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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2막 2장 본문

Don Carlo

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2막 2장

neige 2014. 8. 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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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Carlo] - 돈 카를로 20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2막 1장



1막에서 명목상의 두 주인공 엘리자베타와 카를로가 등장하고 2막 1장에서 진짜 주인공 로드리고가 등장했다. 2막 2장에서는 다른 두 명의 중요인물들이 등장한다. 


왕비의 정원에 모여 왕비를 기다리는 궁정의 여자들 사이를 오가는 왕비의 시종 테발도는 무거운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팔랑팔랑 귀여운데다가 바지역이라서 남장여자라는 매력이 있다보니 어느 버전을 보든지 좋아하지만 중요인물은 아니고 중요인물답게 합창단원들보다 늦게 무대에 등장하는 에볼리가 그 첫번째. 





기도하러 간 왕비를 기다리는 사이 에볼리가 무료함을 달래자며 부르는 노래가 베일의 노래. 유럽 어디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센왕의 이야기라는 게 이슬람이랑 맞대고 살았던 스페인다운 색깔을 내 주는데 노래의 내용도 재미있다. 왕이 밤에 궁을 거닐다가 베일을 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한 눈에 반해서 너 참 아름답구나 널 위해서라면 왕비도 버리겠다 그러니 베일을 좀 벗어보렴하고 작업을 걸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여인이 왕명이시라면 하고 베일을 벗었는데 얼굴을 보니 왕비였더라-는 이야기. 그래서 왕은 새삼 왕비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잘 해봤는지 아니면 아예 왕비랑 영영 틀어졌는지 궁금하지만 돈 카를로에서 베일의 노래가 재미있는 건 "왕비인줄 모르고 사랑을 고백했는데 베일을 벗어보니 왕비였더라" 라는 이 상황이 3막 1장에서 벌어날 사건의 복선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13잘츠에서 에볼리 역을 맡은 배우는 러시아 메조 소프라노 예카테리나 Semenchuck인데 성을 정확히 뭐라고 읽는지 모르겠다. 기사들 찾아보면 세멘척이라고 표기해놓긴 했던데 죄송합니다( mm 근데 이 에볼리 완전 좋음!! 언니 최고에요♡ 성을 뭐라고 읽는지 모르겠어서 미안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생기발랄하고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게 진짜 완전 좋은 에볼리. 


스페인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펠리페의 정부라는 의혹이 있었다는 역사적 설명에다가 펠리페가 엘리자베타와 카를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작품 내 설명만 보면 전형적인 요부 타입을 생각하기 쉬울텐데 희곡과 오페라의 에볼리는 요부나 팜므파탈이라는 분류에 넣고 보기에는 어딘지 딱 들어맞지 않는다.  희곡에서는 카를로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 펠리페의 유혹에-정확하게는 프랑스인 왕비를 내치고 스페인인으로 왕비를 세우려는 도밍고와 알바의 계략에-넘어갔었고, 오페라에서는 이미 펠리페의 정부이면서 그럼에도 카를로를 사랑하는 상황으로 나오지만 팜므파탈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카를로의 파멸은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왜 자업자득인지는 3막에서 아주 잘 나오는데 그건 그때 얘기하고,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페라에서는 완전소중 에볼리♡ 사랑해요 에볼리♡ 예쁘고 씩씩하고 대차고 행동력있고 능력있고 진짜 좋음♡ 남자 보는 눈만 있었음 완벽했을텐데ㅠㅠ


이런 에볼리의 매력을 보는 사람에게도 알려주려는 설정인지 테발도는 에볼리에게 반해 있다는 해석이 종종 있는데 13잘츠의 테발도도 그렇다. 음지의 양덕들은 둘이 백합백합해서 좋다고 열심히 움짤을 생산하기도ㅋ 하지만 이왕 백합을 민다면 난 에볼리/엘리자베타를 지지하겠음ㅋㅋ 손짓 하나로 테발도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에볼리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자기 매력을 잘 알고 그 힘을 아는지가 보인다. 


노래가 암시하는 바는 어떻든간에 그나마 좀 재잘대는 새소리같이 밝은 분위기였던 것이 기도를 마치고 나온 엘리자베타로 인해 가라앉는데 그  가운데 로드리고가 등장해서는 프랑스 궁정에서 엘리자베타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아왔다면서 몰래 카를로의 편지를 쥐어준다. 





앞에서는 카를로 얼러주기 바빠서 잘 안 드러났지만 햄슨로드리고는 궁정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능수능란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엘리자베타의 손에 카를로의 편지를 몰래 쥐어주고는 주위의 여자들에게 엘리자베타의 어머니에게 받아왔다고 편지 들어보이면서 약 파는 것도 그렇고 의문에 가득찬 엘리자베타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내밀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상냥하게 지어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에볼리가 프랑스 소식을 요리 물어보고 조리 물어봐도 아무튼 프랑스까지 아울러서 당신이 제일 아름다우십니다-라고 착한 마법 거울마냥 에볼리의 답정너짓을 척척 받아넘겨주면서도 카를로 편지 읽는 엘리자베타 살피는 솜씨가 달리 북부유럽 전체를 규합시키고 스페인의 숙적 술레이만까지 움직이게 한 게 아니구나 싶어진다. 에볼리와 주거니받거니 하는 건 특히나 각자 다른 방식으로 카를로를 사랑하다가 3막에 가서 제대로 맞붙는 두 사람이 아직은 서로 속내를 감추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모양이라 보기에 아주 즐겁다. 


카를로의 편지를 읽은 엘리자베타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냐고 묻자 로드리고는 자신을 위한 소망은 아니라고 하는데 카를로의 편지를 들고 온 로드리고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움에 떠는 엘리자베타와 그런 속내를 알리 없어 로드리고에게 어서 말해보라고 채근하는 에볼리. 여기서 두 여자들의 왕궁에서의 위치가 슬쩍 보인다. 사실 왕비인 엘리자베타가 왕비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하면서 바라는 바를 물어본 상황에서 제 아무리 공녀princess라고는 해도 형식적으로는 신하인 에볼리가 감히 끼어들 위치는 아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말해보라고 재촉하며 엘리자베타의 뒤에 나란히 앉는 에볼리의 대담함은 왕의 정부라는 배경을 모르고 봐도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카를로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에볼리의 무례함은 신경쓰지 않는 엘리자베타의 대범함, 혹은 신경쓰여도 내색할 수 없는 상황인 고립감 역시도 생각해볼만한 부분이고. 





