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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레글르 본문

Les Miserables

좋은 사람 레글르

neige 2012. 11. 17. 04:52



뮤지컬을 보면서 레글르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 레글르가 누군지나 써놓고 부르자.



성은 레글르, 별명은 보쉬에, 이름은 위고 선생님이 안 지어주셔서 모름.


한글로 쓰면 간단하지만 원작에서 이 청년의 성은 Lesgle,  혹은 Lègle, 본인은 서명할 때 Lègle de Meaux라고 쓰고 친구들은 레글르의 고향인 모 지방의 주교의 이름을 따서 보쉬에Bossuet라고 부르고, 간혹L'Aigle라고도 하지만 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본래 이름은 레궬르Lesgueules다. 덕분에 처음 읽을때 가뜩이나 이름 외우기 힘든 ABC의 벗들이 9명이 아니라 10명인가 11명인가 헷갈리게하는 이름의 소유자. 그리고 이번 라이센스 뮤지컬에서는 레그로 소개되고 있는 청년. 레글도 아니고ㅋㅋㅋㅠㅠㅠㅠ


위고선생님이 이 청년을 묘사하는 첫 문장은 '대머리 회원이 하나 있었다.'  어째서 하필 그 약점을 짚고 시작하시나 싶으나 스물다섯살 꽃다운 나이에 대머리 진단을 받은 이 청년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불운과 쾌활함. 



첫번째 키워드인 불운.


본인이 말하기를 기왓장이 떨어져내리는 지붕 밑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준인데 덕분에 우체국장을 지낸 아버지가 일군 유일한 재산인 집과 밭을 투자에서 날리고 애인이 생기면 딴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무를 패면 손가락을 다치고 간신히 발판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곧 머리위로 허물어져 내리는 끊임없는 불운의 습격을 받고 있다. 이렇게만 놓고보면 대책없이 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집안의 골칫덩이인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학식도 있고 재치도 있는데 무엇을 해도 그냥 정말 운이 없을 뿐.


이 운 없음 덕분에 ABC의 벗들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주인공인 마리우스와 엮이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황제파였던 아버지에 대한 뒤늦은 추모와 왕당파인 외조부와의 사상적 갈등으로 방황하던 마리우스가 한참 학교에 결석을 했다. 요즘과는 다르게 당시 대학은 출결이 엄격했는지 아니면 코제트의 아버지인 톨로미에스 시절부터 욕을 먹던 블롱도 교수만 그랬는지 이름을 세 번 불러 답이 없으면 그 학생을 아예 지워버리는데 그날따라 교수가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불렀다. 그리하여 인정스러운 보쉬에는 생면부지의 남을 위해 용감하게 대리출석을 감행한다. 문제는 그 다음. 씩씩하게 마리우스 퐁메르시라고 답한 레글르를 노려보던 블롱도 교수는 갑자기 L 항목으로 돌아가 레글르를 부른다. 대답하기 위해 교단으로 갔다가 도망가려고 문 가까이 갔던 레글르는 자신을 부르는 교수에게 역시 당당하게 답을 했다. 교수는 웃으면서 자네가 퐁메르시라면 레글르는 아닐테지-라며 레글르를 제명시켜버렸다. 덕분에 레글르는 변호사의 영관은 끊겨버렸고 법복에 아무런 볼 일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재물운 이성운 건강운 관운 모발운 할 것 없이 이렇게 다 빗나가다 보니 레글르는 주머니에 돈 한 푼 없고 일정한 주소조차도 없어 단짝인 졸리에게 신세를 질 때가 많고 데이트를 하다가 상대에게 말장난을 해가며 밥을 얻어먹기도 한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은 느리게나마 걸어가고 있는 변호사로서의 길이었는데 그마저도 끊겨버린 상황. 


이 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레글르의 두번째 키워드가 드러난다. 쾌활함.


