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여러분은 명심해야 합니다. 매사는 보이는 것과 같지 않으며 역사는 살아가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게 말한 것은 사학과 학부 3학년 2학기 2학점짜리 "네트 실습 기초"를 가르친 교수였다. 이것이 과연 인문학부의 수업이 맞느냐고 씹어먹기에도 두꺼운 영어 원서에 머리를 박고 울게 만들었던 네트시간물리학이니 네트동력원자학이니 하는 수업에 비하면야 그야말로 공식은커녕 숫자도 얼마 등장하지 않는 얌전한 수업이었다. 그러나 참하디 참한 얼굴의 교수는 네트에서 '사라진' 수많은 역사연구가의 사례를 생생하다 못해 소름끼치게 들려주었으므로 이건 네트 실습을 준비하게 하려는 수업이 아니라 포기하게 하려는 수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말이야 바른 것이 네트 한번 돌릴 때 돌아가는 돈이 어디 한두 푼인가 말이지. 국회 과학기술상임위 국정감사에서 모 당의 모 의원이 '그래 고구려 때 아무개네 식탁에 올라온 반찬이 개구리반찬인지 여우반찬인지 알아보려고 세금을 시공간에 뿌리고 다니냐'고 성토했던 일도 있었고. (물론 그 의원이 상정하려던 네트 지원 예산 축소 법안은 '공교롭게도' 그 의원의 몇 대조인가가 1920년대 행한 모종의 일이 역사연구가에 의해 '우연히' 목격되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지만. 시공간이 네트를 아직 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연구가가 아니라.)
그 모 당의 모 의원이 생색을 내기는 했지만 실상 세금에서 지원된 예산으로는 네트 연구를 지속하기보다는 항공권이라도 대량 구입해 이웃나라 네트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수준이다. 그런 관계로 역사연구가는 의뢰를 받아 스케치를 해오거나 필사를 해오는 일이 오히려 본업이 될 지경으로 정식 시간 학예관 신분으로 각 시대에 파견되어 고정급을 받고 그 시대를 담당하는 자리를 얻기 전에는 무슨 의뢰든 마다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20세기 후반에 쓰이던 '잔디 깔아주고 입학했다'는 관용구가 현대에 와서는 '네트 충전시켜주고 입학했다'는 말로 바뀌어 쓰일 정도니까. 거기에 더해 의뢰마다 다 네트가 열리는 것이 아니고 시간편차란 것이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의뢰를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맡아서 열렸으면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조선 정조 연간을 전공으로 하는 내가, 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 이유다.
이곳은 퀴퀴한 냄새와 축축한 공기로 가득 차고 회색 몸뚱이에 달린 긴 꼬리를 살랑거리는 생물이 돌아다니는 그런 감옥은 아니다. 어두침침하기는 하지만 감옥은 아니고 그저 낡은 가구나 쓰지 않는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작은 골방이다.
여튼 네트 실습 기초 강의 교과서 서장에 굵디굵은 고딕체로 강조 되어 있던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감금 등을 당할 경우 절대로 사실을 말하지 말라-그럴 경우 시공간은 오류를 수정하지 못해 우주는 붕괴하고 운운운. 교수는 재주껏 풀려날 거짓말을 준비해 두거나 아니면 사라지거나-라고 상큼하게 웃었다. 말은 쉽지, 쳇.
"나와라."
툴툴거리고 있자니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집안일을 총괄하는 노인이 불러냈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돌아온 모양이다. 아직 해가 안 떨어졌는데 퇴근, 아니 퇴청이라니 평소에 비하면 일러도 너무 이르다. 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듣고 일찍 온것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비관적인걸.
변호사 없이는 말하지 않겠소, 내 변호사를 불러줘요, 영장 있소-등등 20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그 숱한 고전 명작선에서 늘상 나오는 대사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절실한지. 어네스토 미란다가 수정헌법상에 명시된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무죄선고를 받으려면 아직도 1740년이 있어야 하고 근대적 의미의 3심제도가 확립된 것은 그보다는 상당히 앞서였지만 이 나라에서의 사법제도는, 아니, 지금 사법제도와 인권의 역사를 되새길 때가 아니라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는 거였지.
그냥 이대로 도망쳐 네트로 뛰어들 수는 없을까 뒤뜰 으슥한 곳을 곁눈으로 보았지만 빛은 가루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앞에는 집사가 뒤에는 또 다른 시종이 뒤따르고 있으니 이들이 모두 이 시대에 '스며든' 역사연구가가 아닌 다음에 열릴 리가 없다.
"들어가라."
