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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 고백타임 본문

Les Miserables

자베르 고백타임

neige 2011. 10. 3. 19:46

원작을 읽는 사람은 자베르가 등장하자마자 작가의 설명을 통해 이 완고하고 인정없고 결벽스러운 경찰이 대대로 내려온 경찰 집안에서 자라온 세상물정 모르는 올곧은 도련님 내지는 범죄자에게 누구를 잃어서 범죄에 대한 증오를 품은 복수의 화신같은 것과는 거리가 천년만년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이 버전에는 안 나왔던 것 같은 게 원작을 읽자마자 형무소 안에서 카드점을 치는 여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 여자의 남편은 감옥의 죄수였다는 설명을 보고 아 그래서 이렇게 된 거구나라고 새롭게 깨달아서 처음 뵙네요라고 인사해야할 느낌이더라. 아마도 어린이판에서는 그런 배경을 설명해줘봤자 그래서 나쁜놈이라는거냐 아닌거냐라는 혼란을 줄 수 있어서 생략한 것 같지만 완역판을 읽고서야 알았던 난 충격이었다. 배경을 알고 보는 거랑 모르고 보는 거랑 캐릭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잖아.
 
발장이 19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상에 나와서 받았던 냉대를 자베르는 이제 갓 피어자라나는 10대에 이미 받지 않았을까. 철들기도 전에 자신의 미래에 쫙 빨간줄로 한계가 그어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때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갈 희망을 버렸을"때의 충격이 얼마나 크고 가혹했을까. 그렇다면 부모처럼 사회를 물어뜯는 이리가 되기라도 했으면 오히려 쉬웠을 인생인데 불행히도 "편협스럽고 고지식하고 결백한 그의 어떤 본성"때문에 동족을 물어죽이는 개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를 생각해보면 감히 연민까지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왜 범죄자를 혐오하고 왜 발장을 못 믿고 왜 그렇게 죽어라 잡으려고 드느냐는 게 얼마쯤은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그런 사실을 독자만 알고 발장은 최후까지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발장이 자베르의 배경과 성장과정을 알았더라면 두 사람의 관계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일거다. 왜냐하면 발장이 주교님을 만나기 이전에 알았다면 발장은 동족 주제에, 어쩌면 자기보다 더 천하게 태어난 주제에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자베르를 더 증오했을거고, 주교님과 만난 이후의 발장이 알았다면 아무리 발장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주던 친절함과는 다른 진심어린 연민을 가지고 따스함으로 자베르를 대한다한들 그 무렵에는 이미 완성형인 자베르가 뭔가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껏 발장이 인류애적인 관대함으로 살려보낸 결과를 보면... 그래서 위고 선생님은 끝끝내 발장은 모르게 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적어도 알았으면 자베르의 사망기사를 읽고 그런 감상을 갖지는 않았겠지 싶은게 한 가닥 미련. 무정한 발장ㅠㅠㅠㅠㅠㅠ

아무튼 2차 매체들에서는 발장의 대립역으로서 자베르에게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작가의 설명을 대신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자베르의 고백을 조금씩 다른 타이밍에 다른 느낌으로 그리고있다. 

먼저 뮤지컬
팡틴의 임종을 지키는 발장을 자베르가 체포하러오는 The Confrontation에 자베르의 고백타임이 들어가있다.
발장이 You know nothing of the world! 라고 먼저 공격에 들어간다. 발장이 자베르를 얼마나 퓨어ㅋ하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대사중의 하나다. 이 대사로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게 아냐 발장ㅠㅠ 자베르도 세상에 대해서 알기는 알아ㅠㅠ그냥 미리엘 주교님을 못 만나서 그래ㅠㅠㅠㅠ하는 안타까움을,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서는 그래그래 자베르는 세상에 대해서 너무 몰라!!하는 공감을 끌어내놓고서 컨프롱의 마지막에 가서야 자베르는 잡아야 할 범죄자가 된 과거의 상관에게 외친다. 

You know nothing of Javert! 
I was born inside a jail
I was born with scum like you
I am from the gutter too!

구구한 설명없이 나는 거기서 빠져나왔다는 한 마디로 앞에서 자신이 발장에게 말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죄로부터 태어나지만 자신의 길에 대해 스스로 선택을 해야한다는 말에 무게를 쾅 실어주는 부분. 여기서 발장이 깨달음을 얻어서 자베르와 잘 해봤으면 좋았겠지만...이쯤 오면 발장은 이미 자베르의 말은 안 듣고 있다ㅇ<-< 남이 인생에 대한 중대한 고백을 하고 있는데 좀 들으란 말이에요ㅠㅠ 난 못 할 게 없어 널 죽이고서라도 내가 할 일을 할거다라면서 의자를 한 방에 박살내고 그걸로 자베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 이쯤오면 새삼 이해고 화해고 그딴 거 없다. 주교님과의 만남 이후 내내 세인트 발장상태인 발장이 가장 범죄자다워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만큼 발장을 구석으로 몰 수 있는 사람이 자베르뿐이라는 건 흥미롭지만 아무튼 상호 이해 그런거 없음.
 
