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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3막 2장 본문

Don Carlo

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3막 2장

neige 2014. 9. 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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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3막 1장





3막 2장 화형식은 오페라에서 음악적, 시각적으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대목. 

스토리상으로도 수습불가능한 대형사고가 터진다.


원래 실러의 희곡에는 없는 이야기인데 오페라 제작과정에서 펠리페 2세를 다룬 다른 희곡에서 따와서 덧붙였다고. 아마도 오페라니까 좀 더 볼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스페인이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희곡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나 상황이 스펙타클하지는 않으니까. 희곡에서는 로드리고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전해지던 종교재판과 화형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니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서 펠리페의 종교관과 통치관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바로 전해지니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더해서 연출마다 다른 맛이 있어서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고. 


13잘츠의 무대미술에는 돈을 덜 들이고 의상에 돈을 더 많이 들인 것 같은 경향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무대 한쪽의 관람석은 나무 소재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내추럴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각목으로 지은 가건물의 느낌; 미안 내가 13잘츠 무대에 대체로 호의적인데 여기 무대는 별로라서. 그래도 오페라계에서는 몸값 비싼 분들이 앉을 자린데 안전하기는 하겠지...?싶은 일말의 불안감을 주고 있는데 당연히 리허설 전에 몸값 현저히 덜 비싼 스탭들이 앉아보고 점검했겠지. 이쪽도 공연 전에 부상이나 그런 부분에 대한 계약서 쓰고 보험 들고 그럴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메인이라고 할 화형대는 무대 뒤 가운데에 자리잡았는데 2막 2장의 왕비의 정원에 쓰였던 회색의 탁한 배경 가운데 이쪽에만 스크린을 띄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야외풍경처럼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도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음.






반면에 의상 쪽은 공을 많이 들였는데 군중과 대공과 귀족여인들은 모두 검정색 의상으로 통일시켰다. 수도사들은 흰색과 검정의 의상, 꼼꼼하게 사형집행인의 의상까지 재현해줬더라. 여기에 화려한 의상의 악대가 등장하고 당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을 상징하는 이국적인 행렬이 등장하면서 눈길을 끈다. 여기서 스페인의 식민통치 역사를 생각하면 저게 화려한 역사로 구경거리로 데리고 나올 일인가 한 번 더 비딱하게 보게 되고 거기에다가 과연 저 의상을 입은 사람들 중에 몇명이나 실제 출신지와 의상이 일치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좀 편하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데, 뭐 어차피 스페인 얘긴데 원작은 독일 사람이 썼고 오페라로 만든 건 이탈리아 사람이랑 프랑스 사람이고 주연들은 독일, 핀란드, 미국인에 지휘자는 영국인 여기에 오케스트라까지 따지면...ㅋ 거기다가 스페인의 그 잘 나가던 시기는 펠리페 생전에 끝났으니 넘어가자. 






왕비와 왕비의 시종 테발도는 크림색과 금색이 주를 이룬 의상을 입혀서 군중과 확실하게 대조가 된다. 왕의 의상도 왕비와 마찬가지로 흰색과 금색인데 망토에 합스부르크의 독수리부터 통치지역과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들이 들어가 있어서 화려하다. 앞에서는 간소화된 버전으로 착용하고 있던 황금양털기사단의 목걸이도 여기서는 풀버전으로 장착하고 있음. 








로드리고도 주인공답게 의상에 신경을 써줬다. 카를로는 3막 1장에서 입던 그 옷 그냥 입고 나왔는데 로드리고는 2막 2장에서 입었던 긴 코트말고 따로 짧은 망토를 입혔는데 이거 디테일이 은근 예쁨. 모자는 벗었으면 좋겠지만 공식 의전이니까=_= 목에 따로 십자가도 걸었는데 말타 기사단 십자가인지 아닌지 생긴게 다른 것 같아서 확신은 못하겠음. 의상 얘기 나온 김에 로드리고가 진주인공 맞는게 이어 나오는 4막 1장에서 의상이 한 번 더 바뀐다. 상의랑 벨트가 검정색으로 바뀌는데 어차피 4막 2장에서 죽을 때 셔츠차림이라서 굳이 여기서 상의를 바꿀 필요가 있었나? 로드리고가 밤에도 왕의 집무실 바로 옆에서, 부르면 비서인 레르마 백작보다 더 빨리 달려올 수 있는 지척에서 대기타고 있다는 암시인가? 싶기는 한데 아무튼 역시 이런 걸 봐도 주인공은 로드리고라는 거ㅋ  


