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

레미즈 25주년 잡담 본문

Les Miserables

레미즈 25주년 잡담

neige 2011. 10. 29. 13:20
케이블에서 얼마전에 방영해준 덕에 슬슬 이야기가 나오길래 몇번 보고는 넣어놨던 DVD를 다시 꺼냈다.
처음 샀을때는 두근두근해서 틀었다가 오그라들었다가 낯설어했다가 급분노했다가 조금 풀어졌다가 앙코르 보고  박수를 쳤고 이 분노와 오그라든 손발이 아마도 10주년에 익숙해졌기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다시 돌려봤다가 여전히 오그라들었다가 더 큰 분노를 안고 넣어뒀었다. 아무리 싫어하는 캐릭터라도 캐스팅이 그따위면 분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경험.
그 뒤로 다시 꺼내서 몇 번 돌려봤던 건 포럼에서 다들 칭찬에 칭찬을 하던 제프 니콜슨이 25주년에 나온다길래 뭘로 나온거냐 보느라 그런거였고- 
여튼 감상 올라오는 걸 보고 모처럼 다시 꺼내서 틀었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 화는 안 나고 그냥 안스럽더라. 흑역사가 기록되어서 전세계로 팔려나갔어 어쩌니ㅋㅋㅋㅋ

마리우스라는 캐릭터는 위고선생님은 나름대로 자신을 투영해서 만든 캐릭터인데 읽는 입장에는 뭘로 봐도 욕먹기 딱 좋은 캐릭터다. 로맨스쪽으로 보자면 두 여자 사이에서 한 여자를 이용하고 완전히 희생시켰고-물론 에포닌의 희생이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고 에포닌의 사랑이 파괴적인 사랑이기는 했지만-, 가족드라마 쪽으로 보자면 저런 걸 사위라고 싶은 분노를 불러일으켜-이 답답아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든가 아니면 증거를 찾으라고 신문도 안 보냐 경감님 기사 멀쩡히 실렸는데ㅠㅠ 테나르디에보다 나쁜 머리로  무슨 변호사를 하겠다고ㅠㅠㅠㅠ- 한국 드라마였다면 식당에서 밥도 못 얻어먹었을 캐릭터고, 남자들의 우정쪽으로 보자면 친구들이 다 죽어갔는데 깨어나서는 한다는 말이 할아버지 나 결혼 안 시켜주면 고기 안 먹을거임하고 있는 남자다. 누워서 앓는 동안 바리케이트를 떠올리면서 아파하기는 했지만 완전하게 먼저간 친구들때문에 아팠던 건 아니었고 적어도 친구가 있느냐라고 물었을때 아무리 숨이 차더라도 ABC의 벗들 이름을 다 댔으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텐데. 이건 사상면에서도 연결이 되는 문제인데 마리우스는 민주적 보나파르트주의자라는 입장이라서 공화주의자인 ABC의 벗들과 정말 친구였냐 싶기는 하고, 바리케이트에 참가한 동기도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접겠어-라는 멋진이유가 아니라 코제트 갔어ㅠㅠ다시 못봐ㅠㅠ그럼 죽으러가야지ㅠㅠ였기때문에 앙졸라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건만 이러저러해서 앙졸라스와 함께 바리케이트의 리더 취급을 받다니 위고선생님 주인공 보정 너무 심하셨음싶은 캐릭터.

소설과 달리 뮤지컬의 마리우스는 그나마 좀 괜찮다. 진지하게 세상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코제트에게 반해서 흔들리다가도 결국에는 제일 예쁜 앙졸라스를 선택ABC의 벗들과 나란히 서면서 내 자리는 여기 나는 벗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자발적으로 혁명을 선택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담아 죽은 친구들을 위한 절절한 추모의 노래도 부르고 발장에 대해서도 소설처럼 잔인하게 밀어내는게 아니라 발장의 고백을 듣고 이해하고 발장을 보내주는 걸로 그려진다.

이런 자잘한 변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마리우스였고 CSR, 10주년에서도 모두 마리우스였던 마이클 볼이 워낙 잘해서 뮤지컬 마리우스의 캐릭터가 그나마 밉지는 않은 쪽으로 만들어졌는데 25주년은 다른 의미로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30주년, 35주년, 50주년 기념 공연이 있어도 설마 이것보다 더 심한 마리우스는 나오지 않겠지하는 기대가 생기잖아. 당장 영화만 해도 괜찮겠....괜찮으려나; 사실 다른 건 다 못 해도 상관없으니 One day more랑 Empty chairs at empty tables 두개만 잘 불러주면 되는데 특히 빈의자빈탁자는 못 부르는 걸 보고 있으면 기껏 장인 덕에 살아남아서 그렇게 밖에 못 슬퍼하냐 뒤의 유령들이 목이라도 졸라줬으면  싶게 화가 나는지라.

