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하다가 보니 해가 떠서- 자려고 보니 세탁 줘야 해서 아저씨 오기를 기다리면서 끄적끄적... 명작의 힘은 위대해요(싱긋)
봄봄
"주군!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워쟈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자식아! 성례구 뭐구 공부를 해야지!"하고 만다.
이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반려가 될 여몽님 말이다.
내가 주군께 출사해서 녹봉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십년하고 꼬바기 일곱달을 했다. 그런데도 공부를 해야한다니까 이 공부는 언제야 다하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산월 토벌을 잘 해야 한다든지, 혹은 세금이 덜 걷힌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더 걷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말이 많다. 허지만 여몽님이 아직 공부가 덜 됐으니까 더 해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설전100연승이면 100연승 태학 입학이면 입학, 기준을 딱 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여몽님이 공부가 되는대로 성례를 시켜주마 했으니 그 공부가 언제 다 할른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머리가 한 번 읽으면 죽죽 이해하고 외울줄 아는 줄로만 알았지 열번 읽어서는 뜻도 못 외는 머리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주군께서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 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주군이 제가 다 알아 채서, "어참, 여몽 공부 많이 했다. 고만 시집가거라."하고 식읍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야단이다.명색이 좋아서 여몽님 반려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여몽님이 공부 다 하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태학 입학시험 기출문제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공부 얼마나 됐는가 볼까했다. 마는 주군이 공부란 건 입시의 틀에 가둬서는 안되는 거라고 해서 문제는 펼쳐보지도 못 했다.
진지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책상 위의 공부한 흔적들을 훔쳐보곤 하는 것인데 그럴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에미 오하의 아몽!'하고 강둑에다 불을 팍, 싸지른다. 아무리 훑어봐야 내 당숙이 열 살에 공부하던 것 (당숙이 남보다 공부를 좀 잘 하긴 하지만)을 석달열흘째 같은 곳만 펴놓고 밤낮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자유공네 아들 녀석은 성질은 못 되먹어도 하나를 보면 열하고 둘을 더 안다는데 왜 이리도 여몽님은 공부가 더딘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공부 방법이 나쁘니까 속도가 안 붙나보다, 하고 내가 넌즛넌즈시 글선생을 보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도성으로 돌아올때면 주유님 영전에 젯상을 차려놓고 '여몽님의 공부 좀 도와줍소사. 그러면 담엔 형주땅 도로 뺏어다 인수를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머린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대든 것이지 결코 주군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산에 숨어들어간 백성들 호구 정리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백성들한테 조세를 걷어서 우리 여몽님 과외비라도 두둑해지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관리를 해서 뭘하는거냐. 때되면 삽질하는 주군의 합비공략(해봐야 장료한테 발리는 걸 알고서도 거기부터 점령해야 한다나, 그 삽질)을 지원하기 위하여 애쓰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불이야!"
난 호구 정리를 하다말고 화로를 툭 엎어놓고서 그대루 막사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꼈던 호구목록을 그냥 땅바닥에 털썩 메어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호구조사가 암만 바빠도 불나면 불부터 꺼야하니까. 불이 났는데 누가 장부정리 따위를 하고 있느냐. 발긋발긋 피어나는 불꽃을 보며 오래 글쓰느라 결린 어깨를 주무르면서 주군의 막사쪽을 쳐다보았다.
