것 같은데...일단 죽나 안 죽나 내가 먹어볼까.... 필립자베르 방에서 들리던 드라이기 소리가 멈춘 줄도 모르고
식탁 앞으로 온 필립자베르를 보고 러셀자베르가 커피..없는데요...하는데 필립자베르는 러셀자베르가 없는 사람인것처럼 주전자를 가져다가 물을 올렸으면 좋겠다 커피가 없으면 홍차를 마시면 되잖아
마리앙트와네트같은 말씀에 러셀자베르는 말도 못하고 자리를 비키려는데 필립자베르가 툭 던짐 왜 아침 안 먹고?
글자만 보면 후배의 위장을 걱정해주는 선배의 다사로운 말씀이지만 비언어적신호들을 종합하면 반항하냐? 나한테 혼난게 억울했냐? 단식투쟁하게? 하는 김에 머리도 밀지? 휘발유도 사다줄까?같은 말들이 차분하게 함축된 물음
러셀자베르는 필립자베르가 건네주는 뮤슬리를 받아들고 우유에 말아서 꾹꾹 씹어먹었음 홍차잔을 들고 식탁에 마주앉아서 가만히 필립자베르가 지켜보는 시선을 받으면서
누가 봤으면 동물친구가 다 떠난 황량한 숲에 꿀도 연어도 열매도 없어서 마른 소나무껍질을 씹어먹는 곰같다고 가엾게 여겼겠지만 필립자베르는 그런거 짤 없었음 Look down and show some mercy if you can
17. 출근해서도 분위기는 싸늘했음
필립자베르나 러셀자베르나 같은 형사과에서 일하지만 선배는 1과 후배는 3과라서 사무실은 별개였는데 두 자베르의 심상치않은 분위기때문에 3과는 대놓고 당황하고 1과는 또 무슨 일인가 숨을 죽이고 있었음
휴게실과 엘리베이터와 화장실과 사내메신저를 오간 정보로 대충 필립자베르가 평소보다 더 무섭고 러셀자베르가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을때쯤 데스크워크 끝낸 필립자베르가 나갔다 온다고 사무실을 떠남
필립자베르가 나가자마자 1과에서도 우르르 3과로 달려왔어 러셀자베르를 잡고 물었지 러셀자베르, what's wrong with you today? You look as if you've seen a ghost
러셀자베르 눈이 더 처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솔직하게 말함 아무거나 막 받아먹지 말라고 혼났음
필립자베르는 정말 자기가 왜 화가 났는지는 말하지 않고 러셀자베르를 야단쳤기때문에 더이상의 단서는 없었음 범죄도 아니고 겨우 그런 걸로 애를 잡나 더 알 수 없어진 경찰들이 머리를 굴리면서 추리에 들어가는데 어제의 순경들이 들어왔음
순경들은 어제 당직이라 오후 늦게야 출근한건데 오자마자 상사들의 닥달을 받고 사실을 실토했지 전말을 듣고난 경찰들은 다들 한 목소리로 외쳤음
아니 귀여운 걸 귀엽다는데 왜!! 뱃살도 눈도 노래방가서 떠는 것도 옥상에서 노래연습하는 것도 제복 먼지 묻으면 신경쓰는 것도 다 귀엽다고!! 필경감은 러경감의 귀여움을 몰라요!!
웅성대는 동료들의 말을 들으면서 러셀자베르는 더 깊은 자괴감에 빠졌음 자기가 그렇게 보였나 자기는 도대체 어떻게 생활해온건가 What have I done? Sweet Jesus, what have I done? Become a bear in the zoo...
18. 필립자베르는 그 시간 콤주교의 성당으로 가고 있었음
아무리 기록을 뒤져봐도 콤주교에 대한 수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 닮은 얼굴이 또 있다는 건 믿어지지가 않아서 기록만 보고는 자기가 틀렸다고 납득을 할 수가 없었음
성당에 들어가자 마침 주교가 제대 꾸미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필립자베르를 보고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다정하게 미소지었음 러경감과 같이 오셨던 분이시군요
가까이서 보니 얼굴은 더 비슷하고 목소리도 비슷하고 입모양도 비슷했음 필립자베르가 용건을 꺼내려는데 성당 앞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음
Look at that! Look at that! It's Monsieur Fauchelevant! 제대 한쪽에 세워놓은 성상이 쓰러지면서 일하던 노인을 덮친거였음 수녀님들이 어쩔 줄 몰라하고 노인은 비명을 지르고 이 비슷한 걸 어디서 본적있는 필립자베르는 콤주교를 쏘아보는데 콤주교는 온화하게 말함
-경감이 들어요. -네? -내가 마이클 볼 업고 다니느라 허리가 안 좋아서...경감이 들어요
마이클 볼이 누군데? 그것보다 저렇게 크고 무거운 걸 어떻게! 내가 발장도 아니고! 큰 눈이 더 커져서 당황하는 필립자베르를 콤주교가 앞으로 이끌었음
-자 경찰성기사님 버프 드릴게요 하나둘셋 하고 드세요
뭘 산다고? 뭘 준다고? 갑자기 어디선가 그레고리안 성가가 들리고 콤주교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서 필립자베르는 성상을 들어올렸음
You come from God, you are a saint 자기를 잡고 울먹이는 노인의 말을 들으면서 여긴 누구 난 어디 혼란에 빠진 필립자베르가 여전히 들리는 천사들의 소리같은 합창에 멍해져 있는데 노인을 살피던 수녀님 하나가 콤주교에게 말했음 주교님 아까부터 벨 울리던데 전화 받으세요
자애롭게 웃던 주교가 휴대폰을 받자 성가소리는 끊기고 그제야 필립자베르는 격렬하게 허리가 아파왔음 주교님은 전화를 받으면서 입모양으로만 말했음 I commend you for your duty And God's blessing go with you
주교님 은총 말고 힐 좀...