앞에서 에볼리/엘리자베타를 지지할거라는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게 에볼리-엘리자베타도 파보면 흥미로운 대립관계라서다. 왕인 펠리페를 사이에 둔 정비와 정부이기도 하고 왕자인 카를로를 사이에 두고는 첫사랑과 짝사랑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이 둘은 펠리페와 카를로처럼 서로 발톱세우는 관계는 또 아니다. 엘리자베타는 에볼리를 아끼고 좋아하고 에볼리는 자신과는 달리 평범한 인간의 욕망에서 초월한 성녀처럼 보이는 엘리자베타를 어려워하고 존경한다. 그러다가 카를로의 실수때문에 에볼리가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그 존경심과 죄책감을 버리고 엘리자베타를 배신하는 것. 펠리페에게 엘리자베타와 카를로의 부적절한 관계의 물증이라고 보석함을 들고가는 에볼리의 고발은 이런 감정선에서 이뤄진 건데 그냥 단순히 질투에 불타 연적을 제거한다는 거랑은 또 다르게 우정과 존경과 복수가 들어가서 재미있지 뭔가. 


로드리고는 카를로를 만나달라고 엘리자베타에게 간청에 간청을 거듭하고 다시 카를로를 봐야한다니 괴로워서 죽을 것 같다고 고민하는 엘리자베타와 달리 에볼리는 카를로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말을 못하고 앓고 있는게 아닌가 왜 말을 못할까 궁금해하는 게 3막에서 일어날 사건의 불씨가 되는데 오페라만 보면 에볼리 왜 혼자 넘겨짚고 저래...싶지만 희곡을 보면 카를로가 잘못해서 그렇다. 


무도회에서 다음 춤 상대인 엘리자베타를 버리고 억지로 옆 커플을 갈라놓으면서까지 에볼리의 손을 잡아채 춤을 추고, 에볼리의 장갑을 훔쳐갔다가 그 안에 사랑의 고백을 적은 쪽지를 감춰서 돌려놓고, 예배당에서 엘리자베타를 수행해 들어오는 에볼리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고 성모상의 발에 열정적으로 입맞추는 걸 보면서 에볼리같이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잘 아는 여자가 왕자가 날 사랑하나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다른 건 몰라도 장갑은 진짜ㅋㅋㅋ 카를로 이 멍청이가 엘리자베타 장갑 훔친다는 게 에볼리 장갑 잘못 훔친거라 뭐라고 실드 쳐주고 싶지도 않다ㅋㅋㅋㅋㅋ 거기다 에볼리가 한참 뒤에 그 사랑고백 정말 좋았어요 할 때까지 카를로는 에볼리 장갑에 잘 못 넣은 것도 몰랐음ㅋㅋㅋㅋㅋㅋ


그런 카를로의 멍청함도 그 때문에 헛짚은 에볼리의 마음도 알리 없는 엘리자베타는 제발 카를로를 구해달라는 로드리고의 간청에 못 이겨 결국 아들을 만나겠다고 답한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들지 않나. 로드리고는 바로 앞에서 그런 사랑 대신에 진정한 사랑, 자유와 인류를 향한 사랑을 하자고 카를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엘리자베타한테 카를로를 만나달라고 매달리는 걸까?


오페라에서도 그렇고 희곡에서도 이 부분에서 엘리자베타의 고뇌는 드러나도 로드리고의 속내는 바로 드러나지 않는데 엘리자베타에게 카를로를 만나달라고, 제발 그를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이 상황은 사실 로드리고로서도 온갖 생각이 들 수 있는 상황이다. 


돈 카를로의 매력 중 하나가 다양한 삼각관계가 이루는 긴장감과 충돌이라는 이야기를 이전에 했다. 펠리페-엘리자베타-카를로가 대표적이지만 엘리자베타-카를로-로드리고의 삼각관계도 찬찬히 뜯어보면 재미있다. 삼각관계라니 세 사람은 펠리페에게 대립하는 같은 진영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겠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오페라의 로드리고와 카를로, 특히나 13잘츠의 두 사람은 카를로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로드리고가 막내 동생 돌보는 형마냥 업어키우며 손수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였을것 같아 보이지만 희곡의 두 사람의 시작은 전혀 다르다. 






카를로스    거친 소년이던 너와 내가 

형제처럼 함께 어울려 자라던 시절, 네 빛나는 정신에 

내가 가려지는 것 말곤 

그 어떤 고통도 나를 짓누르지 않던 그 시절에, 

난 대담하게도 너를 끝없이 사랑하기로 결심했었다. 

너와 대등해질 용기를 잃었기에. 

그때부터 난 많은 애정과 성실한 

형제애로 널 들볶기 시작했지. 

너의 오만한 마음은 그런 나의 사랑에 차갑게 응수했어. 

넌 절대로 보지 못했겠지만, 네가 나를 제치고 

다른 하찮은 아이들을 감쌀 때마다 

난 이따금 멍하니 뜨겁고도 

무거운 눈물방울을 눈에 머금고 서있었다. 

어째서 쟤들이지? 난 슬퍼서 이렇게 외쳤어.

나도 온 마음으로 네게 친절하지 않은가?-하지만 넌, 

넌 내앞에서 차갑고도 진지한 자세로 무릎을 꿇었지. 

그것이 왕의 아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하면서. 


후작            오, 그런 아잇적 이야기는 그만두세요, 왕자님.

아직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질 지경입니다.






로드리고 말이 내 마음이라서 로드리고 대사까지 같이 인용했다. '네 빛나는 정신에 내가 가려지는 것'이 괴로웠고, '너와 대등해질 용기를 잃었기에' 널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은 카를로의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이 보여서 마음이 아프지만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관계의 시작이 카를로->로드리고였고 카를로가 로드리고를 숭배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에 일단 밑줄을 그어보고 그래서 카를로가 어떻게 로드리고의 마음을 얻게 되었는지를 보면...






카를로스    네게 그런 대우 바라지 않았건만, 넌 내 마음을

거부하고 찢어놓을 순 있어도 절대로

네게서 떼어놓을 순 없었지. 너는 세 번이나     

왕자를 멀리했으나, 왕자는 세번이나 

애원하며 네게로 돌아와 사랑을 갈구하고,

떼를 써서라도 사랑을 얻으려고 졸라댔다.

카를로스가 절대로 이루지 못한 것을 우연이 해결해주었지.

언젠가 우리가 놀고 있을 때 네가 던진 공이

보헤미아 여왕인 내 고모님의

눈에 맞았어. 고모는 누가 일부러 

그런 줄로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임금님께 하소연한 거야. 