비록 발장이 자베르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훈훈함은 없지만 컨프롱의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움과 뿜김과 형언할 수 없는 2차적 감정이 솟아나오는 부분이다. 얼마나 좋은가하면 원작에서는 쇠침대에서 끊어낸 쇠막대기였는데 나무 의자라니 뮤지컬 발장은 약하네ㅋ했던 걸 바로 사과하고 연출자에게 큰절하고 싶어지는 수준. 그래 이걸 영화에서 휴 잭맨이랑 러셀 크로가 찍는단 말이지. 블록버스터 액션 뮤지컬이 기대된다ㅋㅋㅋㅋㅠㅠㅠㅠ노래를 할지 대사로 처리할지 그냥 몸으로 대화할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설마 울버린이랑 막시무스랑 팡틴의 침대를 사이에 놓고 피튀기는 싸움같은 거 할 리가...있을 줄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

뮤지컬에서 자베르의 고백이 발장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의 여부는 아직 잘 모르겠다. Robbery에서 헉자베르다ㅌㅌㅌㅌ 사라지는 발장이나 루 플르메 습격 건에서 자베르가 온 게 틀림없어!!!!하는 발장은 거의 히스테릭한 수준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고, 자베르를 놓아줄 때의 발장도 원작대로 일방적인 은혜와 자비와 사랑일뿐 자베르의 출신을 알았기때문에 뭔가 달라지는 부분은 없다. 그 경계와 조심성과 의심과 도피와 용서는 모두 원작의 범주안에 있는거라서 발장-자베르의 관계에 추가적인 변화는 없는듯.
 
 
다음으로는 만화 소녀 코제트 
비록 결말이 원작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실 이건 한번 제대로 다둘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의외의 부분에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데-마리우스의 오오 황제폐하 오오나 테나르디에의 무덤 연설이라거나-여기서는 자베르의 고백타임을 바리케이트에 배치해두고 있다. 

발장이 자베르를 살려보내주는 부분에서 제작진은 자베르에게 공들여 시간을 주어가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백을 하게 하는데 생각해보면 여기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들었어... 친절하게 자베르의 출신을 원작대로 밝히면서 크리에잇을 좀 더 얹어서 어린 자베르가 홀로 쓸쓸하고 추워보이는 길을 걷는 회상씬 속에서 자신의 부모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지만 결국 다시 죄를 지어서 자베르 자신의 손으로 체포했다는 개인사를 통해 어떻게 자베르가 인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발장에게도 알려준다. 

어린 자베르의 얼굴이 좀 보고 싶었으나 끝끝내 거기까지는 보여주지 않는 제작진의 인색함에 약간의 원망을 보내고나서 생각해보면 이런 친절한 크리에잇은 있을 법 하면서 원작에서 보고 싶었던 2차를 보는 조심스러운 만족감까지도 주는 건 사실이다. 원작의 부족한 설명을 더듬어보면 일단 아버지는 종신형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감옥에 있다치고 그럼 대체 어머니는 어떻게하고 자베르는 경찰로서 살아왔는가가 궁금해진다. 마리우스가 외조부와 의절한 것처럼 이제 안녕 당신들 내 부모 아님하고 가출해서 나온다고 꼬리표에 가까운 가족관계가 정리되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발목을 끝까지 잡기는 잡았을 것 같은데 위고 선생님은 거기에는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 격하고 상세하고 친절한 고백은 보는 이의 이해를 도와주면서 동시에 사람은 변하느냐/아니냐라는 이 만화의 주제를 두고 발장과 논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고백과 논쟁이 그날 밤 세느강에 일출이 유달리 빨라지는 기적을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그때 해만 안 떠올랐어도......ㅇ<-< 쓸쓸하게 월급을 헐어 모자를 새로 사면서 1832년 6월의 불필요한 지출 같은 거 적어넣는 경위님같은 거 생각하면 몹시 우울하다.
 