기쁨의 날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군중의 합창은 대장간의 합창이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만큼은 아니지만 때때로 따로 연주되기도 하는데 가사를 보면 평화롭고 번성한 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훌륭한 왕의 장수와 번영을 비는 좋은 노래다. 2막 2장에서 로드리고에게 스페인을 보라, 도시의 상인도 들의 농부도 모두 신과 왕에게 충성스럽고 불만이 없다-고 자신하던 펠리페로서는 흡족할 노래. 여기에 무겁고 음산한 이단 심판관들의 노래가 더해지면서 돈 카를로의 색채가 나온다. 회개한다고 살려주지는 않겠지만 파문은 안 시켜줄게라는 자비로운 노래. 





구원을 가져다 줄 왕을 우리에게 주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펠리페가 외치는 맹세, 칼로써 이단을 다스리겠다 맹세는 실제 역사의 펠리페가 가졌던 입장 그대로다. 사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펠리페는 완고하게 군 걸까, 르네상스도 다 겪은 마당에 종교적 순수성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싶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종교개혁에 대한 반발이겠지만 왕이라는 자리는 종교조차도 수단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프랑스도 스페인 꺾으려고 이슬람과 손 잡았는데 펠리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실러는 펠리페가 평생을 그렇게 신앙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강경한 입장으로 일관했던 이유를 따로 들어 주고 있다. 오페라에서는 로드리고한테 낚였는데 희곡에서는 펠리페한테 낚인 게 그 이유때문이었는데 그건 좀 나중에.


아무튼 이렇게 화기애애하지는 않아도 식순에는 잘 맞아들어가던 화형식에 카를로가 난입한다. 혼자 온 건 아니고 플랑드르와 브라반트 사절들을 데리고 온 것. 대사에는 브라반트와 플랑드르 사절이지만 너무 길어서 그런지 보통 배역 이름 부를때 플랑드르 사절이라고 하니까 여기서도 그렇게 부르자. 아무튼 카를로가 데려온 플랑드르 사절들이 펠리페 앞에서 플랑드르의 참상을 전하면서 눈물로 호소를 하는데 이 대목에서 카를로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민감한 플랑드르 문제를 꺼냈다고, 그것도 무작정 사람들을 끌어다 놓고 빌게 했다고 카를로를 까는 게 아니다. 물론 시기와 방법이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시기에도 민심이라는 건 존재했고 아무튼 보는 눈이 많으면 왕도 함부로 물리치지는 못 할 거라는 계산을 했다치면 무리수라고는 할 수 있어도 내가 카를로를 까지 않는다. 어리니까, 순진한 왕자니까, 무모할 수 있음. 그럴 수도 있음. 


13잘츠에서 이 부분을 보다 보면 카를로놈의 태도가 여기서 묘하다고 느끼게 된다. 플랑드르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데 카를로놈 표정이 우쭐해서는 뭐라도 잘 한 것 같은 표정이다. 플랑드르를 구하는게 목적이라면 이 대목에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는 거 아닌가. 2막 2장에서 펠리페한테 플랑드르 참상을 전하던 로드리고가 잘 보여줬잖아? 그런데 카를로놈의 표정은 안 그렇다. 여기서 카를로놈아 왜 그랬니ㅠㅠㅠㅠㅠ 울게 되는 거다. 





표정관리를 못 해서 까는 게 아니고 카를로놈의 목적이 플랑드르 구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를로놈의 목적은 딱 하나 아버지를 꺾어 넘기는 거였다. 아니다. 이렇게 쓰면 뭐 어때 젊고 혁신을 꿈꾸는 왕자가 늙고 완고한 부왕에게 대들 수도 있지? 싶은 오해를 부르겠구나. 정확하게 쓰자. 엘리자베타 앞에서 아버지를 꺾어넘기고 남자답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였음. 


물론 모든 카를로가 그런 목적으로 플랑드르 사절들을 아버지 앞에 들이민 건 아니다. 가끔 보면 정말 플랑드르 구하고 싶은데 생각이 없어서 이딴 짓을 저지르는 카를로도 있다. 그 카를로는 안 까도 13잘츠 카를로는 깔 수 밖에 없는 게 카우프만도 인터뷰에서 카를로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지가 얼마나 남자다운지 인정받고 싶었던 거죠-라고 확인사살을 해줬다. 