궁정에 있던 아이들이 모조리 불려가서

잘못한 녀석을 고해야 했지.

임금님은 그 뻔뻔스러운 행동에 대해

설사 자신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가장 무서운 

형벌을 내리겠노라 맹세하셨다-당시 나는

멀리서 네가 떨고 있는 것을 보았어. 그 순간

내가 앞으로 나서서 임금님의 발치에 몸을 

던졌다. 그러곤 소리쳤지.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의 벌을 아들에게 내리세요.


후작            아, 어떤 일을 상기시키는 건가요, 왕자님!


카를로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궁정의 신하들이 모두 안타까운 마음으로 둥글게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노예에게 내리는 것 같은

형벌이 너의 친구 카를로스에게 집행되었지.

나는 너를 바라보며 울음을 참았어. 아픔 때문에

이가 갈려 부드득 소리가 났지만

난 울지 않았어. 가차없는 매질로 내 몸에서

왕가의 피가 수치스럽게 흘러내렸지만

난 너를 바라보며 울지 않았다. 네가 다가왔지.

큰 소리로 울면서 넌 내 발치에 쓰러졌다. 그래,

그래, 내가 너의 오만함을 이겼다고 넌 소리쳤다.

장차 왕이 되시면 이 은혜를 갚겠노라고.






어릴때도 그렇고 이후의 행적을 봐도 로드리고의 결점 가운데 무모함은 있어도 비겁함은 없는지라 카를로가 가만 있었으면 로드리고가 솔직하게 나섰을 것 같은데 괜히 카를로가 나서서 분위기 심각하게 만드는 바람에 못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이렇게 희곡의 두 사람은 카를로의 피와 로드리고의 눈물로 시작된 사이다. 그리고 결국 로드리고의 피와 카를로의 눈물로 끝나게 되는데, 죽음의 순간에 로드리고는 '자네가 어린 시절에 나를 위해 피를 흘렸을 때 나도 이렇게 서두르고 양심 바르던가?'라고 이때 일을 다시 언급한다. 공 한번 잘 못 던져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mm


감상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카를로가 피와 굴욕을 대가로 로드리고의 항복을 얻어낸 것부터가 건강한 관계의 시작은 아니다 싶어서 감동적이기보다는 무서웠다. 더구나 벌을 주는 사람이 다른 사람 아니고 아버지라니. 앞날의 암시도 아니고ㄷㄷㄷ '가차없는 매질로 내 몸에서 왕가의 피가 수치스럽게 흘러내렸지만 난 너를 바라보며 울지 않았다.' 이 부분 되게 섬뜩하고 무섭지 않나ㄷㄷ 공 잘못 던진게 무서워서 떨 나이면 어릴 때였을텐데 카를로 여기서부터 싹수가 보여ㄷㄷㄷ 도망가라, 로드리고. 선대 포사 후작님은 아들한테 그런 친구한테서는 멀리멀리 도망가야 한다 안 가르쳐주시고 뭐하신거람. 궁정의 아이들이 모두 불려가서 진범을 말해야 했는데 목격자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로드리고가 그랬다고 이르지 않은 거나 카를로가 대신 벌을 받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것도 묘하다. 카를로가 하찮은 아이들이라고 말한 아이들이 그 아이들일텐데.


이걸로도 충분할텐데 실러는 친절하게도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서 덧붙여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이미 왕자가 후작의 마음을 얻은 것은 사랑보다는 감사하는 마음 덕분이었고, 우정보다는 동정심 덕분이었던 거죠. 소년의 영혼에서 어둡고도 혼란스럽게 몰려드는 이런 감정, 예감, 꿈과 결심은 분명 상대의 영혼에도 보이고 알려졌을 것이고, 카를로스는 그것을 함께 예감하고 꿈꾸고 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포사와 같은 정신은 자신의 우월함을 즐기려는 경향을 일찍부터 가질 게 분명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카를로스는 그토록 몸을 낮추어 열렬히 배우며 그에게 매달렸던 것이지요! 포사는 [카를로스라는] 이 아름다운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 시절의 우정이 생겨난 것이죠.


-<돈 카를로스>에 부치는 편지 중 셋째 편지






희곡을 보건 오페라를 보건 카를로놈 저거저거 혀를 차면서 봤지만 솔직히 실러의 해설을 보고는 카를로가 불쌍했다. 이게 무슨 거만한 연민의 정도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얻지 못한 소년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우정이 사실 이런 것이었다니. 카를로가 로드리고에게 매달리면서 '나를 고아라고 여겨라. 불쌍해서 네가 옥좌에서 주워올린 고아라고 말이다.'라고 하긴 하지만 그건 사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로드리고한테 플랑드르 따위보다 내가 훨씬 더 엄청 더 불쌍하다고 해줘-하고 어필하려던 거였는데 이걸 보면 진짜 로드리고가 불쌍해서 거둬준 게 맞잖아. 시작은 어땠든 간에 로드리고가 카를로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다행 맞나? 


결국 실러가 그린 대로라면 두 사람은 카를로의 끈질긴 어택과 자해공갈을 못 이긴 로드리고가 항복하고 받아준 사이로 대학 시절까지 왕자인 카를로에게 자신의 꿈을 불어넣는 로드리고와 그런 로드리고의 이상을 우러러 보면서 따라가는 카를로라는 형태로 돈독하고 평화로웠다. 동서고금 시대를 앞서가는 이념을 가진 신하와 그 이상을 따라 같은 꿈을 꾸는 미래의 통치자란 참으로 아름다운 사이 아니겠나. 그런데 로드리고가 이슬람에게 말타섬을 지켜내고 카탈루냐 반란도 평정하고 프랑스 궁정에서 마상시합에도 참가하고 플랑드르도 돌아보고 플랑드르 독립 실현을 위해 유럽전체를 돌아다니느라 카를로 곁을 떠나있다 돌아와 보니 둘 사이에 카를로가 엘리자베타를 끌고 들어온거다. 그것도 아 그래? 사랑 좋지! 힘내라!! 응원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자연법 앞에서도 실정법 앞에서도 모두 죄가 될 수 밖에 없는 불가능한 사랑. 그래도 보는 사람의 어이를 붙잡아주려는 일말의 친절인지 실러는 로드리고한테 그렇게 빠져있던 카를로가 왜 엘리자베타를 향한 절망적인 사랑에 목을 매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주기는 한다. 