57년 레미제라블
장 가뱅이 장 발장역을 맡은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자베르의 아버지를 죄수가 아니라 툴롱 교도소장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영화 초반, 아빠가 일하는 걸 구경왔던 꼬꼬마 자베르가 발장의 괴력을 목격하는 것으로 진행이 되는데 재미있는 변형이다. 어린 자베르는 귀여웠지...하지만 그 결과 자베르 역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어서 자베르는 발장이 당신 정말 불쌍하군하고 내뱉은 말에 상처를 받아 자살한다-는 건 반은 농담이고 여기의 자베르는 사실 진짜 꿈은 위그든씨의 사탕가게같은 거 차리고 알콩달콩 사는 거였는데 아버지 때문에 강압적으로 경찰이 된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자살씬에서 이런 식으로 불쌍하게 그려지는 자베르는 처음이었다; 지루할만큼 원작을 재현해주면서 왜 하필 자베르를 이런 식으로 바꾼걸까 궁금해진다.


78년 레미제라블
안소니 퍼킨스가 보기에는 아름다우나 허당의 절정을 달리는 자베르로 나왔던 이 영화에서는 일단 자베르의 고백타임이 없다. 덕분에 외양으로 보나 태도로 보나 여기의 자베르는 엄격한 환경에서 곱게 배양된 툴롱의 검은백합 올곧은 원칙주의자 경찰로 보이기 좋다. 아마 승진도 능력이 아니라 미모덕분이었던 것 같고. 사실 원작에서도 자베르는 완벽한 경찰이라기에는 허점이 많지만 이 영화에서 자베르가 발장을 놓치는 장면들이나 자기 정체를 들키는 장면을 보면 정말 허술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발장과는 태생부터 달라 윗세계에서 내려다보다 전락하는 이미지. 

 
98년 레미제라블
자베르의 성격이 일관성ㅋ있게 재창조되다보니 여기서는 자베르의 고백도 다른 목적으로 쓰인다. 시장의 뒤를 캐던 자베르는 먼저 자기 패를 내보인다 자신의 아버지는 도둑, 어머니는 창녀라는 것을 이미 경찰에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은 거기에 거리낌이 없다고 그러니 인구조사를 해서 전과자같은 깨끗하지 못한 출신들을 가려내고 관리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 맥락적으로 보면 과거가 모호한 시장에게 난 이렇게 털어도 나올 것 없는데 넌 왜 안 털어보여? 뭐라도 들키면 곤란할게 있나?하는 공격이었는데 리암 니슨 발장은 자베르의 공격을 유연하게 넘기며 자베르의 출장선물로 자신의 완벽한 신분증명서를 건네준다. 이해고 철학적 논쟁이고 그런거 어차피 이 영화에서는 기대 안 하는게 좋다. 그냥 자베르는 같은 성을 가진 다른 퍼스트네임의 경찰이고 발장도 장발장이 아니라 쟌발장 그런 거고........일단 MSM도 MSM이 아니라 V로 시작하는 다른 동네잖아? 이 영화의 정체는 그냥 페러랠 비슷한 거였다. 그래, 그랬던 것이다..............ㅠㅠ

 
00년 레미제라블
일단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이건 좀 더 추가 필요 언제 다시 보고 리뷰하나.......
일단 고르보 하우스 습격 전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게 원작하고 미묘하게 다르다. 사기꾼에게 걸려서 아버지가 재산을 잃고 감옥에 가게 되었고-이러면 아마도 빚때문일듯? 당시에는채무자가 수감되는 일은 흔했으니-어린 자베르도 그래서 같이 감옥에 들어가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건데 이러면 대체 여기서의 경위님의 정체성은 뭐가 되는 거지 싶어진다. 그런 개인적인 원한으로 범죄자가 싫어진 것 치고는 딱히 00 자베르가 더 극악스럽지도 않고 말이다. 오히려 팡틴에게 보인 태도는 시니컬하기는 해도 잔인한 줄은 모르겠거든. 이건 98년 자베르랑 비교해보게 되어서 그런가.

하지만 고백은 없었는데도 적어도 여기의 발장은 자베르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보인다. 이건 BBC 라디오 드라마를 제외하면 현재까지 본 것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데 그렇다고 그 사람이 죽다니 좀더 친하게 지낼걸ㅠㅠ하는 애도는 아니다. 자베르의 추격이 사라지면서 전과자로서의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보니 오히려 양심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져서 마리우스에게 자기 과거를 고백하면서 차라리 자베르가 죽지 않았다면...!하는 것. 자베르가 사라지는 걸로 발장은 마지막 남은 시련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짜 시련이 닥친 상태라고 해야 하나. 자베르가 추격하고 압박해올때의 발장은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법앞에 무고한 피해자로서 설 수 있는데 자베르의 죽음으로 그 추격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부터는 신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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