이쯤에서 소설의 마리우스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말고 소설에서 마리우스는 혁명에 대한 의지나 신념 없이 바리케이드에 죽을 자리를 찾아서 갔다가 우연하게 바리케이드를 구했고 앙졸라스와 함께 바리케이드의 리더까지 됐다고 그동안 깠는데 사과함. 적어도 마리우스는 코제트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때 새 옷이나 챙겨 입고, 자기가 쓴 칼럼 자랑할 생각만 했지 코제트한테 잘 보이려고 바리케이드를 장렬하게 산화시킬 생각은 안 했잖아. 마리우스는 그래도 상식은 있는 인간이었음. 그동안 까서 미안했다. 진심으로 사과함. 물론 결혼한 다음에 발장 냉대한 건 앞으로도 두고두고 깔 거임. 의자 치워버린거 진짜 음습했음. 보쉬에한테는 한 번이라도 고마워 했냐. 물론 보쉬에는 착해서 그런 거 바라지도 않겠지만 내가 바란다고 내가ㅠㅠ 


카를로놈이 이딴 의도로 플랑드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들고 나온 거면 로드리고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인용했지만 로드리고는 카를로를 두고 잠깐이라도 펠리페에게 한 눈 팔았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카를로와 플랑드르의 구원을 소중하게 생각했단 말이야. 13잘츠에서는 특히나 펠리페한테 눈 돌리기는 했어요? 싶을 정도로 카를로만 예뻐했던 로드리고잖아. 그럼 지금 눈 앞에서 카를로놈이 하는 짓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지 않나. 근심스럽게 다가간 로드리고에게 카를로놈은 걱정 말라고 이러고 있다. 




뭘 잘했다고ㅋㅋㅋ 저 시점에서 로드리고는 카를로를 때려눕혀서라도 끌고 나갔어야했어ㅋㅋ 몇번씩 본 나야 캡쳐하려고 돌려보면서 누가 포사 후작님 혈압약 좀 챙겨드려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있지만 이쯤되면 저 위에서 자유의 여신이 로드리고에게 그 놈이랑 헤어져 헤어져 제발 헤어져 외치고 있을지도.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면 수단이라도 잘 쓰든가, 수단이 개판이면 의도라도 순수하든가. 이건 뭘로 봐도 실드를 쳐 줄 수가 없잖아. 로드리고 진짜 여기서 카를로 버렸어야했는데 그 놈이랑 헤어져 ( mm


로드리고 마음이 찢어지거나 말거나 펠리페는 또 여기서 흔들리면 펠리페가 아니라서 신에게도 왕에게도 불충한 플랑드르인들을 끌어내라고 한다. 카를로의 동기야 어쨌든 플랑드르 사절들의 진심이 통했는지 엘리자베타와 로드리고에 테발도와 백성들까지 한 목소리로 플랑드르에 자비를 달라고 간청하는데 아름다운 부분이지만 카를로놈 생각하면 또 울컥하는데 펠리페와 이단심문관들은 또 거기에 강경하게 맞서는 대형 컨프롱은 커다란 파도가 맞부딪치는 느낌이라서 음악적으로는 좋은 순간이다. 역시 난 떼창이 좋고, 그게 컨프롱이면 더 좋은 것 같음. 


결국 엘리자베타가 무릎까지 꿇고 간청을 하는데도 펠리페가 듣지 않는 걸 봤으면 수습에 들어가도 모자랄 판에  카를로놈은 정신을 못 차리고 말하기를. 아빠 죽으면 어차피 그 왕관 내꺼니까 미리 플랑드르랑 브라반트 나 줘요. 





플랑드르 구해달라고 왕비 따라 무릎꿇고 빌던 로드리고가 울것 같은 표정으로 도대체 왜 저럴까,내가 약을 잘 못 먹였나 카를로를 보는 건 마음이 아프면서도 많이 즐겁고ㅋ 펠리페는 아들의 요구에 이놈 봐라? 나한테 왕관 맡겨 놨어? 싶은 표정을 짓는데 그게 내 표정이었음ㅋㅋㅋㅋㅋ 카우프만은 인터뷰에서 카를로 입장에서 보자면 펠리페 2세가 가지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작위 중에서 그냥 작은 작위 좀 하나 달라고 한 거죠-라고 했지만 플랑드르는 스페인의 돈줄이었고 카를 5세의 뿌리가 있는 곳이니 그냥 작은 작위 하나가 아닌 게 문제. 