저녁 반주를 즐기다가 달려나온 주군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백언 이자식, 왜 또 이래 응?" "화로가 갑자기 엎어져 절을 하기에요!"하고 불구경에 슬며시 눈을 돌리려니까 주군은 약이 올랐다. 저도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잡은 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자식아. 툭하면 불을 싸지르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우리 주군은 술을 마시면 이렇게 술버릇이 아주 못됐다. 부하래도 지네 손가 다음으로 세력이 큰 호족한테 이자식 저자식하는 이놈의 주군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오나라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술자리에서 안 당해본 사람은 오나라 사람도 아니라 한다. 옆동네 장수들도 그를 돌아세놓고 강동의 쥐새끼(오나라 땅이 장강 동편에 있으니까) 쥐새끼, 하고 손가락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번히 술이란 마시고 나면 사람이 과감해지고, 그리고 취하면 안 하던 짓도 하고 잘 하던 짓도 더 하는 거지만 주군은 술버릇이 아주 꼭 개다. 주군이 주는 술을 사양한다든가 안 취했는데 취한 척 한다든가, 아니면 취했다고 주군한테 개기면 영락없이 주군이 버럭버럭 저놈 가만 안 둔다고 성을 낸다. 이 바람에 주는 술은 먹고 죽는다 하는 각오로 다 받아먹고, 취했어도 주정을 해대면 안 되고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 그도 안 되면 제 술버릇은 먹으면 쓰러져 자는 거올시다 하고 폭 쓰러져 자는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주군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 생각은 못하고 뺨 한개를 딱 때려놓고는 주군은 무안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군량도 거둬야 하고 양잠도 가르쳐야 하고, 한참 산월에 수적이 날뛸 때인데 나 일 안하고 내 병사에 군량까지 거둬들여 오군 본가로 가 은거하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못 쓰는 헌 배에 불을 좀 지르니까 불장난 한다구 옥벼루를 집어던져서 붓잡을 손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군무를 못 보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백언,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이번에 합비 공략하고 나면 너 장가 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한 달 걸릴 산월 토벌을 열흘만에 해치우니까 주군도 파란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합비 공략하고 혼인을 시켜줘야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수적을 척척 잡아들이고 호구를 쑥쑥 늘려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위나라 군대와 싸우고 돌아온 여몽님을 술잔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공부를 마쳐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원!"하고 남 낯짝만 붉혀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주군, 하고 궁에 불을 싸지르고 조조한테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꼴하고는 조조나 유비한테로 차마 못간다. 장가를 든대놓고 오죽 못났어야 불만 싸지르고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테니까......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주군 앞으로 다가서며, "전 퇴직하겠습니다. 그동안 녹봉 쳐주십시오." "너 장가들려고 일했지 어디 녹봉 받으려 일했니?" "그러면 얼른 성례를 시켜줘야 안 합니까.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하는 거냐, 아몽이 공부를 못 하니까." 하고 어름어름 빨간 수염만 쓰다듬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유황숙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 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자식이 왜 이래 주군을."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주군 제가 내 기운은 못 감당한다. 막 부려먹고 여몽님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주군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파양에서 수적 비잔을 잡으려고 하고 있지 않았느냐. 배가 흔들 할때마다 비릿한 물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물새들은 가끔 끼룩끼룩 소리를 친다. 물 위에서 잔 물결만 이는 호수위니까 병사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서 꼭 등뒤가 찌르는 것 같다. 나는 머리가 지끈하고 몸살(과로에 기인한 것이겠지만)이 나려구 그러는지 온 뼈마디가 욱씬욱씬하고 이랬다.
"소금 생산이 지난 분기보다 3할 2푼 줄었으니……"
이렇게 셈을 하며 정무를 보면 여느때 같으면 붓이 척척 나간다. 웬일인지 셈을 반도 하지 않아서 자릿수가 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있지도 않은 쥐소리가 난양 발만 구르며……
"쥐새끼! 쥐새끼! 이 망할 자식의 쥐새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쥐 때문이 아니라 지원을 하러 온 여몽님의 손에 들린 석달열흘전과 같은 책편을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여몽님은 뭐 주유님처럼 미美자를 붙일 미인은 못된다. 그렇다구 또 자유공처럼 말상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반려가 돼야 할 만치 그저 아방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사년이 위니까 올해 서른다섯인데 표정은 다섯살에서 나이를 안 먹었다. 남은 나이가 들면 얼굴에 세상 때가 끼건만 이건 맑은 날 호숫물같이 말갛기만 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강아지 같다. 얼굴 중에서는 강아지 얼굴이 제일 맑고 귀여우니까 말이다. 커다란 눈은 반짝반짝하니 곱고 곤란하면 눈꼬리가 축 쳐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이쁘고 입은 꼭 다물어도 웃어도 홀릴 듯이 좋다. 아따, 보기만 해도 좋다 하면 금슬은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과가 있다면 가끔가다 성질이(주군이 이걸 이성이 없이 홱 돈다고 하지만)너무 화륵 폭발한다. 그래서 어린 날에 사람도 죽이고 다 커서도 감녕 죽인다고 병사를 끌고나갔다가 어머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그 성질 나무라면 무안할까봐서 이걸 보고 앉았노라면 지끈지끈 두통이 나고 싸움을 하는 겐지 애를 보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발그레한 얼굴루 뱃머리에 곱게 내려 이편으로 왔다. 그리고 또 공부를 해야하니까 선실 내 옆에 서안을 벌리고 이쪽으로 눈을 향하고 바투 앉아서 내가 보아주기를 기다린다.