마리우스말고도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차피 10주년이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나 싶게 잘 된 캐스팅이라 그런거라 치고, 발장이나 자베르는 취향 차이라고 넘길 수 있는 정도라서 구구절절 쓸만큼 불만인 건 아니고...자베르는 할 말이 사실 좀 있는데 정말 이건 근본을 짚어가면 취향차이내지는 해석차이지 심각한 캐붕....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패스

좋은 걸 꼽자면 앙졸라스랑 가브로쉬가 좋았다. 잔망스럽기 그지 없는 가브로쉬가 DYHTPS때 싱긋 웃으면서 부르는거나 얄밉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Little people을 부르는 걸 보고있으면 원작의 얄미운데 애처로운 가브로쉬 생각이 나더라. 그대로 곱게 그 기량에 연륜을 더하면서 잘 성장해주기를 기대해도 되려나. 35주년이나 40주년쯤에 주역으로 올라오는 걸 상상해보게되는 가브로쉬. 
앙졸라스는 10주년 앙졸라스가 나쁜 건 아닌데 싫은 것도 아닌데 25주년 앙졸라스를 보고 있으면 바리케이트로 뛰어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말 비참한 민중의 벗-이라기보다는 높게 서있는 느낌이 나기는 했는데 그건 혁명 리더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인것도 같고, 뮤지컬의 앙졸라스가 가지는 손으로 만져도 타지 않을 수준의 뜨거움이 딱 맞아서 좋았다. 원작의 앙졸라스는 너무 뜨겁고 빛나서 감히 인간의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은 캐릭터인데 뮤지컬은 그래도 많이 관대해지고 인간다워지고 젊은애다워져서. 마리우스를 바라볼 때 복학생 선배가 신입생 보는 정도도 아니고 삼촌이 조카 보는 듯한 느낌은 들었지만 다른 ABC의 벗들도 적당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상관없고 열에 아홉은 낚이는 그랑테르와의 장면은....아마 해들리 프레이저가 이번 시즌 자베르 프린시펄로 올라선 건 그 장면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10주년때는 앙졸라스가 ABC에게 외면당하다시피 했던 DWM랑은 완전 다른 연출이라 나도 보다가 처음으로 으악대체뭘만든거야 급 뿜었던게 그 투샷이었고 25주년 배우중에서 제일 먼저 구글링해본게 해들리 프레이져였으니까. 눈이 예쁘구나 생각했는데 설마 자베르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자베르에 대해서는 젊고 편집증적인 경감님을 연기해서 호불호가 꽤 갈리는것 같은데 어차피 지금 캐스트는 당장 못 보러가기도 하고 굳이 애써 무리해서 보러갈 마음도 안 생겨서 별로 상관은 없다는 기분. 올해 있었던 팬텀오브오페라 25주년에서도 라울역으로 말이 많은 걸 보면 자기 해석을 더하기를 좋아하나보다 싶기도 하고 앙졸라스이자 팬텀으로 두 대작의 25주년에 모두 섰던 라민이랑 케미가 좋은가 싶기도 한데 그럼 라민도 해들리도 좀더 나이 들어서 그때 발장 자베르로 서도 괜찮지 않으려나... 

마리우스에게 관대한 뮤지컬은 그랑테르에게도 엄청나게 관대한데 원작의 그랑테르가 뮤지컬을 본다면 세번은 승천할 수준으로 관대하다. 일단 뮤지컬의 앙졸라스는 그랑테르를 매몰차게 경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한참 심각한 이야기하는데 그랑테르가 마리우스의 연애라는 건수를 하나 잡아서 책상 위에 뛰어올라 놀면서 분위기 흐릴 때도 원작처럼 꺼져버리라고 밀쳐내지는 않고 인내해주고 포기하고 곱게 무시해준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후반에도 혼자 술병 들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따라오는 그랑테르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감싸안고 함께 바리케이트로 데려가는 것도 앙졸라스. 코랭트에서 앙졸라스가 부르면 난 갈텐데 앙졸라스는 끝끝내 날 안 불렀어 불렀으면 갈텐데 날 안 불렀으니 안 갈거야 술주정하던 원작의 그랑테르라면 이미 이 시점에서 성불했을듯.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나서도 단 한 번도 바리케이트로 올라가지 않고 뒤에서 술만 마시면서 웅크리고 있던 그랑테르가 회의주의자의 애조가 섞인 Drink with me를 부를 때도 앙졸라스는 그 기운빠지는 의문을 비난하는 대신 그랑테르와 술을 나눠마시고 위로해준다. 25주년에서 연출된 앙졸라스-그랑테르 투샷이 바로 이 대목. 거기다가 연출에 따라 마지막 전투때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사이에 두고 애잔한 씬이 하나 더해지기도 하니 이쯤이면 허락하겠나?가 없는게 그랑테르로서는 조금도 아쉽지 않을 수준. 이미 두 사람사이는 허락된 사이고 앙졸라스 베프는 콩브페르도 쿠르페락도 아닌 그랑테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 안 할 지경이라 각색할 때 그랑테르가 신내림이라도 해서 소심한 드림물이라도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무튼간에 여전히 앙코르때 네 명의 발장이 부르는BHH에 전율을 느끼고 퀸즈, 콘서트, 바비칸 멤버에 오리지널 멤버가 다 같이 부르는 ODM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25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오리지널멤버들이 아직 정정하셔서 앙코르에서 노래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는 걸지도. 결국 퀸즈, 바비칸 멤버가 올라와서 함께하는 피날레부터 모든 멤버가 퇴장하는 엔딩까지만 세 번 더 돌려봤다. 그리고 전에는 미처 못 봤는데 영화화 계획도 아예 엔딩 스크롤 올라갈때 넣어두셨더만.

이러니저러니해도 30주년 35주년 50주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을 알게된 건 즐거운 일이다. 100주년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못 볼테니까. 언젠가는 전세계의 발장과 자베르가 모여서 부르는 컨프롱 같은 걸 볼 수도 있으려나...생각하니 무서우면서도 뿜기기는하는구나. 그럼 전세계의 자베르가 모여서 부르는 Javert's suicide....아냐 이건 더 뿜겨서 안 되겠다. 낙화암에서 떨어지는 삼천궁녀도 아니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