펠리페 자신도 아버지 카를 5세로부터 권력을 물려 받을 때 받은 게 플랑드르 지방이었으니 사실 플랑드르랑 브라반트 내놓으라는 건 날 정식 후계자로 인정하고 슬슬 물러나실 준비하라는 소리다. 이게 말이야 소야. 모름지기 세자라는 건 아버지가 왕위 물려준다고 해도 석고대죄하면서 아버님 아직 정정하십니다 전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 아버님이 오래오래 통치하세요 빌어야 하는 건데. 


희곡 기준으로 카를로는 스물세살이나 됐고 유일한 아들인데 아버지가 정식 후계자로 인정해주기는 커녕 젊은 새어머니를 얻은 상태라면 아버지의 궁에서 유령처럼 사는 건 질렸으니 나를 마땅히 다음 왕으로 살게 해달라고 항의하는 것도 아주 부당한 소리는 아니라고 실드를 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또 이걸 왕의 입장에서 보면 물려줄 사람이 딱 이 놈 이거 하난데 그 놈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 민주주의에서는 그래도 나 다음 자리 이어받을 놈에 대해서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있잖나, 물론 나 혼자만 고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세습왕정에서는 아무튼 자기가 낳은 아들이고 유일한 아들이면 밉든 곱든 걔한테 물려줄 수 밖에 없다는 함정이 있는 거지. 


이 짜증나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크루세이더 킹즈2를 추천한다. 후계자가 나 죽기 못 기다리고 작위 내놓으라고 독립하겠다고 하면 이게 게임인데도 상당히 짜증이 나더라고. 좀 기다려봐 어차피 나 죽으면 니꺼 될 건데 그걸 못 기다리니. 가끔 못 기다리고 아버지 암살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 거기에다 카를로처럼 별 다른 재주도 기특한 면도 없고 안 좋은 특성만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쓸데없이 나한테 마이너스 감정이 깊은 후계자라면 작위 내놓으라는 말에 더더욱 짜증이 나면서 둘째가 아무리 봐도 특성이 더 좋은데...하고 괜히 아들 암살 성공확률을 확인해보게 되는 거. 난 그래도 자비로우니까 자질 안 되는 애들은 죽이지는 않고 주교로 만들어서 상속순위에서 배제시켜버렸지만 불행히도 펠리페는 이 시점에서 카를로가 유일한 아들이었다. 고르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음.


일반적인 왕들의 이런 고충에다가 펠리페는 희곡의 후반부에서 레르마가 살짝 암시하듯이 아버지 카를 5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앉은 불안감을 항상 지니고 있는 걸로 그려진다. 오페라에도 나오는 대심문관의 말-어째서 사무엘의 유령을 불러내려고 하느냐=너도 갈아치워지고 싶니-가 무섭게 들릴 수 밖에 없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아들이 두려울 수 밖에 없는게 펠리페의 입장.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이야 각각 어쨌든간에 이 부분부터는 무대에 콩가루가 자욱하다. 황후화보면서 이야 부부싸움에 금칠을 하니 이렇구나 감탄을 했는데 돈 카를로도 만만치 않음. 땅 내놓으라는 아들의 말에 펠리페는 미쳤구나 내가 나 찌르라고 너한테 칼을 주겠니 비웃고 여기에 열받은 카를로는 아빠가 뭐라든 난 플랑드르를 지킬거예요!하고 칼을 뽑는다. 사람들 반응이야 당연히- 왕자가 미쳤구나!!