19. 필립자베르가 포슐르방 영감이랑 같이 구급차에 타고 병원에 갈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아픈 허리때문에 자꾸 자세가 흐트러지는데 억지로 꼿꼿하게 펴느라 식은땀을 흘리면서 경찰서로 돌아오면 좋겠다
사방에서 자기 눈치보는 분위기때문에 더 티도 못내고 자리에 앉아서 신음소리 나오려는걸 이 꽉물고 참는데 젤 윗분이 소환해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힘들게 다시 일어나서 윗분께 가보니 러셀자베르가 찾아와서 자기는 파면당해야 한다는 걸 진정시키고 그만두지 말라고 설득하다가 겨우 돌려보냈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어봄
필립자베르는 경찰로서의 기본 소양에 대해서 몇가지 이야기 했을 뿐이라고만 답하고 윗분은 더 캐묻지는 않음. 필립자베르가 이 악물고 있는게 보여서 무서워서 그랬음 나가는 필립 자베르의 등 뒤에 둘이 잘 안 맞으면 애 잡지 말고 떨어져 지내는 건 어때 할 뿐
겨우 윗분 사무실에서 나온 필립자베르는 이제는 걷는 것도 힘들어서 일단 의무실에라도 가기로 함
평소에 안 오던 사람이 오는 바람에 깜짝 놀란 의사가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보는데 필립자베르는 그냥 무거운 걸 들다가 다쳤다고 하고 입을 다물어버림
덕분에 필립자베르가 퇴근할 무렵에는 필립자베르가 열받아서 러셀자베르를 집어던지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는 루머가 돌고돌아 파견나간 놈자베르귀에 필립자베르가 러셀자베르를 Carried like a babe해서 세느강에 내다버렸다는 형태로 구체화되어서 들어감
놈자베르는 선배가 그 무거운 걸 들 수 있을리가, 들 수 있어도 강에 쓰레기 투척할 사람 아님ㅋ하고 일축했지만 필립자베르가 러셀자베르를 공주님안기해서 들어다 버리는 걸 혼자 생각하다가 빵 터져서 웃는 바람에 취조실에 마주 앉아있던 범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변호사잡고 징징 울었음
20. 러셀자베르는 집에 가능한 늦게 들어가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잔업을 하기 시작함
계급에 안 맞게 음주단속 나가는 바람에 교통과 경찰들이 바짝 얼어있는데 본인은 순경 때부터 하던 거라 마음 편하게 하고 있음
차 한대를 세웠는데 파티라도 갔다오는 건지 차창을 열자마자 술냄새가 확 나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애는 보조석 거울로 자꾸 혀를 들여다보고 있고 뒷자리에는 꽐라가 된 애가 술병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걸 금발머리 곱슬곱슬한 애가 찍어누르고 있었음 Grantaire, put the bottle down!
운전하는 갈색머리 곱슬곱슬한 애는 술을 안 마셨다고 했지만 수상해서 러셀자베르는 음주측정기를 내밀었더니 조수석에 앉은 애가 가로막고 질겁을 함
-이 사람 저 사람 입댄 걸 어디다 내미는 건데요 -부는 부분은 일회용이라 교체했...-그 이외 부분은 불특정 다수의 입김이 닿은 거 아니에요? -소독했습니다, 협조 부탁... -뭘로 소독했는데요? 염소? 알콜? 열탕? 자외선? -운전자분만 부시면 되는...
넌 안 불어도 된다니까! 러셀자베르가 성질을 내려는데 운전석에 앉은 애가 뒷좌석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음 안돼, 그랑테르, 안돼!
미처 못 피한 러셀 자베르가 발등 위에 쏟아진 뜨끈한 감각을 느끼면서 못 움직이고 있는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주정뱅이가 손등을 입으로 닦으면서 배시시 웃었음 Red! 국물의 빛깔... Black...블랙...절망의 빛깔ㅠㅠㅠㅠㅠ
주정뱅이가 갑자기 옆에 앉은 금발애를 붙들고 울다가 R자로 꺾여서 제압당하는데 운전석에 앉은 애가 다급하게 러셀자베르가 내밀고 있던 음주측정기를 불고는 혈중알콜농도가 안 나오는걸 확인하더니 초조한 눈으로 물어봄 Dear Inspector, may I go?
새삼 술마시면 심신미약으로 약하게 처벌하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애가 제정신이 아니고 고의도 아니고 위법도 아니니 러셀자베르는 보내줄수 밖에 없었음 고마워요, 무슈! 그 와중에 운전하는 애는 인사는 깍듯하게 웃으면서 하고 갔음
쓸쓸하게 웃어준 러셀자베르가 갓길 구석에 앉아서 더러워진 신발이며 바짓단을 닦아내는데 좀 많이 서러워짐 필립자베르 처음 봤을때 다 맘에 안들어해서 가지가지 다 고나리당했지만 유일하게 합격점 받은게 복장이었는데...
21. 필립자베르나 러셀자베르나 그럴 시간은 잘 없지만 TV 틀어놓다가 시간 맞으면 수사물 은근히 잘 봄
대개는 저 정신빠진 경찰놈들 하라는 수사는 안 하고!라든가 저렇게 감식결과가 빨리 나오다니 사기다! 저 살인마놈이 신성한 경찰서에서 혈액분석을...! 등등으로 가지만 둘 다 범인이나 변호사에게 분노할 때가 많음
가끔 드라마 보다가 눈물샘 건드리는 설정 나오면 러셀자베르는 안 그런척 인상 쓰고 표정관리하지만 사실 애들한테 약한 편이라 울망해짐
처음에 필립자베르는 갑자기 표정 이상해지는 러셀자베르를 보고 놀랐는데 이제는 적응해서 티슈 슬쩍 밀어주고 억지로 참는거 구경함
필립자베르는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만 내셔널지오그래픽 천체 관련 다큐 좋아함
놈자베르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마존에서 다큐 DVD 묶어서 70%세일한다고 문자 날렸을때 일하는데 스팸 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그날 퇴근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질렀음 컴퓨터에는 나사 공홈이 즐겨찾기에 들어가 있음
놈자베르는 액션 좋아해서 가끔 영화관에 보러갈 때도 있음 테이큰 볼 때 필립자베르랑 같이 갔는데 프랑스 요원이 당하는 부분부터 위법사항체크하고 있는 게 뻔한 필립자베르 표정 구경하느라 영화 제대로 못 봤음
사실 진짜 관크는 슬픈 영화도 아닌데 리암 니슨이 딸 찾을 때마다 훌쩍이던 뒷줄에 앉은 남자였음
흘긋 돌아봤는데 잘 안 보였고 딸이랑 보러왔는지 딸이 옆에서 창피해서 숨죽인 소리로 papa papa I do not understand! Are you alright? 속삭이던 것만 기억남
22. 음주 단속은 아침까지 계속됐고 다른 교통 경찰들이 자러 갈 시간에 러셀자베르는 출근을 해야했음
피곤에 쩐 얼굴로 출근을 하는데 어쩐지 길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흘끔흘끔 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불편해졌음 구두는 어떻게 닦았는데 옷에서 아직도 냄새가 나나 다리를 들어서 냄새를 맡을 수도 없어서 침울한 표정으로 사람들 피해서 걸어감
