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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Carlo

Do we fight for the right to a night at the opera now?

neige 2015. 4. 29. 00:49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두고 그랑테르가 오페라보다 재미있다고 낄낄거리며 분위기를 흐리자 앙졸라스가 정신 차리라고 하는 이 말, 라센에서는 오페라처럼 살 건가?로 번역되어서 어...좀...운율이 날아간 건 둘째치고 의미가...했는데 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이 한 줄이 이제는 신경이 쓰여서 앙졸라스가 말하는 오페라, 그랑테르가 말하는 오페라가 뭔지 궁금해지지 뭔가.


여기서 마리우스는 너도 그녀를 봤으면 내 맘 알 걸?하고 반박하다가 결국 격파당하는데 실은 그런 사랑에 대한 공감을 구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앙졸라스에게 반격할 수 있는 꼬투리가 있었으니 앙졸라스가 존경하는 루소도 오페라 대본을 쓰고 직접 작곡도 했다는 것. 그것도 그냥 썼다 정도가 아니라 대히트. 뭐야 존잘인 줄은 알았지만, 작곡도 했었나 새삼 충격. 


Le Devin du Village, 마을의 예언자라는 이 작품은 한가로운 전원 마을에서 펼쳐지는 목동의 사랑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 오페라의 한 갈래인 오페라 코미크의 시초라는 음악사적 의의가 있다고 한다. 오페라 코미크는 코믹한 오페라라는 뜻이 아니라 레치타티보 대신 일반적인 대사가 들어가 있는게 특징인 장르. 갈래로 따지면 마을의 예언자는 카르멘의 까마득한 조상격이다. 1752년 퐁텐블로 궁에서 이 오페라의 초연을 보고 난 루이 15세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루소에게 금일봉을 하사하고 훗날의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손과 마리 앙투와네트의 결혼식에서도 이 작품을 상연했을 정도. 왕과 귀족들은 물론 부르주아들의 사랑까지 한몸에 받으면서 루소는 이 작품 덕에 돈도 벌고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루소를 먹여 살린 오페란데 오페라가 뭐 어때서-라고 반박할 만해도 이건 일시적인 타격만 줄 뿐이지 크리티컬은 못 되는 게 여기 따라붙은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루이 15세는 루소의 오페라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직접 얼굴도 보고 좋은 작품 써줬다고 종신연금도 주려고 궁으로 불렀는데 루소가 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루소 자신의 변명은 이렇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에게 씌워질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리, 자유, 용기여!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자주성과 겸허한 양심을 논할 수 있겠는가? 연금을 받으면 나는 아첨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앙졸라스가 눈에 불을 번쩍이면서 비록 루소는 잠깐의 즐거움을 위한 일에 힘을 낭비했지만, 군주가 내민 먹이에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고 루소 쉴드 칠만하지 않나. 루소 자신이 이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산 것은 물론이고 파리 사교계에서 고립되다시피 했던 결과는 루소에게는 시련이었지만 앙졸라스에게는 빠심을 더 빵빵하게 채워줄 좋은 떡밥이었겠지ㅋㅋ 하이네를 인용해가면서 "루소는 왕 앞에 나갈 수 없었다. 그의 본성이 그를 바른 길로 이끌었다. 그것은 곧 타협할 줄 모르는 정열이다."하는 것도 좋겠지만 하이네가 언제 이런 걸 썼는지 애매하니 7월 혁명에 감동 받아서 1830년대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 시인이 어디서든 앙졸라스와 직접 만나서 이 말을 하면서 둘이 루소 빠심을 불태우는 걸 상상하면 아....좋다.....


아무리 당대에 히트했다고는 해도 바로크 음악; 루소의 오페라는 루소의 사상과는 달리 이제는 멀고 먼 존재가 아닐까 싶지만, 또 뜻밖에 가까이 있었더라. 마을의 예언자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선율은 이 부분이다.