내가 하던 셈을 다 하고 고개를 들었을때, 여몽님이 붓을 휘둘러 글을 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먹물을 볼에다 묻히고 쓴 글을 들고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하고 더듬지도 않고 큰 소리로 읽는다. 매양 어느만치 공부했느냐 물어보면 딴 소리만 하다가 이게 무슨 조환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깨우침이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그 그린듯한 글자를 보면서,
"풀이해 보시겠습니까?" 하니까, "자장이 어디 가서든지 통할 수 있는 행의 도리를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 충직하고 신실하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서라도 행세할 수 있고 말이 충직하고 신실하지않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지 않으면 비록 자기의 사는 고장에서라도 행세할 수 있겠느냐?'" 하고 또랑또랑 말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눈으로 그저 웃어보인다.
나는 잠시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웃는 얼굴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곰도 궁하면 재주를 넘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근래에 부쩍 (속으로) 주군의 충직하고 신실하지 않은 말을 탓한 듯싶은 여몽님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공부가 모자라다구 하니까…….
우리가 유비를 찾아갔을떄 그는 공안성 내실 앞에 있는 시녀들에게 그 병장기 좀 치우라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조조한테 붙어 허도엘 갔다가 황숙이라 칭호를 받았다구 길다란 팔(얼른 보면 나무 위에 앉은 원숭이 팔 같다)로 수염을 애헴,하고 늘 쓰담는 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바라보다 손부인이 나와 눈짓을 하자 알아챘는지, "왜 대업을 두고 예까지 오셨나?"하더니 팔을 올려서 그 애헴을 한번 후딱 했다. "유황숙! 우리 주군과 계약하기를……" 유황숙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남의 땅 날로 먹으면서도 인덕과 신의를 내세우는 유황숙이니 이런 계약위반을 넘어갈수는 없을 게다.
길게 늘어진 귓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럼 처남! 얼른 성례를 시켜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말에 주군이 삿대질로 파란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아몽이 미처 공부를 마쳐야 할 게 아니오?" 하고, 곁에서 손부인은 칼을 들었다 놓았다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십일년 동안에도 공부 다 못 했다니 그 공부는 언제 끝납니까. 다 그만두고 녹봉 주십시오." "글쎄, 이자식아! 내가 공부 하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합비서 주군이 장료한테 발리지만 않았어도 그 시간에 여몽님이 공부를 했을거 아닙니까? (사실 이때 장료는 고작 보병 오백만 거느리고 왔었다)"
주군은 이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술잔을 드는 척 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도 촛불을 옮기는 척하고 팔을 휘둘러 그 촛농을 확 뿌렸다. 주군은 손등이 화끈해 술잔을 제 앞섶에 엎더니 털어내고는 눈총을 몹시 쏘았다. 성질대로 상을 엎곤 싶으나 유비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참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동오로 건너와서 일을 보았다. 왜냐면 주군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유황숙이 날 불러다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우번님의 말은 유황숙이 주군에게 형주를 빌려 살고 있는데다 손부인의 기세가 무서우니까 그래 깨갱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백언 말도 하기야 옳으네. 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공무가 한층 다망한 때 일을 안한다든가 다른 이에게로 달아 난다든가 하면 지조가 없다는 죄루 그것두 반려될 이에게 누가 되거든! (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이각곽사를 섬겼다가 장수한테 갔다가 다시 조조한테 갔다구 가후를 욕하는 거 못 들었나. 주군이 망해서 주군을 바꾸는데도 욕을 먹는 이땐데 멀쩡한 주군을 버리고 가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또 혼인두 그렇지. 