경찰서 근처에 세탁소가 있으니까 제복 세탁부터 맡겨야지 생각하면서 들어가는 정문에서 보초 서던 순경들이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러셀자베르를 보고 인사함
도대체 왜 그런 표정인지 묻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제복 걱정부터 들어서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동료들이 다들 으이구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거 왜 그러지 러셀자베르는 당황하는데 경찰 하나가 모니터를 돌려서 영상 하나를 보여줌
음주 단속하는 장면이었음 지난밤에 러셀자베르가 당한 굴욕이 고스란히 고화질로 잘도 찍혀있었음 언제 찍혔나 싶어서 당황하는데 벌써 여기저기서 퍼가고 웃긴 동영상으로 조회수 엄청 높다고 옆에서 알려줌 이게 웃기냐 어디가 이런 각박한 세상ㅠㅠ하고 싶은데 형사과 보스가 윗분들이 벌써 보고 언짢아하셨다고 경찰 위신이 뭐가 되냐고 동영상 유포자 추적하라고 함
정보과로 넘기면 쪽팔리니까 형사과에서 알아서 추적하라고 하고 보스는 회의 들어가버리고 형사3과는 졸지에 내근자가 늘어나게 됨 유머사이트를 들여다보다가 누가 하나 빵 터지면 우르르 가서 구경한다거나 갑자기 다들 심리테스트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가운데 한가롭고 한심하게 시간이 흘러흘러 오후가 됐을 때 단발 머리 남자애가 하나가 책가방 메고 쫄래쫄래 형사3과로 들어옴
길이라도 잃어버렸나 그럼 지역과로 데려가지 왜 형사과까지 올라왔나 애기야 뭐 하러 왔니 엄마 잃어버렸니? 형사들이 의아해 하는데 꼬마는 형사들이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안하고 주는 사탕은 받아 넣고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러셀자베르를 보더니 쪼르르 가서 책상에 걸터앉음 안녕하세요, 경감님, 좋은 오후에요, 자수하러 왔는데요
멍해져 있는 러셀자베르를 보고 꼬마는 생글 웃어보임 하긴 전 아직 전 어차피 형사미성년자라 처벌도 안 받겠지만요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러셀자베르와 경찰들에게 답답한지 꼬마가 말함처음 동영상 올린LittlepeopleGav 그거 나에요, 가브로쉬
23. 가브로쉬는 뻔뻔한 얼굴로 헬로팬돌이는 싫으니 커피우유 사다 달라고 해놓고 러셀자베르 의자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지만 그 사이 털어보니 아이디를 만든 민번이 본인 게 아니었음 어쩐지 성인 사이트에 올라왔더라
민번 주인을 보니 어제 운전하던 갈색 곱슬머리애였음 꼬마한테 물어보니 아는 형이랬다가 과외선생님이랬다가 동네 친구랬다가 그냥 호구랬다가 말이 엇갈림
영상업로드한 걸로는 벌을 주기 애매하니 민번 도용으로 확 겁을 줄까 일단 부모라도 소환해볼까 하는데 꼬마는 부모가 없다고 고개만 살래살래 젓고 부모 전화번호를 대지 않음 별수 없이 직접 부모 연락처를 찾는데 위에서 연락이 옴올린 사람 찾았다며? 걔 상 줘라
잡으라고 닥달할 때는 언제고 왜요... 별로 노력한 것도 없지만 형사들이 허탈해져서 물어보는데 윗분들이 기사 떴다고 알려줌찾아보니 음주단속하는 경찰의 수고 어쩌고 하는 기사였는데 덕분에 경찰의 노고가 알려졌으니 상이나 주고 돌려보내라고함
러셀자베르는 기사에는 자기 이름도 안 나갔는데 댓글에 왜 러셀자베르+1인칭소유격+곰이나 돼지, 러셀자베르+ 신체부위+ 만지고싶다, 러셀자베르+(속어) 여성의 정조를 잃게하다는 의미의 동사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들이 가득한지가 더 무서운데 옆에서 동료들이 그냥 그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이라고 페북에서 좋아요 누른거나 같은 거라고 토닥토닥하면서 댓글창 닫아버림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따질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러셀자베르가 댓글의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동료들은 꼬마한테상을 주라니 문구세트나 주면 되나 하고 사무실 뒤지는데 홍보과에서 갑자기 들이닥침
카메라에 조명까지 챙겨들고 온 홍보과에서는 위에서 가브로쉬의 보도정신을 고취하고 경찰의 사기진작에 힘써준 공로를 인정하고 어쩌고 하면서 경찰청 어린이기자로 임명하기로 했다고 함
일하다가 동원된 다른 과 동료들까지 다들 모여서 박수 쳐 주는 가운데 얼결에 카메라 앞에 끌려나온 러셀자베르가 직접 가브로쉬 가슴에 어린이 기자 뱃지 달아주는 장면을 홍보과에서는 열심히 찍어댐
결국 가브로쉬를 바래다 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러셀자베르가 떠맡게 되었음 고맙다고 하기는 기분 나쁘고 야단을 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묵묵히 복도를 걸어가는 러셀자베르 옆에서 가브로쉬가 물어봄
이거 대외수상경력에 들어가는 거 맞죠? 이거 활동하면 봉사시간은 챙겨주나요? 연말에 최소한 경찰청장상 정도는 줘야 의미가 있는데? 뭐라는지 모를 질문에 러셀자베르가 멈춰서서 내려다보는데 가브로쉬는 아까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천진한 어린이의 표정이랑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음
왜요? 아 모르시는구나?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스펙 챙기지 않으면 늦어요. 그리고 민번 도용한 건 이걸로 면책 되는거 맞죠? 그게 아니면 경찰이 불법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독려한 게 되니까 논리에 안 맞잖아요? 러셀자베르가 말문이 막힌 채로 있으니 가브로쉬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면서 말함
하기는 알 리가 없겠지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할게요 가서 일보세요 요즘 애들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는 바람에 걸음도 입도 안 떨어지는 러셀자베르는 버려두고 몇 걸음 가던 꼬마가 흘끔 뒤를 돌아보고는 한숨을 쉬고 책가방을 열어서 뭘 뒤적뒤적하더니 러셀자베르에게 다가옴
자, 하나 주고, 하나 받았으니까 이제 공평한 거에요 러셀자베르가 어쩔 틈도 없이 까치발을 하고 러셀자베르 가슴에 포켓몬 스티커를 찰싹 붙여주고 난 가브로쉬는 러셀자베르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경찰청 어린이 기자 임명장에 기념품세트까지 챙겨들고 가버림 꼬마 넌 하나만 받은 게 아닌 것 같은데...