카를로놈 진짜 플랑드르를 위하는 거면 이러면 안 되는거지ㅠㅠㅠㅠ 엘리자베타 앞에서 창피당하니까 욱해서 그런 거잖아ㅠㅠㅠㅠㅠㅠ 화형대에 아직 불도 안 붙였는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네?ㅠㅠㅠㅠㅠㅠ 로드리고 속 타는 냄새ㅠㅠㅠㅠㅠ 





펠리페는 당연히 노해서 귀족들과 근위병들에게 왕자에게서 칼을 빼앗으라고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여기서 펠리페의 외로움도 드러나지만 나같아도 둘의 싸움에는 안 끼어들겠지. 현명하다 스페인의 귀족들. 장하다 펠리페의 근위병들. 아무도 나서지 않자 펠리페가 직접 칼을 빼들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칼부림을 하려는 순간에 끼어드는 건 로드리고. 카를로를 향해서 칼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이때 카를로놈 반응이 또 로드리고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라. 





로드리고는 카를로의 칼을 잡고 카를로를 보는데 카를로놈은 울것 같은 표정으로 불에 델듯이 손을 빼고는 등 돌려버린다. 이 시점에서 또 우정의 이중창 테마가 한 번 애잔하게 깔려주시고. 로드리고에게 카를로의 칼을 받아든 펠리페는 로드리고를 그 자리에서 공작으로 봉하고 카를로는 그 말에 놀라 돌아서는데 네가 아버지의 권력에 홀려서 나를 팔았구나!! 하는 표정. 





스트리밍에서는 카를로가 근위병에게 끌려가기 직전 카를로와 로드리고가 아이컨택을 하는 시점에서 카메라가 어째서인지 펠리페의 행렬을 잡아줘서 아니 지금 어딜 보여주는거야ㅠㅠ 안타깝게 했는데 다행히 DVD에서는 제대로 잡아줬다. 잡아주나 마나...로드리고 카를로 버려라 진짜...하지만 정말로 로드리고가 카를로를 버리고 펠리페를 택했으면 난 지금처럼 이렇게 붙들고 파고 있지 않겠지 ( mm





카를로의 결점 중 하나가 지가 저지른 짓은 생각을 안 하고 남이 저한테 해줄 것만 생각하는 건데 에볼리에게 상처를 줬음에도 자기를 사랑하니까 도와줄거라고 믿는거나, 펠리페에게 그동안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처음 하는 부탁-플랑드르 통치권을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믿는 게 그렇다.  좋게 말하면 타인의 악의를 계산할 줄 모르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 중심적인 구조로만 생각을 하는 건데 여기서도 딱 그렇다. 이렇게까지 대형사고를 치고서도 로드리고가 자기를 감싸줄 거라고,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로드리고에 대한 믿음을 보여줘서 애잔해야 하는데 사고의 규모가 이렇게 크고 거기에 동기도 그러고 보니 조금도 안 애잔함. 애잔한 건 이렇게까지 당하고도 카를로를 결국 못 버리는 로드리고가 애잔하고, 그런 로드리고의 마음은 모르고 자기 편들어줬다고 바로 공작에 봉해주는 펠리페가 애잔하지. 마티 살미넨이 표정변화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잘 보면 입모양이랑 눈으로 표현을 잘 해주신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영상으로 보면 로드리고를 공작으로 봉할 때 입매가 약간이나마 미소짓는 게 보여서 애잔함.


여기서 얼마나 펠리페가 로드리고가 고맙고 예뻤을지 생각해보면 진짜...ㅠㅠ  스페인의 어느 대공도 감히 나서지 않았던 순간에, 왕을 지키는 게 임무인 근위병도 나서지 못한 순간에 로드리고가 나서서 미쳐 날뛰는 왕자에게서 펠리페를 구해준 거임. 할 수만 있었으면 펠리페는 이 자리에서 로드리고에게 공작보다 더한 걸 줬을걸. 그리고 희곡에서는 실제로 단순한 공작위 이상의 것을 주기도 했고






        (포사의 목소리에 생기를 되찾아 후작에게로 몇 걸음 마중 나가며)

아, 이 사람이다!

어서오시오, 후작. 공작, 지금은 그대가

필요 없소. 여기서 떠나시오.


(알바와 도밍고 놀라워 하며 말없이 서로 바라보며 퇴장)


후작       마마!

스무번의 전투에서 마마를 위해

죽음에 맞서 싸운 늙은 장군을 그렇게

물리치심은 가혹한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대에게 어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그대가 겨우 몇 시간 만에 내게서 얻은 중요성을

그는 삼십 년 동안에도 얻지 못했소.

나는 호의를 슬그머니 감추지 않겠소.