괜히 알지도 못하는 남을 위해 나섰다가 한 가닥 희망이자 밥줄이었던 법학도로서의 인생마저 접게된 상황에서도 레글르의 입담은 즐겁다. 블롱도를 위한 조사弔辭를 즉석에서 읊조리는가하면 마리우스에게 진지하고 엄숙한 충고를 하고는 오히려 덕분에 변호사가 될 비탈길에서 벗어났다고 웃음을 터뜨리는 청산유수같은 말을 보고 있으면 이 불운한 청년의 재치와 학식과 꿋꿋한 쾌활함이 드러난다. 


원작에서의 레글르는 불운에 익숙해진만큼 놀라는 일이 없다고 묘사되는데 항상 최악을 상상하기때문에 거기에 짓눌리는게 아니라 그래서 침착할 수 있고 역경과 친구처럼 정답게 지내고 파국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고 불운에게 다정하게 인사할 수 있는 꿋꿋하고 즐거운 청년이라니 상상하면 귀엽고 장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억지로 이를 악문 비뚤어진 명랑함이 아닌 사는 것을 즐거워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밝은 에너지. 


얼핏 그럼 넉살좋고 궁상맞고 오지랖 넓은 빈대가 아닌가 싶으나 그렇지가 않다. 이 청년의 가난은 어디까지나 불운에 딸려온 옵션일뿐 불운으로 인한 그늘도 없듯 가난으로 인한 비굴함도 없다. 앙졸라스의 심부름을 온 나베에게 심부름값을 주려고 졸리와 그랑테르에게서 돈을 빌릴 때의 당당함이나 낡아서 구멍이 난 옷을 그랑테르가 트집잡을 때 헌옷의 친숙함을 칭송하는 재치가 보일 뿐.


레글르의 살가운 붙임성과 주변인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단순한 오지랖이나 참견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다정함에 근거한 것이라 사랑스럽다. 쉽게 말하자면 내 하루가 끔찍해서 진짜 누가 말이라도 걸어주면 좋겠다-고 할 때 어김없이 왜 그래 무슨 일있어?라고 물어주고 들어주고 털어낸 속을 받아줄만한 좋은 사람이라는 것. 현실적인 해결책을 원한다면 쿠르페락에게 가야겠지만 보쉬에는 적어도 같이 들어줄만한,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사람이다. 


원작 바리케이트의 배경이 되는 코랭트를 보자. 원래 주인인 위슐루 영감이 죽고 난 뒤 위슐루 아주머니가 운영하게 되면서 원래도 형편없던 포도주는 끔찍해졌고 그나마 명물요리였던 잉어요리의 비법마저 사라져 음식도 끔찍했지만 ABC의 벗들은 계속 코랭트를 찾았는데 레글르가 밝힌 이유는 이렇다. "불쌍하니까." 그 불쌍한 아주머니네 주점을 바리케이트로 삼는단 말이냐ㅋㅋㅋ라는 것은 둘째로 하고 인정스럽고 귀엽지 않나. 


마리우스가 코제트의 자취를 놓쳐서 부랑부랑하고 있던 시절 쿠르페락이 아가씨를 찾으러 가보자고 쇼미에르의 무도회에 데려갈때도 레글르가 함께하고 있다. 고르보 하우스때도 테나르디에를 미행하는 마리우스를 본 레글르는 따라가보자!고 나선다. 세상에, 남자를 따라가는 남자를 뭐하러 따라가냐?는 쿠르페락의 거절로 그만두게 되지만. 마리우스는 결혼하기 전에 친구가 있냐는 외조부의 물음에 레글르 이름은 대지도 않았는데 변호사 일하면서 그래도 가끔은 누구 덕에 변호사로 일할 수 있는지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장인도 음습하게 쫓아내는 이 인정머리 없는 이기주의자가 과연 그랬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조가 격해져서 죄송; 결혼식 이후부터 발장의 죽음까지를 떠올리니 그만 화가 나서;;;