24. Littlepeople을 흥얼거리면서 가버리는 가브로쉬를 보다가 러셀자베르가 돌아서는데 언제부터 와있었는지 필립자베르가 등 뒤에 있었음
-음주단속지원을 나갔다고? 교통과에 그렇게 사람이 부족한 줄은 몰랐는데 -자원했습니다 -자원? -젊을 때 그들과 싸웠...아니 단속을 했으니까요...-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쪼아 대는 말에 러셀자베르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데 필립자베르가 이건 또 뭐냐면서 가브로쉬가 붙여준 포켓몬 스티커를 떼어 버렸음 러셀자베르는 더 못 참고 으르렁거리면서 내뱉음 You know nothing of Javert!
복도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음 필립자베르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안 했고 러셀자베르는 면목이 없어서 말을 못 했기 때문에 러셀자베르가 눈꼬리도 떨구면서 고개도 숙이는데 필립자베르가 먼저 입을 열었음
모르기는 뭘 몰라 감옥에서 쓰레기들 틈에서 태어나 시궁창에서 기어 올라온 거? 컨프롱이라고 무조건 그것부터 나오는 것부터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내가 발장이냐? 내가 24601이야? Who am I? Who am I? Who am I?
아까는 분명히 복도 중간에 서있었는데 점점 구석으로 몰린 러셀자베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필립자베르는 손가락을 가차 없이 뻗으면서 말했음 On your way!!
그럼 선배는 공장반장인가요 항의할 법도 한데 러셀자베르는 그런 말 못하니까 필립자베르가 아픈 허리를 무리하게 꼿꼿하게 펴고 가버린 한참 뒤에야 쓸쓸하게 중얼거렸음 There was a time when men were kind... 생각해보니까 놈자베르는 둘째치고 필립자베르도 친절했던 적 없는 것 같아서 더 서러워짐
25. 퇴근한 러셀자베르가 짐을 챙기면서 슬프게 I Dreamed a Dream 을 중얼거리고 있던 시간 필립자베르는 콤주교를 미행하고 있었음 집착 쩔지만 그냥 성실하다고 해두자
이미 콤주교가 어디서 무슨 빵을 사다먹고 무슨 우유를 시켜먹는지 파악하다 못해 콤주교 우유를 훔치던 노숙자까지 체포한 필립자베르는 평일 미사를 마친 콤주교가 향한 곳이 평소 콤주교의 생활습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레스토랑이라는데 의심을 가짐
차 안에서 그냥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레스토랑에 따라 들어감 적당히 눈에 안 띌 자리에 앉아 대충 주문을 하는데 콤주교가 활짝 웃으면서 일어남 들킨 건 아니었음 콤주교가 기다리던 손님이 온거였음
울버린 말고 휴 잭맨 닮은 사람이 웃으면서 들어와서 콤주교와 인사를 하더니 깜짝 놀랄만큼 예쁜 금발머리 소녀가 콤주교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냥 손님이라기 보다는 몽실몽실포근포근한 게 가족같은 분위기였음
울버린 말고 휴 잭맨닮은...귀찮으니 그냥 휴발장이라고 하자 휴발장과 다정하게 마주 앉아있는 콤주교를 보는 필립자베르의 의심은 점점 더 커짐 놈자베르는 휴발장이 별 이상 없다고 했지만 콤주교랑 같이 있는 걸 보니 없던 의심도 마구 자라났음
분명히 콤주교의 손님 둘은 부녀지간으로 보이는데 콤주교가 남자의 이름을 부르거나 소녀의 이름을 부르면 확신이 설텐데 콤주교는 얄미울만큼 두 손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음 콤주교는 진작부터 필립자베르가 따라온 걸 눈치채고 휴발장한테도 경고를 했지만 필립자베르가 거기까지 알리는 없었지
감시하는 테이블에서는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았음 사실 다른 테이블도 그랬음 가족이든 연인이든 일행과 함께였는데 필립자베르만 혼자였지 On my own Pretending he's beside me
필립자베르가 온마이오운을 부르면서 센치해진 건 아니었음 레스토랑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갈색머리 아가씨가 훈훈한 분위기를 일시에 축 처지게 만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거
그러거나 말거나 콤주교의 테이블은 슬픈 노래는 들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즐거웠음 주로 소녀가 재잘거리면 콤주교와 휴발장이 맞장구를 쳐주거나 들어주는 쪽이었는데 디저트를 다 먹을 때까지 콤주교 일행의 대화를 엿들은 필립자베르는 패션잡지 5종 12개월 정기구독분량과 겟*뷰티 1년방영분을 오디오북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음
그때까지도 On my own을 줄창 부르는 알바생에게 항의가 들어갔는지 지배인이 알바생을 피아노에서 끌어냈음 'Ponine, get on home You're not needed in this
26. 알바생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금발소녀가 알바생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남 에포닌? 달아나는 알바생을 쫓아가던 금발..귀찮으니 코제트라고 하자 코제트가 에포닌만 보느라 필립자베르를 미처 못보고 테이블에 부딪쳐서 물잔을 엎었음 I didn't see you there, forgive me
마리우스 대사를 치면서 코제트가 빤히 보는 바람에 오한을 느끼는 필립자베르 등 뒤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림 A heart full of love A heart full of song I'm doing everything all wrong
코제트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눈치없이 혼자 진도 건너뛰어서 하트풀옵러브까지 나간 건 아까부터 유난히 콤주교 테이블에 뭐 필요하신 건 없냐고 괜히 친절하게 얼쩡거리던 알바생이었음 가슴에 붙은 명찰에서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확인하자 콤주교가 성호를 그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필립자베르는 미행을 들켰는데 거기에 분위기까지 이상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필사적으로 생각을 하는 중이라 못 들었음
그 와중에 코제트가 다시 필립자베르를 만만치 않게 큰 눈으로 보면서 물었음 Oh God, for shame I do not even know your name 자꾸 마리우스 대사 치는 코제트한테 휘말려서 I am Javert! Do not forget my name이라고 답할 뻔 했지만 간신히 입을 다문 필립자베르를 구한 건 휴발장이었음
아, 러셀 크로우 닮은 애랑 사시는 분 여기서 뵙네요 가뜩이나 쏠려있던 주위의 관심이 휴발장의 말에 어머 수군수군하고 더 커지는데 Dear monsieur Won't you say? 까지 묻는 코제트를 휴발장이 다독거림
-사랑하는 딸아 이분은 러셀 크로우 닮은 파트너가 있단다 -어머 그래요? -아니 걔랑 그런 사이 아닌... -우리 이분의 취향을 존중해드리고 곤란하게 하지 말자 -네 파파 그럴게요 -아니 그런 취향 아닙니다 걔는 벌써 집 나갔고...