카를로스는 아버지의 궁으로 돌아오고 포사는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고귀하고 열렬한 젊은이를 향한 애착을 통해 길들여진 카를로스는 폭군의 궁정 전체에서 자기 마음을 충족시켜줄 그 어느 것도 찾아내지 못하죠. 주변의 모든 것이 공허하고 결실이 없습니다. 그는 수많은 총신들이 우글거리는 한가운데서 고독하고 현재에 짓눌린 채 과거의 달콤한 추억만을 위로로 삼죠. 그에게는 이전의 인상들이 다정하고도 생생하게 계속되고,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그의 마음은 그에 합당한 대상이 없어지자 절대로 충족될 수 없는 꿈만을 꿉니다. (...) 위축되고 힘없고 활동성도 없이 자신 안으로만 침잠하여 힘들고 성과없는 싸움에 지친 채 끔찍한 극단들 사이를 오가며 그 어떤 독자적인 도약을 할 힘도 없는 그런 꼴을 한 채로 그는 옛날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첫사랑에 맞설 힘이 없죠. 그에 맞서 균형을 유지해 줄 수도 있었을 이전의 이념들은 그의 영혼에 낯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사랑이 독재적인 힘으로 그를 지배합니다.


-<돈 카를로스>에 부치는 편지 중 셋째 편지






롱디는 이래서 힘든 겁니다. 그러게 왜 카를로 쓸쓸하게 버려두고 혼자 돌아다녔냐고 애를 혼자 두니까 너무 외로워서 딴 맘 먹은 거 아니냐고 로드리고 까기도 애매한 게 로드리고라고 카를로가 설마 이럴 줄 알았겠냐고. 로드리고는 어릴 때 공 한번 잘 못 던진 죄로 맹세한 이래로 카를로 하나 밖에 안 봤단 말이야. 믿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보통 네 맘도 내 맘같을 거라 생각하지 않나. 게다가 로드리고가 카를로한테 매달린 시작도 아니고 카를로가 매달렸는데 그거 잠깐 떨어져 있었다고 맹세고 뭐고 싹 버리고 이렇게 뒤통수를 칠거라는 예상은 못하는 게 당연하지.   


레미즈에서 마리우스가 코제트 만나서 얼떨떨한 채로 들어와서 소동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심각한 게 뮤지컬에서는 마리우스가  사랑 때문에 나 이제 혁명에는 관심없다고 하지도 않았고, 마리우스가 없다고 아베쎄의 벗들이 못 움직일 것도 없었다. 사실 소설에서는 마리우스 없이도 바리케이드 잘만 쌓았고. 그런데 돈 카를로에서는 카를로가 플랑드르고 자유고 난 다 몰라 마리우스보다 더 심각하게 엎어진 상태인데 로드리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카를로가 필수라는 상황. 아미들이 시민들이 봉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뛰어들어왔는데 앙졸라스가 테이블에 엎어져서 마리안느가 날 안 만나줘 ( mm 하고 울고 있는 정도의 충격이랄까. 이상을 실현해 줄 차기군주로 애지중지 키워서 이제 드디어 써먹을 때가 됐다고 달려왔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로드리고가 황당할 수 밖에. 그러게 왕이고 왕자고 다 필요없고 혁명은 셀프라는 걸 이 시점에서 로드리고가 알았어야 했는데...


앞에서 그렇게 정성들여 사약을 먹여놓았건만 거기까지, 카를로가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까지가 로드리고의 한계였던 것이다. 카를로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이제는 로드리고 자신이 아니라 엘리자베타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엘리자베타에게 이렇게 위험한 부탁을 하고 제발 카를로 좀 구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건데 엘리자베타가 사이에 들어오기 전 카를로가 로드리고를 그렇게 열렬히 숭배했고, 앞에서 인용한 것 처럼 로드리고 자신은 이미 카를로의 영혼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자신의 이상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카를로를 사랑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 상황을 대하는 로드리고의 마음이 궁금해지지 않나.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고 실망도 이런 실망이 없을텐데. 


실러는 이 시점에서 로드리고가 카를로의 사랑을 싹부터 자르지 않고 오히려 그 열정을 이용해 카를로를 움직이려했다고 설명한다. 아 그럼 로드리고는 카를로의 사랑을 이상을 위해 이용하려던 거였구나 그렇구나 역시 카를로는 로드리고에게 이상을 실현할 도구로구나 그럼 로드리고도 마음에 플랑드르를 위한 계획밖에 없었을테니 이 시점에서 쓰라릴 것도 없겠네 하고 넘어가려다가 카를로를 대신해 죽음을 결심한 로드리고가 엘리자베타를 만나는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로드리고가 엘리자베타에게 '그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인간의 두려움이나 거짓된 영웅심에서 공허하게 부인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안 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를 사랑하겠다고 말입니다. 제게 이 약속을 해주시겠습니까?-왕비마마-제 손에 이것을 약속해주시겠습니까?' 라고 호소한 끝에 약속을 받아내고서 이제는 편안히 죽을 수 있다고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어...존잘님 보통 도구한테 이렇게까지 하나요? 저는 이런 상황을 이상주의자와 그 도구 사이가 아니라 다른 사이에서 주로 보았습니다만...하고 묻고 싶어진다. 거기다가 실러는 로드리고는 카를로를 우정에서 염려한 게 아니라 도구로서 아꼈어요 그래서 카를로의 사랑을 안 말리고 이용한겁니다하고 시치미 떼다가 바로 다음 편지에서는 근데 있잖아요 사실 로드리고한테 카를로는 로드리고가 사랑하는 모든 게 전부 모인 집약체에요ㅋ 하고 있다. 돈 카를로스가 지금 연재되는 작품이었다면 실러가 해석 하나 내놓을 때마다 팬덤이 엎치락 뒤치락 싸워댈것 같다. 이번주는 카를로 도구설-냉정한 조종자 로드리고 해석이 흥했다가 이번주는 아 뭐야 원작자가 그거 아니래ㅠㅠ하면서 카를로 애정설-헌신적인 친구 로드리고 해석이 흥하는 스릴있는 덕질이 가능하겠지. 실러는 우정도 사랑도 내 작품의 주제는 아니다, 인류의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열정이 두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서 그것이 사랑과 갈등하는 듯 보이는 게 내 작품의 줄거리라고 정리해줬다. 물론 인류의 행복은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지만 내가 언제는 삼국지를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는 고전으로 파고 레미즈를 인류애의 영원한 상징으로 팠던가ㅋ 





13잘츠로 돌아와서 여기서는 2막1장에서 보여줬듯이 카를로 애정설을 택하고 있어서 햄슨로드리고는 엘리자베타가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었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카를로를 걱정한다. 앞에서 그렇게 카를로를 부둥부둥해주던 걸로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여기서도 절절한 게 카를로가 그 사이 상사병을 못 이기고 앓아누웠나 싶을 정도라서 라 트라비아타에서 아들 걱정하던 제르몽때보다 더 애절해보일 지경. 