이런 다정한 쾌활함은 ABC의 벗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바리케이트에서 특히 빛난다. 뮤지컬의 바리케이트는 보는 이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 급박하고 슬프게 그려지지만 원작의 바리케이트는 사실 훨씬 더 많은 죽음을 겪어내면서도 마냥 슬프게 내내 땅파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심지어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발장의 손에 넘겨진 자베르가 너희도 곧 죽을것이라고 할 때조차도 그럼 또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나가는 그들인데 그런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은 앙졸라스의 엄격하고 신성하기까지한 열정과 콩브페르의 인간적이고 다정한 이해와 지도뿐만이 아니다. 프루베르의 서정시, 바오렐의 열망, 푀이의 굳은 믿음, 졸리의 재치, 이름없는 사람들의 의지, 그리고 쿠르페락과 레글르의 명랑함. 사소할 것 같지만 급박한 상황일수록 웃음과 지치지 않는 밝음이 절실하고 큰 법.


직접적으로 쿠르페락과 레글르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포도주 대신 쾌활한 기분을 나눠주면서 바리케이트의 분위기를 밝혔다-고 나와있기도 하지만 레글르는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참견하는데 앙졸라스의 위대함을 미묘한 각도에서 칭찬해서 앙졸라스의 연인이름ㅋ을 밝히는데 일조하는가 하면 발장에게도 종알종알 말을 걸고 지치지않고 농담을 하고 재치있는 말로 주위를 밝힌다.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서도 비감에 젖는 대신 우리는 다른 별로 가는 마차에 타려는거야-라고 최악 앞에서도 침착하고 쾌활한 성격답게 죽음을 밝게 바라보는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나. ㄴ님과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ABC의 벗들이 각각 혁명과 진보에 필요한 미덕을 상징한다고 할 때 얼핏 낭만적인 고학생으로만 보이는 레글르는 잊기 쉽지만 의지와 희생만큼이나 혁명에 필요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인다. 사실 내 취향이라면 ABC의 벗중에서 제일 눈에 들어왔을 아이는 당연히 그랑테르였겠지만 레글르가 그만 1순위로 치고 올라온 것은 그 긍정적이고 다정한 에너지때문이다. 불운을 지켜보며 생기는 동정심은 보너스. 


뮤지컬에서는 이런 다정함과 쾌활함이 드러나기는 커녕 비중이 시망이라서 슬프지만 어차피 다른 아미도 대체로 다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아예 존재가 없어진 바오렐보다는 낫지 않나 위로해본다.


그럼 이렇게 좋은 녀석인 레글르 얼굴을 보는 걸로 마무리하자. 





1832년 6월 5일 코랭트에 모인 그랑테르, 졸리, 레글르에게 나베가 심부름을 온 장면의 삽화. 좋아하는 삽화를 열개만 고르라고 하면 그중에 꼭 넣을 그림. 원작에 의하면 이때 레글르는 "매우 취했지만 침착성은 잃지 않았다. 그는 열어젖힌 창문 난간에 걸터앉아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등을 적시며 두 친구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으니 오른쪽 창가에 앉은 수염난 남자가 레글르. 그랑테르가 이 대머리야 내가 너같은 대머리랑 동갑이라는 거 생각하면 슬프단 말야ㅠㅠ라고 주정을 하는 이 특징이 의외로 삽화에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잘 생겨보일 뿐. 내가 레글르를 아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잘 생겨보이지 않나? 거기다 분명히 닳아떨어졌을 소매도 졸리의 가드 덕에 안 보인다. 역시 나이스 졸르르리. 




+ 아, 혹시 낚이는 분이 있을까봐 밝혀두는데 레글르가 앙졸라스는 솔로인데도 저렇게 용감하다니 대단해 종알종알거리는 말에 앙졸라스가 홀로 중얼거린 연인의 이름은 파트리아patria다. 그러니까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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