왕의 총애라는 인장이 그대의 이마에서

멀리까지 밝게 빛나게 하겠어.

내가 친구로 선택한 사람이

남들의 시샘을 얻기 바라오.



(...)



레르마   알바 공작이 총애를 잃었다고

합니다- 루이 고메스 백작이 

그 인장을 뺏겼고, 그것이

후작에게로 넘어갔다고.


카를로스 (깊은 생각에 잠겨서) 그런데 내게 그것을 숨겼다!

그는 어째서 내게 그 말을 안 한 걸까?


레르마   궁정 전체가

벌써 그가 전능한 장관, 무제한의

총신이라고 놀라고 있지요.






삼십년을 충성해봐야 이런 취급받는 알바 공작도 나름대로 씁쓸한 인생이지만 그에 대비되는 로드리고에 대한 펠리페의 총애는 뜨거워서 마음 아프다. 며칠 전까지는 왕이 얼굴도 모르던 사람인데 갑자기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것. 로드리고에게 펠리페가 주려던 게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느껴지지 않나. 물론 오페라에서는 시간이 짧다보니 여기서 공작에 봉해주는 걸로 그치지만 13잘츠는 이 뒤에 라크리모사가 있으니까. 


앞서 말했듯이 희곡에서는 화형식이 없기때문에 카를로의 체포는 다른 시점에 이뤄지는데 그게 오페라로 치면 3막1장이다. 앞에서 에볼리한테 엘리자베타를 사랑한다는 걸 들키던 순간. 순진한 레르마 백작의 오지랖 때문에 로드리고를 아버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카를로가 완전히 절망해서 에볼리한테 찾아가서 엘리자베타 좀 만나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바람에 로드리고가 더 놔두면 사고치겠다 싶어서 보호격리하는 개념으로 잡아넣어버린 거였다.


희곡과 오페라의 체포시점이 달라진 것에 대해서 나는 뭐...일단은 좋다. 우선은 카를로의 체포에 좀 더 정치적인 이유가 실리게 되는 거라서. 그렇게 많은 눈이 보는 앞에서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다 못해 칼을 휘두른 왕자를 가두는 것도 당연해보이잖아. 그나마 곱게 감옥에 가둬준 건 스페인에는 뒤주가 없어서겠지 싶을 정도. 또 하나 좋은 게 희곡은 로드리고의 침묵과 과보호라는 과실을 일부 인정할 수 밖에 없는데 비해서 오페라는 빼도박도 못하게 카를로가 잘못한게 되거든ㅋ


카를로가 끌려나가고 화형식이 진행되는데 여기서 천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부분이 또 좋다. 신의 이름으로 이런 죄를 짓고 있습니다-라는 한탄에 섞여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는 가련한 영혼들에게 천국으로 와서 편히 쉬라고 하는데 이게 2막1장에서 울리는 전능한 신의 권위를 노래하던 수도사들의 노래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전지전능한 신이 이 땅에서 자신의 이름 때문에 고통받는 인간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자비란게 결국 죽어서 편안해지라는 것 뿐인가? 신이 이 고통에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그거라면 어째서 신의 전능함을 두려워해야하나?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이 죄는 뭘로 정당화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라 좋지 뭔가. 





좋지만 진짜 이 부분은 눈물이 앞을 가려서... ( mm 플랑드르 사절들 집에는 무사히 갔냐ㅠㅠ 그래도 왕자니까 카를로놈 믿고 왔을텐데 왕자놈이 부왕 빈정 다 상하게 해놓고 플랑드르 자기한테 달라고 땡깡부리다가 안 준다니까 칼 뽑아들고 대드는 바람에 체포당하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 무슨 기분이 들었을까, 거기다가 플랑드르랑 손잡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던 포사 후작이 왕 편 드는 걸 봤던거 생각하면ㅠㅠㅠㅠ 로드리고가 챙겨서 집에 보내줬을거라고 믿고 싶음 그렇죠 후작? 그렇다고 해줘요 당신 손에 내 마음의 평안이 달렸어요ㅠㅠ 


3막 2장은 펠리페가 신께 영광을! 외치면서 끝나는데 이게 4막 2장에서도 반복된다. 지금 이 순간 신께 영광을-을 외치는 펠리페의 심정과 4막 2장에서 같은 말을 외치는 펠리페의 심정을 비교해보면 그것도 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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