어디 뒷마당에 묶여 매라도 맞나했으나 노인이 이끈 곳은 서재였다. 이곳이라면 잘 알고 있다. 이 방의 주인이 출근, 아니 그러니까 등청하고 난 뒤 내가 맡은 소임 두 가지, 3세기의 일인 서재 청소와 23세기의 일인 필사를 하다가 집사노인에게 딱 걸린 곳이다. 여전히 묶인 채로 문을 지나 들어서자 방의 주인이자 이 집의 주인이며 이 집이 딸린 한 부府의 주인이 앉아있다가 눈을 들었다.
"풀어주어라"
시종이 누르는 대로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 의뢰를 위해 따로 고대 중국어를 배웠으므로 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고 말하는데도 마찬가지였으나 나의 말투는 이 지방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편이다. (마침 고대 중국어 서촉 방언 잠재학습기가 모두 대여 중이었던 탓이다. 반납은 제때제때 좀 합시다들?) 그리고 눈앞의 사람, 내 의뢰의 대상인 동시에 이 시대에 있어 나의 고용주인 사람 역시 이 지방 출신이 아니므로 말투가 어딘지 다른 데가 있다.
"이름이 기箕라 했더냐."
사실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일단 '예'라고 답하려는데 사정없이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골방 안은 오슬오슬 추웠고 거기다 더해 세월 탓인 먼지가 잔뜩, 높게 달린 창으로 빛은 새어 들어왔으나 환기가 잘되지 않았으므로 알레르기성 비염을 갖고 있는 내게는 괴로운 환경이었다. 역시나 재채기의 결과로 주룩 비강에서 흐르는 맑은 액체의 촉감에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떠올랐다. 보드랍고 가볍고 무엇보다도 비싸지도 않은 것, 휴지, 티슈, 화장지.
화장지가 발명된 것이 언제였더라. 이 나라를 기준으로 보자면 종이가 만들어진 지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일상에서의 필기 수단은 아직 죽간이나 목간이 대세인 이런 곳에 손에 가볍게 안겨와 보들보들하게 코끝을 스치면서 뛰어난 흡습성으로 이 곤란하고 민망한 액체를 훔쳐가 줄 그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소매 속을 더듬어 꼬기꼬기 접힌 천조각을 꺼내 들어 코를 문질렀다.
"어허, 썩 답을 올리지 않고서!"
집사가 카랑하는 소리로 다그쳤다. 피의자나 고용인의 인권이 인정되던 시기가 화장지의 발명보다 앞이던가 후던가. 이건 20세기 배경의 그 숱한 드라마처럼 가혹행위로 소송을 걸 수 있는 사례다. 피의자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할 최소한의 제공을 저버린 의무든가 등등. 흐름은 멎었으나 그 흔적을 닦아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천조각은 역시 흡습성도 별로다. 다음에 네트로 돌아가면 킴벌 리 클라크의 사랑스러운 발명품 셀루코튼으로 손수건이라도 만들어서 가지고 와야지. 인중이 화끈화끈 거리면서 따끔거린다.
"물러가 있게."
조용한 그 목소리에 가승과 시종은 물러가 주었으나 단둘이 남자 겁이 덜컥 났다. 그러니까 눈앞의 이 사람은 적어도 십수세기 동안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고 귀신마저 부린다' 믿어졌던 그 사람이 아닌가.
"이름은 기. 성은 모르고. 남쪽에서 왔다고 하였지. 맞느냐." "....예."
뭐, 일단 이곳에서는 그렇습니다만. 이 시대에도 위증죄가 있었던가.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우주를 붕괴의 위험에서 구하기 위한 숭고한 거짓말이다.
"글을 아느냐."
그래도 명색이 박사 밟는 중인걸요. 게다가 한문학 관련 과목이라면 A를 놓친 적이 없고 말입니다...만 글을 줄줄 아는 노비란 거 역시 수상하겠지.
"....조금 압니다." "누구에게 배웠느냐.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었다 들었는데."
어이쿠 기억력도 좋으셔라. 바쁘신 분이 그런 것도 기억을 하시고.
"전에 모시던 주인어른께 배웠습니다." "전에 모시던 주인이라."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나 역시 무섭다. 침착하자 침착침착.
"중원에서 난을 피해 교주로 오신 분으로 본디 경서를 많이 공부하시는 분이고 어려서부터 소인을 거두어주셨는데 주인어른께 자식이 없으셨으므로 절 귀여워해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정도에 넘어가 주지는 않겠....지?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들은 뭐라고 하더라. 먼저 제 의뢰인과 상의할 시간을 주십시오-라든가, 협상을 합시다-3년 전에 실종된 소녀의 시체가 묻힌 곳을 알려줄테니 사형은 면하게-아니아니, 장르가 틀려!
"글을 잘 쓰는구나."