한쪽이 기울면 결국엔 어그러지게 되어있는데 짝이 어느만치 맞아야지 비로소 혼인을 할 수가 있는걸게. 자넨 물론 여몽의 공부가 더디다 염려하지만 여몽의 입장에서 보면 군무로 바쁜 중에 이만치 하는 것도 장한게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처남의 말이 올해 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니 좀 고마울겐가. 빨리 가서 호구정리 하든거나 마저 하게, 예다 불지르지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주군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주군으로 말하면 요즈막 백성들에게 신망을 좀 얻고 싶다고 해서, "가짜 한실에 속지 말고 인덕에 낚이지 말자!" 하고 민생을 돌보고 국정을 새로이 정비한다 붉은 수염이 나풀거리지 않을 때가 없는 판이다. 이마당에 괜히 호족을 들쑤시다 모처럼 닦아놓았던 기업을 망친다든가 할 소인배는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여몽님께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우중상네 집에 들렀던 것이 썩 나빴다. 유황숙 앞에서 주군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합니까?" "임마, 그 네모진 턱을 바닥에다 거꾸로 박아놓지 뭘 어떡해?"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박아놓고 그 다음에 댁처럼 귀양가란 말입니까 우리 여몽님은 독수공방시키고요-난 어이가 없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자경은 전 재산 갖다 바치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데 넌 앞으로 나올 재산까지 갖다바쳐야 해?" "아몽이 세번째 도독감인줄이나 아니? 요절할 도독자리."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육백원아, 장강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동작대에나 가버리라고까지 하고, 적벽 전에 왔던 제갈자유의 아우가 울고 갈 만치 사람 속을 후벼팠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주군 도독감이 셋이 있는데, 첫번째 도독 주유님은 몇 해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정말은 병이 아니라 과로를 해가지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 하셨다. 그런데 주유님이 주군의 형 토역장군과 단수斷袖아닌 단금斷金지교를 맺으셨다 토역장군이 비명에 가신 이래 꼭 십년동안에 주유님을 혹사시키기를, 천하에는 수성의 명군이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사람 하나 닳아 없어지는 것을 모를만치 부리고 그예 서촉까지 가져오라 한 것은 너무 심하다. 주군이 솔직히 정치는 해도 전쟁은 못하는 고로 군재있는 도독을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당신이 배우면 좋지만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도 있으니까. 주유님 유언대로 노숙님으로 두번째 도독을 들였다. 또 한편 이분도 안팎으로 형주 두고 밀고 당기고 주군이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그만 몸이 상해서 시름시름 하기도 한다는 말이 났다. 일테면 여몽님은 세번째 도독감인 셈이다. 노숙님이 영영 못 일어나시면 여몽님이 도독자리에 앉을 것을 주군이 단단히 다짐해두고 있다. 여몽님 다음으로 그 앉기만 하면 10년안에 죽을 도독 자리 누가 앉을지 모르니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혼약만 있고 덜렁 님 먼저 보내기 전에 여몽님을 그만 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은 예, 예,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우번님은 주군께 노염을 사서 벼슬이 떨어진 뒤로는 주군만 보면 공연히 못 갈궈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주군이 잔을 건넬 적에 거짓으로 자는 척(이왕 척을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발딱 일어나다 바로 들키는 어설픈 그 척)을 하지 않았더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우번이란 사람의 말을 전수히 곧이 듣지 않았다. 꼭 곧이 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주군 침소에 불을 질렀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여몽님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주군이 혼자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