ㅉㅉ 게이인데 애인이랑 깨지고 그래서 혼자 밥 먹나 봐 으이구불쌍 동정 어린 눈으로 수군거리는 사람들과 사람 말을 듣지 않는 부녀를 앞에 두고 상황을 뒤늦게 수습하려는 필립자베르의 등 뒤에서 알바생은 꿋꿋하게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었음 My name is Marius Pontmercy
넌 시ㅂ, 아니 어린양이여 자네는 제발 눈치 좀..인자하게 웃으면서 알바생의 어깨를 꾸욱 쥐고 밀어낸 콤주교가 혼돈의 카오스에 끼어들었음 필경감 식사는 잘 했나요? 괜찮으면 가는 길이니 내가 태워다 드리지요 손수건으로 젖은 제복을 닦아주면서 친절하게 하는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음
휴발장과 다정하게 인사하고 코제트가 볼에 해주는 키스까지 흐뭇하게 받고 토닥거리면서 훈훈하게 헤어진 콤주교가 필립자베르를 부축해가면서 식당을 나서고 휴발장과 코제트도 뒤를 따라 나오는데 알바생은 뒤늦게 바닥에 떨어진 콤주교의 손수건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집어 들어서 냄새를 맡고 슬쩍 입도 맞춤
머릿글자가 C 인걸 보니 아가씨의 이름은 콜레트일까 코게트일까 상상하면서
27. 주교의 차라고는 믿을 수 없이 낡은 차 조수석에 앉아서 집에 가는데 콤주교가 식사는 즐거웠냐고 물어 봄 즐거울리가 있을리 없는 필립자베르가 대답을 안 하는데
콤주교는 혼자 먹지 말고 후배도 데리고 오고 그러라고 상냥하게 말함 범인을 잡는 것도 좋지만 남들처럼 누릴 것도 누리고 즐길 것도 즐기고 그러라고 그런 건 죄악이 아니라고 인간답게 사는 거고 신이 인간을 만들어주신 이유라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콤주교에게 필립자베르는 딱딱하게 물어봄
원래 신자들하고 식사 자주 하시냐고 주교 스케쥴 바쁘지 않냐고 어딜 보나 발장같이 생긴 사람이니 콤주교의 충고도 어쩐지 발장이 연막치는 걸로 들릴 뿐 곱게 들리지가 않았음
콤주교는 누구에게든 기꺼이 시간 낸다고 말 나온 김에 조만간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함 이번주는 좀 그렇고 다음주 정도 어때요? 거절 안 할 거지? 눈으로 묻는 말에 필립자베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같이 밥먹고 싶지는 않은데 접근하면 주교에 대해 품고 있는 의심을 해결할 수 있을것도 같았음
그 사이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필립자베르가 허리 때문에 숨을 삼키는 걸 본 콤주교가 다친 거 미안하다고 손 달라더니 힐은 안 해주고 대신 볼펜으로 전화번호를 적어줌
하나는 콤주교가 침맞으러 다니는 병원 그럼 이건 뭡니까 9430으로 끝나는 휴대폰 번호를 묻자 콤주교는 자기 휴대폰 번호라고 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참 그리고 경감이 체포한 노숙자 풀려난 건 알고 있죠? 그 우유 제가 먹으라고 준겁니다 웃으면서 덧붙이고서는 콤주교는 그 사이 꺼진 시동을 다시 걸었음
털털거리면서 불안하게 다시 출발하는 콤주교의 차를 지켜보던 필립자베르는 아직도 간질거리는 감각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내려다봄 메모지는 어쩌고 손바닥에 적어주나 하면서도 결국 씻기 전에 주교번호 따로 저장해둠 망설이다가 침술원번호도
28. 다음날 아침은 필립자베르에게 유난히 힘들었음 경찰 된 이후로 처음으로 늦잠을 잤음
아픈 허리로 몇 시간씩 잠복을 하고 미행을 하고 황당한 일까지 겪었으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건 그 사이 러셀자베르의 Stars가 울려야 잠이 깨는 데 익숙해졌는데 그 알람 소리가 안 들리니까 일어나지를 못 한 거
익숙한 알람은 안 울리고 아침준비하는 소리도 안 들리고 거기다 밤에 들어왔을 때는 바로 씻고 자러 가느라 몰랐는데 아침에 식탁에 보니 러셀자베르가 그동안 쓴 공과금 원단위 절사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봉투에 돈 넣어두고 간 걸 보니 정말 얘가 나갔구나 실감이 들었지만 필립자베르는 애써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준비하고 출근해버림 문이 닫힌 러셀자베르 방은 가구 빼고 텅 비었을 테니 굳이 열어보고 싶지도 않았음
늦지 않게 출근하는 것 만도 바쁜데 놈베르한테 메시지가 와서 뭔가 하고 열어보니 러셀자베르 사진이었음
누가 러셀자베르랑 사진 찍고 -토베르 만났음 인증ㅋ하는 사진 짐 싸서 나가던 중이었는지 러셀자베르는 양손에 짐을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있는데 놈베르는 당연히 필립자베르 성질 돋구고 러셀자베르 까려고 보낸 사진이었음
집 나가서도 잘 사나보네 안심이 되는 한편으로 성질이 나고 굳이 아침부터 사진 보낸 놈베르한테도 성질이 나서 답장 안 보내고 사진을 지우려던 필립자베르가 그 자리에 멈춰섬 사진의 배경에 발장, 콤발장이 찍혀있었음 아무리 화질구지여도 픽셀단위로 발장을 알아볼 수가 있었음 자베르니까
뒤에서 지나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콤발장이었음 어제 러셀자베르가 짐싸서 나갈 동안 필립자베르는 콤주교를 미행했지만 사진속의 콤발장이 지나간 곳을 콤주교가 지나간 적은 없었으니 사진 속의 콤발장은 콤주교일수가 없었음
콤주교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 콤주교는 콤발장이랑 다른 사람이라는 것 What have I done? Sweet Jesus, what have I done?