엘리자베타가 거절하면 울기라도 할 것 같던 이 로드리고가 엘리자베타가 카를로를 만나겠다고 답하자 계획대로-하면서 미소짓는 게 와...이 사람...카를로 그렇게 감싸줄 때는 몰랐는데 무서운 사람ㅋㅋㅋ 테발도 잡고 뭐라고 하면서-아마 왕 오는 거 망보라고 시켰겠지-내보낼 때 표정 보면 좀 전에 카를로 살려달라고 글썽글썽한 눈 하고 있던 그 사람 맞나 싶음ㅋㅋㅋㅋ 그런데 이런 면모도 맞는 게 엘리자베타 입장에서 보면 카를로나 로드리고나 그놈이 그놈이라서. 앞에서 로드리고가 죽으러 가기 전에 엘리자베타한테 세상의 비난은 신경쓰지 말고 카를로를 영원히 사랑해달라고 눈물로 부탁했던 거, 로드리고에 이입하지 말고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그게 왕의 아이까지 낳은 왕비한테 부탁할 일이 아니잖나. 그런데도 그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엘리자베타는 정녕 대인배였건만 카를로놈이... ( mm


이렇게 혼신을 다한 로드리고의 계획 덕에 엘리자베타와 카를로는 단 둘이 만나게 되는데 여기가 카를로의 철없음과 이기적인 사랑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로드리고가 어떤 마음으로 만든 자리인데 니가 그럼 안 되는거지. 로드리고는 그렇다치고 엘리자베타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거잖아... 카우프만이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사실은 잘 해주는 덕분에, 이 부분의 카를로는 못 참아주겠으니 넘어가자. 명색이 그래도 남주인공인 주제에 기절까지 해가면서 계속 포기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잡고 늘어지는 카를로에게 그럼 가서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피를 묻힌 채 제단에 이 어머니를 끌고가 자기 여자로 만들어보라는 엘리자베타의 매서운 꾸짖음이 그나마 좋은 부분. 따지고 보면 엘리자베타 그나마 제일 개념있는 사람인데 어쩌다 이런 동네에 시집 와서 이런 고난을... ( mm


엘리자베타의 질타에 카를로는 절망해서 떠나버리는데 그렇게 증오하는 아버지라도 차마 극단적인 방법까지는 쓰지 못하는 카를로의 연약함에 연민이 생기는 건 어디까지나 카우프만이 안스럽게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카를로는 갔어도 엘리자베타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펠리페가 등장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는 엘리자베타와 함께 오는 모습만 보였던 펠리페가 본격적으로 등장해서 하는 첫번째 일은 시녀 없이 혼자 있는 왕비를 나무라면서 왕비의 시녀를 스페인에서 추방하는 것. 카를로가 로드리고가 시킨대로 플랑드르로 갈 수 있게 부왕을 설득해달라는 말만하고 엘리자베타를 떠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카를로는 벌써 도망가고 로드리고만 이 사태를 보고 있다니. 울면서 떠나는 시녀를 다독이는 엘리자베타의 노래가 울지말아요, 나의 친구여Non piange, mia compagna. 





돈 카를로에서 엘리자베타의 노래라면 5막에서 카를 5세의 무덤 앞에서 부르는 세상 허무함을 아시는 분Tu che le vanita가 더 유명한 느낌이지만 이것도 좋은 게 엘리자베타의 의젓한 품성을 드러내 주면서 펠리페에게 받은 모욕에 반감을 드러내는 자존심 강한 왕비의 면모가 보이는 노래라서. 자신의 반지를 시녀에게 건네주면서 내 얼굴을 붉게 만드는 이 모욕에 대해서는 침묵해 달라면서 펠리페를 노려보는 하르테로스 엘리자베타 좋았음.  



울먹이면서 시녀가 떠나고 왕비도 에볼리도 모두 물러가는데 펠리페가 로드리고를 불러세우는 게 Restate! 


2막 1장이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관계를 보여준다면 이 부분은 펠리페와 로드리고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의심과 질투에 찬 늙은 남편이라는 앞의 모습에 더해 세상의 절반을 지배하는 왕이라는 펠리페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막 2장의 꽃이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꽃 맞음. 근거없는 주장이 아닌 게 카를로-엘리자베타-펠리페라는 삼각관계로 사람들을 낚았던 실러가 카를로-로드리고-펠리페라는 진정한 삼각관계를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실러는 건축물이 완성되었으면 비계는 철거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면서 낚시질을 정당화하고 있다. 주인공 커플인줄 알고 믿고 보다가 졸지에 철거물 취급받은 카를로-엘리자베타-펠리페 지지자들에게 위로를...;ㅁ; 실러를 위해 변명을 하자면 돈 카를로스 착수에서 완성까지 4년이 걸렸고, 본인이 고백하듯이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더니 그 사이 이런저런 생각의 변화로 그만 최애캐가 카를로에서 로드리고로 바뀌어 버렸던 것. 실러뿐 아니라 베르디도 이 부분을 여러 번 수정할만큼 신경썼던 부분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이게 또 프랑스어 버전이랑 이탈리아어 버전이랑 상당히 달라서 비교해보면 재미 있음. 이렇게 두 존잘님들이 정성을 들이셨으면 마땅히 감사합니다 감읍하면서 받아들고 떡밥을 꼼꼼하게 찾아먹는게 도리가 아니겠나. 


