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을 택해서 슬기롭게 만들려고 애쓴 영화다. 그래서 하찮다는게 아니고 영리하게 마음 쓴 티가 난다는 거다. 그 티마저 나지 않는게 고수의 경지겠지만 영화는 잘 봤네 한복 예쁘다...:Q하고 끝날 영화였다.
류승룡이 아니었다면.
이병헌이 못해서 류승룡만 보였다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투톱도 아니고 이병헌 원톱 영화다. 사실 난 그래서 슬프지만. 중전 분량을 줄이고 허균과 하선과 광해와 그외의 정치와 파워게임에 비중을 두고 여기에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을 끼얹으면 나만 좋고 영화는 망하겠지ㅇ<-< 배우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광대 하선과 왕 광해의 1인2역은 닮되 달라야하는 역할에서 서로 뒤섞이지 않았고 그래서 후반 광해가 돌아왔을때 진짜라는 증거를 확인하기 전에도 이미 아, 저건 광해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을만큼 구분지어졌다.
그래도 내 눈은 류승룡을 보고 있었지. 이건 취향의 문제다. 군신간의 관계에서 신하를 보게 되는 건.
초반의 허균은 의심과 불안에 찬 광해가 허락할만한 유일한 신하였지만 허균 자신이 광해를 충심의 대상으로 보았는가는 의심스럽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이 정치라 하고 왕의 부재를 틈타 원하는 바를 이루려던 차가운 그는 광해 역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선이 처음으로 읽어야했던 교지는 그간 쌓였던 허균의 갈급함을 보여준다. 광해도 사람의 마음을 믿을만큼 순진할 수는 없는 왕이었을테니 허균과 광해 두 사람의 결말이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그것은 그러려니했을 일인것이다. 그러나 하선이 왕이 되어가면서 허균의 시선이 바뀐다. 클라이막스에서 하선에게 왕이 되게 해주겠다-는 허균의 눈은 이미 나의 왕이라고 절절하게 외치고 있는 눈이다.
나 이런 거 엄청 좋아하지ㅠㅠ 내가 왜 동양 시대물을 못 버리는데ㅠㅠ
하선이 결국 왕이 되기를 포기했을때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선이 왕이 되겠다고 하고 허균이 자신의 왕을 위해 광해를 제거했다면 그것은 이미 하선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왕이 되었다해도 결국 하선이 광해와 같아지거나 혹은 그 전에 살아남지 못했을테니. 자신의 목을 내놓고, 그 결과 다가올 끊없는 의심을 짊어진 허균이 하선을 보내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하선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기때문이겠지. 그냥 하선이 손잡고 율도국 가서 사세요...
그러나 마지막 자막은 훈훈한 몰입을 홀랑 깨고 얼음물을 끼얹는 한 수였다.
인조가 워낙 병크가 크고 쉴드불가라 반사이익을 받아서 그렇지 광해가 온전하게 백성을 위한 자주적인 명군은 아니다. 중전 역시 슬픈 달님같이 처연한 외로운 왕비는 아니었고. 가뜩이나 보면서 불편해했는데 자막으로 그렇게 여운을 깎아먹다니.
시대물을 보는 이유가 결국 지금의 현실때문이니까 광해-하선에게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씌운것까지는 허구니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보는 내내 딴지 걸고 싶었지만 몰입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가치평가하는 자막을 떡하니 넣어버리니 뭐라고요? 다시 말해봐. 소리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거기다 이미 영화에서 그만큼 말했으면 그만이지 중언부언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