중얼거리던 필립자베르가 서둘러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수군거리던 동료들이 필립자베르 보자마자 쫓아와서 물어봄 러셀자베르 전근신청했다는데 들었어요?
29. 러셀자베르는 인사문제로 높은 분과 면담하고 바로 현장 나가는 바람에 필립자베르는 러셀자베르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음 그렇다고 전화해서 뭘 어쩔 수 있으면 자베르가 아니지
결국 퇴근을 하고 필립자베르가 찾아간 곳은 콤주교의 성당이었음 늦은 밤이지만 콤주교의 성당 문은 열려있었고 필립자베르가 안으로 들어가자 무릎 꿇고 기도 중이던 사람이 뒤를 돌아봄
침착한 얼굴로 필립자베르를 보는 사람이 입을 열기 전 필립자베르는 공손하게 말함 주교님, 고해성사를 하고 싶습니다
고해실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필립자베르는 그간의 죄를 고함 주교님을 의심한 죄를 한참 이야기 하면서 전에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나쁨 자아비판에 들어감
주교님을 의심한 죄에 대해서 20분 발장을 추적한 세월에 대해서 30분 정도 이야기하다가 그리고 러셀자베르한테도 경찰이 귀엽고 그러면 안 되는 거라 야단치기는 했는데 어쩐지 잘못한 것 같다고 한 마디 덧붙였음
오랜 시간 듣고 있던 주교님은 필립자베르에게 나직하게 말함 기억하세요 The truth that once was spoken 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
주교님의 말은 별로 납득 되지 않았지만 일단 필립자베르는 반론을 제기할 처지가 아니니까 얌전하게 나왔음 인사하고 돌아서는 필립자베르의 등 뒤에서 주교님은 상냥하게 인사해줌 좀 놀랐지만 만나서 반가웠어요, 밤길 조심해서 가요, 경감
성당에서 나와서 걷던 필립자베르는 주교님이 해준 말을 곱씹었음 역시 러셀자베르에게 전화를 해볼까 딱히 전근 가겠다는 걸 말리려는 건 아니지만 생각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휴대폰이 없었음 고해성사 보기 전에 방해될까봐 끄고 고해소에 두고 온 게 그제야 생각이 나서 성당으로 되돌아감
성당안으로 들어가보니 주교님은 없고 수녀님만 남아서 성당을 정리하고 있었음 포슐르방 영감때 본 적이 있는 수녀님에게 방금 전 고해성사보고 휴대폰을 놓고 갔다고 꺼내와도 되겠냐고 묻는데 수녀님이 그러셔도 되는데...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함
-그런데 누구한테 고해성사 받으셨나요? -주교님께요 -방금전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무슨 문제라도? -주교님 사제단 회의 주재하러 가셔서 안 계신데요 오늘 새벽 일찍 출발하셨는데... -하지만 아까 분명히 주교님께 고해성사를...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필립자베르가 수녀님을 내버려두고 휴대폰도 잊어버리고 성당 밖으로 달려나감 아까 자기가 고해성사를 한 사람은 콤발장이었음 어쩐지 필경감이 아니라 경감이라고 부를 때 이상했는데!!
콤발장한테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니 발장 추적한 세월 이야기하면서 마들렌일때 어땠는지도 다 이야기했는데 그게 본인이었다니 발장 잡으면 교회법으로도 고발해버릴거라고 이를 갈면서 주위를 살피는 필립자베르의 눈에 길 건너편에서 부지런히 걸어가는 콤발장이 보였음
순간적으로 콤발장만 보였다고 하는 게 맞음 그래서 필립자베르는 튀어나온 차를 보지 못했음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진 필립자베르는 머리로는 뺑소니 차량을 봐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길 저편에서 멀어지는 콤발장한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음 그러다 의식을 잃음
30. 러셀자베르가 필립자베르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는 벌써 다른 동료경찰들이 와서 웅성거리고 있었음
침통한 분위기라 물어보기도 겁나서 떨면서 병실에 갔더니 놈자베르가 필립자베르 침대 옆에 앉아있어서 들어가다 말고 멈춰섰음 놈자베르는 무서우니까
놈자베르는 러셀자베르가 온 걸 알 텐데도 아는 척도 안 하고 의식 없는 필립자베르한테만 말함
그렇게 차 번호 봤냐고 물어봤는데 24601 24601만 중얼거렸다면서요 덕분에 CCTV 확인하고 이제야 잡으러가요 잡아올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나한테 가르친 사고대처 매뉴얼 복습합시다 그러다 빈정 상하면 컨프롱도 하고
저 할 말만 하고 난 놈자베르는 지나쳐서 가려고 하는데 러셀자베르가 길 안 비켜주고 물어봄 범인 누굽니까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보던 놈자베르가 필립자베르쪽 돌아보면서 말함 뺑소니 친 놈 여관겸식당주인이라네요
놈자베르가 방탄조끼입고 무장한걸 보고 범인이 갱단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러셀자베르는 지원나갈 생각으로 물어본 거였는데...여관주인이 살아서 잡혀올 수 있을까 걱정되는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나가는 놈자베르를 보던 러셀자베르는 필립자베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음
그 사이 필립자베르는 다시 성당에 가 있는 꿈을 꾸고 있었음 은촛대를 들고 있는 콤주교가 성당에 있었음 필립자베르가 콤주교에게 고개를 숙이는데 콤주교가 물어봄
-Who am I? -디뉴의 주교님이십니다 -Who am I? -미리엘 주교님이십니다 -Who am i? -주교님...-24601! 마지막 꺾는 음까지 완벽하게 콤발장인 발장이 은촛대를 들고 자기를 후려치고 달아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따라갈 수가 없었음
I will be waiting 24601! 끙끙거리며 눈을 뜬 필립자베르는 정말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아서 놀라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러셀자베르가 필립자베르 다리 위에 엎드려서 잠들어서 그런 거였음