오페라에서는 카를로 때문에 왔던 로드리고가 마침 눈에 띄어 펠리페와 독대하게 되지만 희곡의 두 사람의 만남은 훨씬 공들여 준비된다. 엘리자베타와 카를로에 대한 의심, 심지어 엘리자베타가 낳은 딸마저도 펠리페의 딸이 아니라 카를로의 딸이 아닐까하는 의심에 괴로워하며 잠들지 못하던 펠리페가 제발 한 사람, 순수하고 열린 심장을 지닌 사람, 밝은 정신과 편견없는 눈길을 지닌 사람, 진실을 찾아내도록 도울 단 한 사람을 찾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하고 나서 공신들의 이름을 뒤지다가 로드리고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 오페라에서는 4막 1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처럼 로드리고의 이름을 확인한 펠리페는 신하들에게 포사는 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는데 신하들이 읊어주는 전공도 전공이지만 펠리페가 주목한 건 신하들 누구도 포사를 질투하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이런 부분에서도 펠리페가 사람을 보는 노련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때 사심없이 로드리고를 칭찬했던 알바 공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ㅋ  


오페라에서 그런 밑밥을 생략하고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재회에 바로 이어서 로드리고를 펠리페와 만나게 한 건 아무래도 극의 흐름때문일듯 하다. 실러도 펠리페가 이렇게 늦게 만날 수 밖에 없었던 건 3막까지 먼저 써서 출판했는데 최애캐가 바뀌고 작품 구상도 변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고. 실러가 공들인만큼 펠리페와 로드리고가 나누는 대화는 카를로와의 대화보다 훨씬 더 실러의 주제가 집약되어 있어서 한 줄 한 줄이 전부 다 몹시 좋지만 그걸 전부 음미해보기에는 이래저래 무리니까 우선은 오페라 위주로 보자. 


로드리고를 불러 세운 펠리페는 너 나 보러 안 오더라? 나라에 세운 공이 있으니 갚아줄게 뭘 줄까? 미끼를 던지고 여기에 로드리고는 국법이 절 지켜주는데 새삼 왕의 호의가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우선 튕기는 걸로 대응한다. 인간에 닳고 닳은 펠리페가 한 번에 안 넘어 온다고 당황할 리 없어서 무례하지만 봐줄게 로드리고를 한 번 누르고는 재차 너 요새 논다더라? 군대에 자리 줄까?- 묻지만 이번에도 튕기는 로드리고. 미끼를 주면 무는 사람들만 주위에 두었던 펠리페로서는 이쯤에서 이것봐라? 싶으면서 바라는 게 뭐냐고 다시 물어보는데 절 위한 바람은 없습니다 튕기는 듯 하다가도 다른 사람을 위한 소망은 있습니다-본심을 꺼내는 로드리고. 말해보라는 펠리페에게 로드리고가 고하는 것은 앞에서 카를로놈이 귓등으로도 안 듣던 플랑드르의 참상. 





13잘츠의 펠리페 마티 살미넨은 펠리페 2세에 대한 묘사 중에 웃는 건지 쏘아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묘사를 떠올리게 하는 왕,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마음에 수백겹의 두꺼운 외피를 둘러치다 보니 이제는 그 외피 하나 하나가 돌처럼 굳어진 왕으로 보인다. 펠리페의 캐릭터를 노인, 남자, 왕이라는 요소로 나눌 때 메트와 ROH에서 펠리페를 맡았던 푸를라네토는 상대적으로 남자에 강조점이 찍힌 느낌이었던데 비해서 살미넨의 펠리페는 노인에 특히 강조점이 찍혀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펠리페가 비슷한 연배ㅋ 덕분에 능수능란한 햄슨의 로드리고와 이루는 밀당이 볼만하다. 처음 볼 때는 표정 변화가 별로 없으시네 했는데 보다보니 눈짓이랑 입 모양으로 할 건 다 하고 계셨음.


햄슨의 로드리고는 펠리페 앞에서도 강하고 묵직한 로드리고는 아니다. 전설의 카푸칠리 로드리고는 이런 부분에서 정석적인 느낌이라 당당하고 품위있고 그러면서도 경직되어 있는 건 아니라서 참상에 마음 아파하는 점이 드러나는 게 두루두루 좋아서 과연 전설이시네요ㅠㅠb했는데 햄슨로드리고는 처음에 왕의 호의를 튕기는 부분부터도 도도한 후작이라는 느낌은 안 드는 로드리고다. 후작에다가 카를 5세가 공신들에게 내린 그란데 디 스파냐 칭호까지 가졌고 에볼리 다루는 솜씨를 보나 모후의 편지라며 카를로의 편지를 끼워서 전해주는 스킬이나 분명히 궁정생활에 대해 알만큼 아는 느낌인데 말이나 병사들이랑 있는 게 더 자주 목격될 타입.


그래서 싫으냐고 하면 뭐 이미 낚인 마당에 그럴 리가 없고 플랑드르의 참상을 전할 때 점점 격앙되어가는 목소리에서 신과 왕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범죄가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분명히 이 로드리고는 그런 참상을 보고 울었을것 같단 말이지. 집과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아이를 보고 울고, 죽어가는 자식을 두고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고 울고, 피가 흘러들어 붉게 물든 강을 보면서도 울고, 도저히 이건 못 견디겠다고 사임하고 가진 것 다 플랑드르 난민들한테 내어주고 말 한 필에 검 한 자루만 가지고 스페인으로 달려오면서도 한참은 화내면서 울었을 것 같은 로드리고라서 좋음. 나중에 펠리페가 로드리고를 불꽃의 영혼을 지녔다고 평하는데 햄슨이 노래하는 로드리고는 그 텍스트에 걸맞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서 좋다. 


햄슨 본인도 인터뷰에서 포사는 Zealot이죠-라고 로드리고의 열정적인 면을 짚어줬는데 것보다 독일어로 인터뷰하면서 굳이 영어로 강조해주는 바람에 과연 눈부신 무용을 자랑하는 말타 기사, 그런 기세로 질럿이 저글링 잡듯 예니체리를 잡아가며 성 엘모 요새를 방어했나 잠시 샛길로. 물론 햄슨이 말한 건 사전적인 의미의 열성당원쪽이다. 펠리페를 흔드는 걸로도 모자라서 인간으로서 가장 아픈 고민까지 털어놓고 그 문제를 믿고 맡길 사람으로 보여야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뜨겁고 대담하면서도 이념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 인간적인 로드리고라서 설득력이 있고 좋다.  