  



처음 들었을 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했는데 어디서 들어본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그래서 좀 더 찾아봤더니 이 부분의 선율을 피아노로 편곡한 곡이 있고 이 멜로디는 일본에서 동요로 사랑받았다고.   





 


이걸 듣고도 나는 어 진짜 들어본 건데??? 생각이 안 나ㅠㅠㅠㅠ 일본에서도 동요로 인기 있었으면 우리나라에도 동요로 들어왔을 확률이 높은데 뭐지 동요 들은 지가 너무 오래라 알 수가 없어서 더 찾았더니 이런 게 나왔다.






 

이게 루소 오페라에서 나왔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 나만 몰랐나 싶지만, 신기한 건 신기한 거라ㅋㅋㅋㅋㅋㅋ 루소가 유아교육에 기여한 건 에밀만이 아니었구나ㅋㅋㅋ 요새도 어린이집에서 이거 부르려나ㅋㅋㅋ 클립 설명에도 있지만 이 노래는 주먹쥐고- 가사가 붙기 전에 창가로도 독립군가로도 불렸는데 이 곡에 혈성대가라는 제목으로 독립군가 가사를 붙인 건 도산 안창호. 저 깜찍한 율동이 따라붙는 동요가 북간도에서 군가로 불렸다니 상상이 안 가는데 혈성대가의 연주는 아쉽게도 못 찾았고 가사는 이렇다.

 


1. 신대한의 애국청년 끓는 피가 뜨거워 
일심으로 분발하여 혈성대를 조직코 
조상나라 붙들기로 굳게 맹약하였네


2. 두려마라 부모국아 원수들이 많으되 
담력있는 용맹있는 혈성대의 청년들 
부모국을 지키려고 굳게 파수섰고나


3. 혈성대의 조국정신 뼈에 깊이 잠기여 
산은 능히 뽑더라도 우리 정신 못뽑아 
장할세라 장할세라 혈성대의 그 정신


4. 혈성대의 충의 절개 굳세고도 굳세도다 
쇠는 능히 굽혀도 그 정신을 못굽혀 
장할세라 장할세라 혈성대의 그 절개


5. 번개같이 활동하고 원수들이 맹렬하되 
혈성대의 장한 기개 누가 능히 막을까 
장할세라 장할세라 혈성대의 그 기개 

6. 대포소리 부딪히며 칼이 앞을 막으되 
모험하는 혈성대는 돌격성만 부르네 
장할세라 장할세라 혈성대의 맹진력


7. 혈성대의 끓는 피가 하수같이 흐르네 
나라 영광 빛네지고 나라 위엄 떨치네 
혈성대를 혈성대를 항상 노래하리라 



도산이 이 선율에 가사를 붙인 이유는 루소가 작곡한 선율이라서가 아니라 당시에 인기 있던 창가여서 따라 부르기 쉽다는 이유였을 테고, 루소도 작곡하면서 언젠가 자신이 쓴 오페라의 선율이 먼 나라의 독립군가로 쓰일 걸 생각하지는 못 했겠지만, 꽤 흥미로운 변화지 싶다. 


그러나 이런 변용은 레미즈 기준으로 먼 훗날의 이야기, 앙졸라스의 저 준엄한 나무람에 괜히 루소 오페라 이야기 꺼내서 심연의 눈초리를 받기보다는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마음 놓고 문화생활을 즐길 하룻밤을 위한 권리란 싸워서 지킬만한 권리가 맞다는 걸 어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저녁 이후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고, 보러 갈만한 작품이 올라올 수 있게끔 뒷받침해줄 경제 수준과 노동 환경, 바리케이드를 쌓지 않아도 될 정치적 안정이 있어야 가능한 하룻밤이니까. 이런 말을 앙졸라스 앞에서 할 용기는 없으니까 그냥 어린 아미들이 주먹 쥐고 손뼉 치고 하면서 깜찍하게 노래에 맞춰서 율동 하는 거나 상상해야지ㅋ 존잘님 작곡이라 더 열심히 율동 하는 어린 앙졸라스 같은 거 귀엽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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