31. 차 이야기 나온 김에 세 자베르 중 운전을 제일 잘 하는 건 사실 러셀자베르 탈것 종류는 말부터 바이크 1종 2종 수동 자동 안 가리고 잘 다룸 대신 주차를 못함
러셀자베르랑 같이 살면서 러셀자베르 차 처음 탔을 때 필립자베르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할 거라고 각오하고 멀미약도 먹고 보험계약서도 다시 읽어보고 탔는데 생각보다 운전 잘해서 좀 놀랐음
보기랑 다르네 내가 너무 선입견을 가졌나 그러다 주차하느라 쩔쩔 매는 걸 보고 그럼 그렇지 안심하고 내리라고 하고 대신 주차해줬음
필립자베르는 신경쓸게 너무 많아서 운전 자체를 싫어하는데 주차는 잘함 주차티켓은 필요없으니 입에 안 물었지만 한 손은 조수석에 얹고 폭풍후진하면서 주차하는 필립자베르를 보고 선배 멋져...생각하던 러셀자베르는 거리 안 봐주고 딴 생각한다고 필립자베르한테 야단 맞았음
이건 습관으로 굳어져서 그 후로도 운전은 러셀자베르가 주차는 필립자베르가 자연스럽게 분담하게 됨
제일 못 하는 건 놈자베르지만 본인은 어디까지나 터프하게 운전한다고 착각하고 있고 아무도 지적을 못 함
필립 자베르가 놈자베르가 운전하는 옆에 탔다가 급정거 급출발때문에 속 안 좋아져서 놈자베르한테 운전 제대로 하라고 지적했다가 선배 위장이 너무 섬세한 거라고 되받아치는 바람에 컨프롱했던 과거가 있음
아직도 놈자베르는 생각나면 어르신 멀미약은 드셨냐고 필립자베르 성질 긁음 필립자베르는 거의 무시하지만 너 그렇게 운전하다가 목디스크 걸린다고 다섯 번에 한번은 맞받아쳐 줌 뒤끝? 그건 자베르들 종특 아닌가요
그래서 순찰차 동승교육대신 교통사고 대처 매뉴얼만 공부시킨 거였음 놈자베르는 주차 못하는 건 아닌데 금 밖으로 요만큼 빠져 나간 거나 차가 요만큼 삐딱한 걸 못 참아서 시간 오래 걸림
언젠가 필립자베르는 놈자베르 옆에 러셀자베르를 태워보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본 적이 있음 당연하지만 셋 다 무사고에 교통법규 위반 없음
대신 담배꽁초 버렸다거나 신호위반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위반차량 끝까지 잡힐때까지 쫓아가느라 사소한데 집착하지 말라고 야단맞은 경험은 셋다 있음
32. 진짜로 움직여지지 않는 건 오른팔이었지만 금이 가서 깁스 해서 그런 거였고 가벼운 뇌진탕 정도라 필립자베르는 이참에 며칠 더 푹 쉬라는 걸 물리치고 퇴원함
러셀자베르가 말없이 퇴원 수속 해주고 집에 태워다 주고 식사 준비 해주고는 쫓겨난 몸이니까 말없이 돌아감
있어도 되겠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그러라고 하려던 필립자베르는 가겠다는 놈 안 잡고 혼자 약 먹고 잠 약 봉지가 한 손으로 안 뜯어져서 입으로 뜯느라 짜증 난 거 말고는 혼자서도 잘 했음
다음날 아침 높낮이가 상대적으로 평탄한 Stars가 들려서 필립자베르는 잠에서 깸 러셀자베르의 스타즈였음 환청이 다 들리나 머리에는 이상없다고 했는데...누운 채로 멍하게 생각하는데 소리가 끊어지더니 문밖에서 러셀자베르 목소리가 들림 일어나셨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눈으로만 묻는 필립자베르가 일어나는 걸 도우면서 러셀자베르는 선배가 괜찮아질때까지 출퇴근하면서 거들겠다고함
팔을 다친 건 혼자 머리를 감을 수 없는 필립자베르를 보기 위함이었으니 러셀자베르가 소매를 걷고 묵묵하게 머리를 감겨주는데 눈 감고 있던 필립자베르가 먼저 입을 열면 좋겠다 나한테 할 말 있나
대답이 없어서 필립자베르가 눈을 떠보니까 러셀자베르는 휴발장 앞에 자기고발 할 때 비슷한 표정을 하고는 있는데 말은 없음 그럼 우리 문명인답게 두개골을 부술 기세로 누르지 말고 대화하는 게 어떨까
러셀자베르는 그제야 필립자베르의 두피를 꾹꾹 누르고 있던 손을 뗌 꽤 아팠는지 필립자베르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음
러셀자베르가 머뭇거리다가 말함 왜 주교님을 의심한다는 걸 자기한테 말하지 않았냐고 왜 자기를 믿지 못했냐고
병원에 누워서도 필립자베르는 사고경위서를 제때 제출했고 러셀자베르가 그걸 받아 적었으니 왜 필립자베르가 그 시간에 성당에 갔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음
하룻밤을 꼬박 고민하고 묻는 말에 필립자베르는 눈을 감더니 겨우 말했음 -수건
33. 그러게 내가 왜 말을 안 했을까?
필립자베르가 물어본 건 성당에서 받아온 휴대폰도 가져다 줄겸 덤으로 CCTV 추적해서 콤발장 경로 알아냈다고 찾아온 놈자베르한테였음
사실 완전히 추적은 못했고 놓쳤지만 그래도 밤을 새워서 작업해가면서 24601 잡아주려고 했는데 한참 저화질 화면 바라보더니 묻는 말이 그거라 놈자베르는 빈정이 상했지만 일단 대꾸는 해줌 걔한테 물러서 그렇다니까요
필립자베르는 납득을 못함 그러니까 걔한테 왜 물러지냐고
-제가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예를 들면? -사표를 쓴다거나 혹은 그 이상의 극단적인 일을 한다면? -이유가 있을 테니 납득하고 인정하겠지 -걔가 그러면?
놈자베르가 던진 말에 필립자베르는 새삼 놀라서 봄 -걔가 그럴 수 있을까? 도대체 왜 그럴까? 걔 못할 것 같은데? -ㅇㅇ 그거
약을 파는 건지 믿어도 되는지 의심하는 눈으로 보는 필립자베르에게 놈자베르는 영상 사본을 담아 건네면서 덧붙임
-거기다 주교 꽤 따른다면서요. 그거 부수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까
놈자베르가 말하는 비슷한 경험이 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필립자베르는 알았지 그거라면 놈자베르도 경험한 적이 있고 필립자베르는 아예 콤주교인 줄 알았던 콤발장에게도 고백을 했으니까
필립자베르는 나 진짜 물러졌구나 반성하고 러셀자베르와 대화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함 일단 24601부터 잡고 나서 그 다음에 러셀자베르를 잡자
34. 필립자베르는 콤발장의 자취가 끊긴 지점부터 추적을 시작함 콤발장이 사라진 곳은 막다른 골목도 아니고 대로변이었음 반짝반짝한 번화가 한 가운데에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하는 필립자베르의 귀에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들림
-하지만 아빠랑 약속을 했잖니, 아빠는 정말 슬프구나 뭐? 지금 걔랑 있다고? 한 달 전부터 예약까지 하고 기다렸던 건데 정말 안 올거니 코제트?