카를로는 관심도 없던 것에 비해서 펠리페는 들어주기는 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반역자를 벌했을 뿐이라면서 이 손이 내리는 죽음이 흔들림없는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답하는데 여기에 로드리고는 어째서 죽음의 씨를 뿌려 영원한 미래를 심고자 하냐고 받아친다. 실러의 원 대사가 한줄 한줄 공들인 티가 나서 워낙 좋은데다가 베르디가 수정을 거듭하면서 골라서 엮어내기를 얼마나 잘 했는지 오페라에서도 둘이 주고 받는 게 진짜 좋음ㅠㅠb


스페인을 보라 도시의 상인들 들판의 농민들 신과 왕에게 충실하고 어떤 불만도 없다 이런 평화를 플랑드르에도 줄 것이다-는 펠리페의 흔들림 없는 말은 작품 안에서 제일 섬뜩하다. 화형 장면보다 이 부분이 훨씬 무서웠음ㄷㄷㄷ 그래 아무도 말이 없기는 하지ㄷㄷㄷ 햄슨로드리고가 펠리페가 말하는 동안 점점 화가 치밀어오르는게 보여서 좋았는데 그런 분노와 답답함을 담아 터뜨리는 말-무섭고 끔찍한 평화! 그것은 무덤뿐인 평화입니다! 줄곧 유연하게 대처하던 펠리페가 여기서 제대로 충격을 받는데 오케스트라가 콰쾅 터지는 것까지 완전 좋음. 좋으니까 두번 말함. 


로드리고가 충격을 받은 왕을 몰아붙이면서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큰 눈을 더 크게 뜨는데 펠리페는 결국 차마 로드리고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고개를 돌리는 왕을 보고 로드리고가 잠깐 성질 가라앉히고 나서 이것이 이 세상에 주신 평화입니까? 그것은 공포와 전율만을 불러옵니다 성직자는 사형집행인이요 병사들은 강도입니다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침묵 속에 괴로워하며 죽어갑니다 이 왕국은 광대한 공포의 황무지입니다 펠리페 전하의 존함은 저주받았습니다! - 직언을 하는 부분도 진정하려고 해도 정말 뜨겁게 분노한 게 보여서 좋음. 좋다고 이미 말했지만 특히 이 부분은 어느 로드리고와 어느 펠리페가 해도 좋은 게 음악이 진짜 완전 좋음.




 


보는 나야 좋지만 펠리페는 찔린데 계속 찔려서 아픈데 로드리고의 직언은 펠리페 치하의 현실에서 날아올라서 어느 왕보다 더 높은 왕이 되어 달라고, 인류에게 자유를 달라는데까지 이른다. 햄슨로드리고가 외치는 자유는 멀리서 빛나는 별같은 몽상가의 아득한 관념이 아니라 바로 당장 숨쉬는데 필요한 실재하는 뜨거운 무엇이라는 느낌이긴한데 이 부분에서 펠리페가 아, 얘는 이런 애로구나!하고 표정 바뀌는 게 재미있음. 무릎 꿇은 로드리고를 몽상가라고 하면서 펠리페는 로드리고의 머리에 손을 얹는데 이게 13잘츠 돈 카를로 전체에서 펠리페가 보여주는 가장 애정어린 표현. 심지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엘리자베타에게도 이러지는 않았음. 그러나 로드리고의 반응은 경악과 혐오, 실망. 





로드리고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서 걱정마라 왕은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관대하게 용서해 준 펠리페가 하지만 대심문관은 조심하라-최종보스를 언급하며 경고하지만 로드리고는 여기서 대심문관의 위협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로드리고 본인은 신교도가 아니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란데 디 스파냐 스페인의 왕족 바로 다음가는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고, 당시 기독교 세력의 최전선을 지키던 말타 기사단의 일원이면서 본인이 직접 술레이만의 군대와 싸워 말타를 지켜낸 공로까지 있기 때문인데 사실은 왕이 경고하기도 전에 대심문관은 이미 로드리고를 화형대에 세우려고 점 찍어 놓은 상태였다ㄷㄷㄷ 


펠리페가 그걸 알았으면  로드리고한테 너 벌써 대심문관한테 찍혔음 다시 한 번 알려줬을텐데 펠리페도 몰랐던지라 그저 어떻게든 로드리고를 갖고 싶어 안달이 나서 다시 한번 정말 원하는 게 없냐고 물어보지만 자유도 안 준다는 펠리페에게 볼 일이 없는 로드리고는 그냥 나는 나대로 살게 두라고 거듭 튕기고 펠리페는 결국 더는 못 참고 로드리고의 팔을 은근하게 잡으면서 넌 내 왕좌를 오만하게 내려다보지만 왕관을 쓴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는 모른단다-하면서 연민에 호소한다. 맨 처음에 로드리고를 불러세워놓고 그래 뭘 줄까? 물어볼 때와 비교하면 펠리페가 애처로워지는데 희곡에도 나오지만 로드리고는 펠리페를 왕이라고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고 오히려 왕이 되는 대가로 인간성을 희생하고 그 때문에 공감도 연민도 얻지 못하는 외로움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이게 약간 먹히기는 먹힌다.  


로드리고한테 홀린 펠리페는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비밀, 아들과 아내의 관계가 의심스럽다는 고민을 털어놓고 마는데 이 와중에도 펠리페가 내 아들-이라고 말 꺼내자마자 왕자님의 영혼은 고귀하고 순수합니다!! 바로 나서서 카를로 실드 치는 로드리고는 진짜ㅋㅋㅋ 햄슨로드리고는 심지어 노래 끝에 우리 예쁜 왕자님♡하는 듯이 미소까지 짓는다ㅋㅋㅋㅋㅋ 좀전에 눈 똑바로 뜨고 펠리페 몰아세우던 때랑 온도 차이가ㅋㅋㅋ 아니 뜨겁기는 둘다 뜨거운데ㅋㅋㅋ 카를로 생각만 해도 예뻐 죽겠나봄ㅋㅋㅋㅋ 당장 바로 위짤이랑 차이가ㅋㅋㅋㅋ 펠리페가 자기 얘기하기 바빠서 그 표정을 못 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ㅋㅋㅋ 카를로놈 그거 그렇게 예뻐해봤자 못 쓴단 말야ㅠㅠㅠㅠ 





로드리고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펠리페는 하늘 아래 가장 소중한 존재를 빼앗긴 고통을 털어놓지만 로드리고는 카를로의 비밀을 펠리페에게 들킬까봐 걱정한다ㅋㅋㅋ 그의 고통을 존중해달라고 로드리고가 나중에 카를로 실드 치는 가사 여기서 로드리고한테 들려주고 싶음ㅋㅋㅋ 펠리페의 고통도 좀 존중해줘봐ㅋㅋㅋㅋㅠㅠ 이상한 몽상가일뿐 자기에게 바라는 게 없으니 자기를 속일 리도 없다고 로드리고한테 반해서 잘못된 판단을 한 펠리페는 카를로와 엘리자베타를 감시해달라면서 엘리자베타와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자유를 로드리고에게 주고 만다. 그렇게 거절에 거절을 당하고서도 홀딱 반해서는 로드리고를 잡고 세상의 모든 인간 중에 그대만이 내 사람이다 그대의 충성스러운 손에 내 마음을 맡기노라-는 펠리페를 보면 눈물이...( mm


