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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Carlo

Restate와 Restez

neige 2016. 1. 8. 21:57

13잘츠 감상쓰면서 신나게 펠리페-로드리고 독대 장면이 2막의 꽃임을 이야기했는데 새삼 더 얘기하고 싶은 건 프랑스어 버전과 이탈리아어 버전의 차이가 상당히 커서 96 샤틀레 돈 카를로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하게 풀어놓고 나중에 내가 보려고.


마클때 햄슨이 베르디는 프랑스어 버전을 이탈리아어 버전으로 고치면서 포사의 마지막 아리아는 하나도 바꾸지 않았죠 했는데, 음표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는 로드리고의 아리아와는 달리 펠리페와 로드리고의 독대는 프랑스어 버전과 이탈리아어 버전이 꽤 다르다. 






우선 이탈리아어 버전의 펠리페-로드리고 Restate

연출도 의상도 노래도 전통적인 해석인 걸로 영자막이 딸려있어서 골랐음. 여기 펠리페가 잘츠 돈 카를로의 수도승, 마지막에 카를로를 무덤으로 데려가는 카를 5세 되시겠다. 아무래도 13잘츠랑 96샤틀레를 주로 보니까 전통적인 연출은 잘 안 보게 되는데 오랜만에 보니 이게 오페라다-하는 느낌이 팍팍 나면서 재미있음. 거기다 아 맞다 바리톤 소리가 원래 저랬지 까먹을뻔 했던 것도 다시 생각나고.ㅋ  









5막 프랑스어 버전의 펠리페-로드리고 Restez

자막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만...ㅠ 프랑스어 버전도 또 이런저런 변형이 있는데 이건 초연 당시를 그대로 따른 곡으로 Samuel Ramey와 햄슨이 낸 NTA 에 실린 것. NTA 뭔가 국립단체 명칭 같지만 No Tenor Allowed의 약자로 남성 성악부의 꽃인 테너 따돌리고 바리톤과 베이스 둘만의 듀엣을 모은 앨범. 1999년에 나왔으니 햄슨 아직 어릴 때. 


96샤틀레 이후인데 이때쯤 한창 프랑스어 버전 돈카를로 열심히 파서 본인이 포사 캐릭에 대해서 에세이도 쓰시고 일본 공연에서도 프랑스어판 우정의 이중창 부르시고 그 무렵이었음. 돈카를로 프랑스어 버전과 이탈리아어 버전을 두고 나처럼 둘 다 좋은데요ㅎㅎㅎ 햄슨이 로드리고냐 아니냐가 더 중요합니다만ㅋ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탈리아어 버전이 역시 최고시다, 아니다 프랑스어 버전은 별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시다 이러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동안 햄슨이, 프랑스어 버전 진짜 좋거든? 그냥 이탈리아어 번역하면 되는 거 아니거든? 약 팔고 다니실 때 그때쯤인 듯. 지금도 이런 의견이신지는 잘 모르겠다. 이분은 언제나 본인의 현재에 충실하셔서. 지금 물어보면 아마... 아 둘다 좋고요, 근데 남극 탐험에 관심 있어요? 하실 듯ㅋ  


플랑드르 참상을 고발하는 로드리고와 펠리페의 자기방어까지는 거의 동일하지만 이탈리아 쪽이 좀더 밀당을 아는 로드리고. 프랑스 쪽은 일단 왕의 심기를 확 거슬러 놓고 자기 말 들어보라고 밀고 들어가는 쪽이라 이쪽이 더 어리고 성급한 느낌. 원작의 로드리고는 프랑스어버전에 가깝다. 전혀 생각지 않은 기회를 잡았으니 목숨 걸고 플랑드르 이야기하고 자유 달라고 질렀던 거라서. 그리고 나는 상대적으로 젊던 시기의 햄슨의 프랑스어 버전이 먼저 나오고 이탈리아어 버전은 이렇게 나중에 나오게 되어서 두 로드리고의 특성이 햄슨의 물리적 나이와 어울려서 좋지 않으냐 양손에 들고 흐뭇해 하고 있다.