전화기에 매달려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휴발장을 본 필립자베르는 콤주교가 떠오르고 반사적으로 다시 콤발장한테 속은 게 생각나서 인상을 쓰고 있다가 휴발장이 부른 이름을 똑똑히 들었음 코제트
몇 분 사이에 팍 늙어서 궤짝 하나 못 들어 올릴 얼굴이 된 휴발장이 전화를 끊고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은 한숨을 쉬면서 내 황혼의 보석을 훔쳐간 어쩌고 중얼거리다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필립자베르를 발견함 Valjean, at last,We see each other plain 내 발장은 아니지만
러셀자베르는 그 시간 콤주교를 찾아감 필립자베르의 의심을 자기가 직접 해결하고 싶기도 했고 콤발장의 존재를 콤주교에게 묻고 싶기도 했고 뭣보다도 콤주교를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음
주교관 문을 두드리자 나온 콤주교는 러셀자베르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함 소박한 거실 겸 서재에서 러셀자베르는 숨을 들이쉬고는 비장하게 말함 -주교님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주교님!
안쪽을 향해서 외치는 주교를 본 러셀자베르가 놀라기도 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에서 콤주교가 나옴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같은 얼굴을 보고 어떻게 해야하나 체포부터하나 멈칫하는 러셀자베르를 향해 콤발장과 콤주교가 미소지으면서 손을 뻗음
35. 휴발장이 뒤로 물러서면서 삼분만 달라고 딸한테 전화 좀 하겠다고 하지만 필립자베르는 내가 미쳤냐고 비웃는데 전화가 울림
내 발장이 아니라도 아무튼 발장을 잡을 수 있는 이 상황에 전화 따위 무시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휴발장 전화도 울려대기 시작했음
계속 울리는 벨소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진 둘은 눈짓으로 동시에 전화를 받기로 함 필립자베르에게 온 전화는 주교관의 유선전화였음 전화를 받던 필립자베르는 휴발장을 노려보더니 택시를 잡으러 달려감
러경감은 우리가 잘 데리고...까지만 말하다가 전화가 끊어지는 바람에 ...있겠으니 시간 되는대로 오라고 하려던 콤발장이 콤주교쪽을 돌아봄 그쪽은 다행히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음
필립자베르와 휴발장 중에서 주교관에 먼저 도착한 건 필립자베르였음 콤콤을 앞에 두고 벽을 등진 러셀자베르는 아군의 도착에 반가워하는데 필립자베르는 이미 러셀자베르고 콤주교고 보이지 않는 눈치였음
러경감을 데리고 있다는 말에 달려오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콤발장이었기 때문이었음
콤발장도 러셀자베르를 보던 것과는 다른 눈으로 필립자베르를 보는데 둘의 컨프롱이 시작되기 직전 콤주교의 호출을 받은 휴발장이 달려들어옴
휴발장을 보자마자 러셀자베르가 놈자베르도 칭찬해줄 기세로 검을 뽑아들고 앙 가르드 자세를 취하고 휴발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콤주교의 장우산을 집어들면서 발장 둘과 자베르 둘 사이의 긴장감이 파직거리는데 나직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림
우리 모두 사랑의 전사가 되세 우리 모두 사랑의 전사가 되세 우리 모두 사랑의 전사가 되세 우리 모두 사랑의 전사가 되세
그 번역은 진짜 좀 아닌데요 주교님 네 명 중 누군가는 항의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음 어쩐 일인지 손도 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음 컨프롱 자세 그대로 오그라들어 굳어진 네 명 가운데로 콤주교가 끼어들었음
불쌍해서 더이상 봐줄 수가 없군요 형제들 그렇게 알아듣게 말로 하려고 했는데 이게 뭔가요 러경감, 필경감 내가 그렇게 불쌍하게 살지 말라고 말했어요 안 했어요? 콤발장, 휴발장 딸한테 인생 다 걸지 말고 친구 좀 만들라고 말했어요 안 했어요?
이 아픈 심정을 치유하려면 넷이 손에 손을 맞잡고 a heart full of love라도 부르게 하고 싶지만 각 커플링 지지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준으로 할 테니 넷 다 정신 차리고 행복하게 살아보세요 I will see it done!
온화하게 조곤조곤 말하던 잔소리와는 전혀 다른 날카롭고 단호한 한 마디에 두 발장과 두 자베르는 잠깐 세상 전체가 재부팅되는 기분이 들었음
러셀자베르가 제일 먼저 검을 다시 꽂아 넣고 필립자베르의 눈매가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지고 콤발장의 등 뒤에서 일렁이던 검은 오오라가 사라지고 휴발장이 장우산을 내려놓으면서 손등에서 나왔던 것도 수납하고 나자 주교관 거실에는...상투스가 울려퍼졌음
전화 좀 받고 올테니 거기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들 나눠요 콤주교가 전화를 들고 옆방으로 가고 남겨진 넷은 어색하게나마 의자에 앉았음
주교가 미리 준비해 놓은 차를 휴발장이 모두에게 따라주고 콤발장이 케이크 접시를 들어 러셀자베르에게 건네주고 필립자베르가 포크와 냅킨을 챙기는 거실은 핑크빛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절망의 빛깔은 아니었음
옆방에서 콤주교의 목소리가 나직나직하게 새어나오는 가운데 첫번째 티타임은 그렇게 시작되었음
-네, 여기는 해결했어요, 얼주교. 그래요, 그쪽도 잘 부탁합니다. 그쪽이 지지부진하니까 놈경감이 자꾸 필경감한테 어리광 부리고 러경감 시샘하고 그러잖아요. 아니, 똑바로 말한 것 맞아요. 응? 그야 놈경감은 얼주교 관할이니까요. 허허, 떠넘기다니 그럴리가요, 얼주교는 농담도 참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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