계속 아니오 됐습니다 거절만했는데 하다보니 펠리페의 사람, 그것도 모든 인간 중에서 유일한 사람이 되어버린 로드리고는 왕비와 카를로 사이를 오가면서 플랑드르를 구할 생각을 하던 차에 목숨 걸고 직언을 했다가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을 얻은 셈. 그래서 누구에게도 열지 않던 마음을 내게 여시는구나, 생각지도 않은 서광이 비치는구나, 드디어 내 소망이 이뤄지는구나 노래하는데 깜짝 놀람. 바리톤이 이렇게 꾀꼴꾀꼴하게 노래하다니 반칙이다ㅋㅋㅋ  희망에 차서 노래하는 로드리고 옆에서 그런 로드리고 믿고 오늘의 이 만남이 내게 평화를 돌려주기를-비는 펠리페를 보면 실러가 나쁜 건지 베르디가 나쁜 건지 살미넨이랑 햄슨이 나쁜 건지 파파노랑 스타인이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진짜 불쌍해서ㅠㅠ 펠리페 불쌍하게 여기라고 푸를라네토 말고 살미넨 캐스팅한건가 ( mm 그나마 펠리페의 그 짧은 희망도 오래도 못 가고 바로 현실로 돌아와서 펠리페는 로드리고에게 다시금 대심문관을 조심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되풀이되는 낮고 무거운 대심문관 테마는 결국 이 두 사람의 희망이 모두 대심문관의 손에 꺾이고마는 결말을 암시한다. 


사실 내 최애 펠리페-로드리고 독대씬은 13잘츠가 아니라 다른 버전인데 13잘츠도 로드리고는 화끈하고 펠리페는 완고하면서도 애처로워서 좋지만 아쉬운 점이 있으니 로드리고가 너무나 확고하게 카를로의 사람이라는 거다. 희곡에서도 그렇지만 오페라에서도 이 부분에서 펠리페가 로드리고에게 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로드리고 역시 펠리페에게 흔들려야 재미있단 말이야ㅠㅠ 이제까지 로드리고의 이상을 실현해 줄 유일한 인물은 단 한 사람 카를로였고 그래서 카를로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왔지만 펠리페를 만나서 뜻하지 않은 신임을 얻게 되면서 실러의 표현을 빌자면 로드리고는 지름길을 발견한 거다. 그렇잖아? 카를로가 왕이 되려면 펠리페가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예순 노인이라도 언제 죽을 줄 알고 기다리겠어. 당장 플랑드르에서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로드리고가 여기서 펠리페라는 새로운 가능성, 그것도 카를로보다 강력하고 빠른 도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흔들리면서 이 뒤에 벌어지는 일들, 에볼리 혹은 레르마가 카를로에게 로드리고는 왕의 측근이 되었다고 경고하고, 로드리고가 카를로의 비밀서류를 받아내려고 들면서 카를로의 의심을 받고, 펠리페를 편들어 카를로의 칼을 빼앗는 일들이 보는 입장에서는 그래서 로드리고는 펠리페한테 넘어간거야, 아니야? 긴장타면서 보게 되는 거고 그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로드리고는 결국 카를로를 택하고 말았구나 왜 그랬어ㅠㅠ하는 안타까움이 더 커지는 것.


그런데 13잘츠의 로드리고는 그만큼 흔들린 것 같지가 않다. 카를로놈 실드치는 것도 그렇지만 햄슨로드리고는 결정적으로 왕의 마음을 얻은 다음에 내 꿈이 이뤄지는구나! 희망에 취해서 펠리페 쪽으로 다가가려다가 퍼뜩 깨어난 것처럼 멈칫한다. 이 부분에 이르기까지 로드리고는 플랑드르의 참상을 고하고 자유를 달라는 청원을 할 때, 자기 신념을 펠리페에게 드러낼 때가 아니면 펠리페에게 의도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펠리페가 팔까지 잡고서 끌어당겨서야 곁에 둘 수 있었는데 펠리페가 자기 치부를 다 드러내 보이고 인간적인 약점을 보이면서 넌 내 유일한 사람이라고 간절히 매달린 상황에서도 로드리고는 겨우 두 걸음 펠리페에게 다가가다가 그마저도 멈춘다. 190 넘는 장신이라 다리도 긴 분이 그 두 걸음도 진짜 짧게 걷는 게 앞에서 카를로놈한테 달려갈 때랑 보폭차이가 진짜ㅋㅋ 결국 펠리페가 다가와서 제발!!!이라는 듯이 손을 내밀고 로드리고는 그 손에 한 번 더 뒤로 물러나서 내려다보다가 펠리페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기는 꿇는데 표정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표정이 아님ㅋ 오히려 울 것 같은 표정이라서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괴롭다는 펠리페 이용하려니 이제와서 마음은 아픈가보네ㅋ 싶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로드리고가 손을 잡고 꿇은 걸 펠리페가 바로 끌어당겨 일으켜 세워주고는 로드리고의 눈을 한 번 마주보고 부끄럽다는 듯이 손을 떨치고 돌아서 가는데 전하 뒷모습까지 애잔함ㅠㅠㅠㅠ   










햄슨로드리고가 펠리페의 괴로움을 못 볼만큼 차가운 로드리고는 아니고 펠리페의 가능성을 못 볼만큼 세상을 모르는 로드리고도 아닌데도 이런 건 아무래도 펠리페한테 흔들리기에는 카를로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고 확고해서 그런듯. 펠리페가 아무리 아프다고 매달려도 연민은 줄 지언정 그 마음에 카를로를 밀쳐내고 들어갈 틈이 요만큼도 없어 보임. 아무래도 13잘츠의 연출 의도는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카를로-로드리고 영상을 만들자는 게 아니었을까 의심되는 부분인데 그런 의도라면야 존중하겠음. 로드리고가 펠리페에게 흔들리지 않고 오직 카를로에게 충실했다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카를로놈의 책임이 더 커지거든ㅋ 거기다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햄슨로드리고가 카를로 실드치면서 미소짓는 거 보고 엌ㅋㅋㅋㅋㅋㅋ뭐하는거얔ㅋㅋㅋㅋ도대체 무슨 약을 드셨어요ㅋㅋㅋㅋㅋ즐거워했으므로. 세상에 이 상황에서 카를로놈 실드치면서 이렇게 웃는 로드리고를 또 어디서 보겠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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