가만히,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라보던 사람은 시선을 돌려 종이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집사에게 걸려 압수당한 바로 그 물건이다. 서둘러 적었으므로 원본의 그 흔들어도 비스듬해지지 않을 듯 단정한 글씨에 비하면야 지렁이 춤을 춘다 해야겠지만 뭐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글씨다. 한문교육협회공인 서예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갖다 바친 돈이 얼마던가. 그 덕에 이번 의뢰를 따는 데도 상대적으로 유리했지만. 가만, 새옹지마가 이 시대에 있던 말이던가, 아닌가. 전한前漢시대에 나온 책에 있으니 지금 시대에도 쓰이는 말이 맞겠지.
"그래서 이 글을 누구에게 보이려 했느냐."
동아시아삼국지연구재단문헌복원사업본부제갈량집담당자에게요.
-라고 답하면 인과모순으로 우주가 붕괴되겠지, 그전에 믿지도 않겠지만.
"누구에게 보이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게 진수가 제갈량집을 다 쓰게 되는 274년으로 가자고 했건만. 그때라면 책 한 권 베끼는 걸로 해결 나고 인과모순이 일어나 우주가 붕괴할 염려도 없고 무엇보다도 본인에게 추궁을 당하는 일은 절대 없고 말이지. 그 시대에 쓰인 그 분의 생생한 필치 운운하며 하악대던 관계자들이 여기 와서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가난한 역사연구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보이려 한 것은 아니다?"
위나라에 가 있을 동기가 부럽다. 조식의 글을 백번 옮긴들 의심을 받을 리는 없을텐데. 더욱이 아우를 삶아대던 형이 유명을 달리했으니 자칫 같은 패로 몰려 어찌어찌 될 위험도 이제는 없고. 사다리타기로 운명이 결정되다니 너무하잖아. 죽어도 승상 만세라며 밥 살 테니 바꿔달라고 울며 매달려도 이쪽이 보수가 더 좋아서 안 바꿔줬는데.
"예." "........"
아까 골방에서 본 깃털 세 개 빠진 부채를 걸고 맹세한다. 이번에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기까이 녀석과 바꿔주리라 덤으로 식권 3장도 얹어서 양식 A코스로.
"누구에게 보일 것도 아닌데 왜 옮겨적었느냐."
그야 스캐너로 긁을 수도 없고 카메라로 찍을 수도 없고 원본을 집어갈 수도 없으니까요.
"답하지 않겠느냐."
종이를 서안에 내려놓고 묻는다. 묵비권은 언제부터 인정되기 시작했지. 미란다가 침묵할 권리도 주장했던가. 어쨌거나 최소한 금세기에는 인정되지 않는 거 맞겠지.
"승상을 사모해서입니다."
고려조 때 유명한 시인인 누군가는 결재서류를 올리면서 그만 숫자 단위를 하나 틀렸다고 한다. 천을 만이라 했다든가 백을 천이라 했다든가. 그 죄로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죄값을 치러야했다고. 그때 귀양 길에서 남긴 시로 미뤄봐서는 인생 케세라세라인 사람 같지만 어쨌거나 인생 허무하지 않은가. 숫자 한 단위에 끝나고 단어 하나에 끝장나고. 그러니까 승상이 아니라 승상'의 글'을 사모한다구요.
화자인 기는 남자; 시점은 226년. 첨이 생기는(...)해입니다;
요즘 잡고 있는 글들이 다들 어두컴컴해서 감기가 떨어져 주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옛날에 써봤던 해피(?)한 글을 꺼내봤습니다. 실제로 네트가 발명된다면 사학과의 인기가 엄청나게 치솟지 않을까요. 당장 저만 해도 이런 분이나 저런 분을 만날 수 있다면-최소한 그 시대라도 살아볼 수 있다면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올인할거에요. 3D업종이라도 잠시라도 가만 놔두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의뢰인들의 압제에 고통 받아도 정말 가볼 수 있다면 그런 것쯤, 감수할 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
이런 허술한 글과는 상관없이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격하게 추천합니다. SF를 좋아하는 분도, 시간여행이라면 좋다는 분도, 발랄(?)하고 정신 없는 코미디를 원하는 분도, 빅토리아 시대를 좋아하는 분도, 집사라면 일단 좋아-라는 분도 좋아하실 거에요. 이렇게 간단히 소개하기에는 너무 즐거운 소설입니다. 읽은 분도 많으시겠지만요^^;
주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OTL 쉬자고 했으니까 잘 쉬기는 했는데 돌아보니 토치우드 보고요. (토치우드는 *님이 푹 빠지신듯 해서 봤는데-아우-생각보다 엄청 무거워서 감당이...(덜덜) 캡틴 잭은 참 잘생기셨지만 짊어진 짐이 너무 어마어마한것 같아서 10편까지 보고 다운되어버려서 다음을 차마 못 보겠어요;) 그리고 스타트렉 영화 반 편 보고, 자고, 밥 먹고, 별로 놀지도 못했는데...-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