펠리페에 대한 로드리고의 공격도 다르다.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네로 얘기 안 꺼내고 바로 유럽을 흔들 새로운 흐름이 안 보이느냐고 자유 달라고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이 부분 좋아한다. 96샤틀레에서 내내 아 가발 왜저래ㄷㄷㄷ하다가 그 어린햄슨로드리고가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던 부분이 여기일 정도로. 이탈리아어 버전에서 네로 되고 싶으냐는 말에 충격받았던 펠리페는 자유를 달라는 로드리고의 말에 아하 이런 몽상가-하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나한테 이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두근두근 하는 게 강조되는 것도 다르다. 


이후로도 마음을 열겠다면서 이탈리아어 버전은 본격적인 집안 걱정을 털어놓는데 비해 프랑스어 버전은 펠리페가 용건은 안 꺼내고 로드리고 만난 기쁨에 더 감격스러워하는 거로 보여서 원작 안 읽은 사람들은 아니 그래서 펠리페가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건가 의심...할 리는 없었겠지만, 따지면 새로운 사랑이 맞긴 맞음, 진리와 자유와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담한 영혼에 대한 사랑. 그래도 구체적으로 뭘 믿고 뭘 털어놓은 건지 명확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싶다. 결국, 이 부분도 원작에서 어느 부분을 가져왔느냐에 따라 달라진 거지 둘 다 원작 기반. 난 펠리페가 레르마 불러다가 이 사람은 앞으로 자유롭게 나 만나게 하라고 명령하는 부분 좋아해서 프랑스어 버전 좋음. 원작에서 레르마가 이 파격적인 명령에 놀라서 카를로에게 경고하고 그래서 카를로가 로드리고 의심하고 전부 다 와장창되는 빌미가 되는데 오페라에서는 에볼리가 경고하는 걸로 변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프랑스어 버전과 이탈리아 버전과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엔딩. 

펠리페는 자신의 의심을 해결해주고 평안을 가져다줄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에, 로드리고는 뜻하지 않게 왕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는 기쁨에 노래하다가 마지막 대심문관을 조심하라는 펠리페의 경고가 되풀이되면서 대심문관의 테마인 무거운 선율이 그 기쁨을 짓누르고 분위기를 가라앉히면서 앞날을 짐작하게 하는 이탈리아어 버전.


그에 비해 원래의 프랑스어 버전은 마찬가지로 펠리페는 드디어 단 한 사람 내가 찾던 사람을 만났다고 기뻐하고 로드리고는 이걸로 카를로를 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들뜨는 데 동상이몽일망정 두 사람의 기쁨은 끝까지 이어진다. 그 와중에 카를로스-라는 발음이 안으로 들어오는 발음이다 보니까 로드리고가 속삭이는 느낌도 나서 펠리페에게 들키면 안 될 내면이 보이는 느낌이라 좋고ㅋ 이탈리아어 버전이 돌림노래처럼 두사람의 소리가 서로 비껴나는 느낌이라 이게 펠리페의 소망과는 달리 좋게 끝날 수 없는 만남인게 슬쩍 드러나는데 프랑스어 버전은 그에 비하면 서로 가깝고, 거기에 어둡고 숨막히게 되풀이되는 조심하라-는 경고가 없다 보니 이탈리아어 버전에 비한다면 샤랄라 밝은 배경에 꽃이라도 좀 날리고 펠리페랑 로드리고랑 손 마주잡고 빙글빙글 돌아도 괜찮을 정도로 희망차다. 분위기의 일관성이나 결말을 위한 복선을 고려한다면 이탈리아어 버전 쪽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프랑스어 버전이 실러의 원작에 더 가깝다. 


그밖에 사소하게는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줄곧 그대vous라고 후작을 대하는 왕으로서 말하다가 마음을 털어놓는 순간부터 너tu라고 하는 차이가 드러나는 것도 몹시몹시 좋다. 그리고 펠리페가 로드리고를 앙팡이라고 부른다는 것. 노년에 들어선 펠리페가 보기에 로드리고같이 열정적인 이상주의자가 얼마나 애틋하고 예쁘고 그러면서도 걱정이 될까를 생각하면 앙팡이라는 호칭이 참 좋지 뭔가. 물론 대부분의 경우 로드리고할 무렵의 바리톤들이 이미 앙팡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성숙하신 분들이라 빠지는 게 현실적으로 어울리긴 하겠지. 하지만 환갑 앞둔 레전설 카푸칠리옹을 향해 얘야-부르는 아직 마흔도 먼 어린 신예 푸를라네토 생각하면 난 좀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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