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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Carlo/TH

어떤 브링 힘 홈

neige 2014. 10. 6. 01:26


원래대로라면 잘츠부르크 돈카를로 4막 1장을 올려야 하는데 이쯤에서 고백을 하자면 4막 1장은 초벌을 써놓은 게 없음;


사실 그동안의 돈 카를로 리뷰는 초벌을 진작 써놓고 거기에 캡쳐나 움짤을 더하고 너무 정줄을 놓은 감상을 좀 덜어내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올렸는데 4막 1장은 그런 걸 해놓지를 않았더라. 달랑 희곡에서 펠리페 대사 하나 옮겨놓은게 전부더라고;; 왜 안 해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건너뛰고 2장으로 가버리기에는 4막 1장은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대목이라서. 최종보스도 드디어 등장해주시는데다가 펠리페의 아픈 생살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이 부분이 있어야 4막 2장의 라크리모사가 의미가 살아난다. 하지만 이 시간에 4막1장을 다시 돌려보고 쓰는 건 너무 막막해서 다음으로 미루고 잠깐 쉬어가는 딴 얘기. 


덕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가끔 나오는 이야기가 덕질 패턴에 대한 건데 한 장르를 얼마나 파는 편이냐, 장르에서 장르로 옮겨갈때 어떻게 옮겨가느냐, 본인이 무슨덕이다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뭐냐, 과연 덕질에 최애캐는 필수적이냐, 진정한 의미의 리버시블이란 가능한 일인가 등등 덕후 말고는 아무도 안 궁금해 할 이야기들인데 보고 있으면 음 난 이렇지-생각하게 되는 거라. 내 경우는 일단 3년은 파야 그 장르 팠다고 하는 편이고, 어지간해서는 한 장르를 완전히 접지 않고 다른 거 파다가 또 떡밥 나오면 그 장르 파고 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나를 딱 정리하지 않고 떡밥 주어지는 대로 파면서도 이 덕질과 저 덕질이 겹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게 하나는 1800년 전 중국, 하나는 300년 뒤 우주, 하나는 180년 전 프랑스, 이런 식이라 나오는 떡밥들이 겹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연결된 떡밥이 나온다면 오히려 괴작이 될 거고. 스타 트렉 DS9에서 자베르에 대한 언급이 나오거나 VOY에서 돈 카를로의 우정의 이중창이 잠깐 등장하거나 하기는 했는데 본격적으로 다룬 건 아니었다. 물론 스타 트렉이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졌다면 삼국지를 몇번씩 다뤘겠지만 미제방송이다보니 안타깝게도 이들이 삼국지의 아름다움을 몰라서. 


그런데 돈 카를로 파기 시작하면서 로드리고에 낚여서 햄슨 쪽을 파보다가 뜻밖의 영상을 만났으니, 이 분이 Bring Him Home을 부르신 적이 있더라. 브링 힘 홈 이야기면서 카테고리가 돈 카를로인 건 그래서다.


뮤지컬과 성악의 인적교환이야 별스러운 일은 아니고 햄슨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뮤지컬 노래를 부른 앨범들이 있고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인연으로 번스타인 뮤지컬 쪽에서도 활동을 하고 앨범을 낸 걸 알기는 알고 듣기도 했는데 오바마가 아버지 부시를 초청했던 만찬에서 브링 힘 홈 부른게 있다고 유툽이 너 요새 햄슨 파더라? 이것도 볼래?하고 띄워주길래 그럼 어디 볼까...하고 열었다.


게시자는 방송국 공식채널로 통렬한 선곡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자리가 국방장관까지 동석해있었고 당시 아프간 전쟁이 한창이었으니 햄슨이 코멘트 한 것처럼 군인들을 위한 노래, 아버지의 노래라는 의미에서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노래는 결국 이야기라고 본인이 자주 말하던 바에도 부합했고.








영상을 보고 있자니 심각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 분 정치적 스탠스가 민주당인가? 그래서 부시가 너무너무 싫었나? 아니면 공화당인가? 그래서 오바마가 정말정말 싫었나? 이렇게까지 철저한 반전주의자였나? 클린턴 때는 안 이랬는데 몇년 새 무정부주의자라도 된건가?  그래서 지금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정치적 저항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니면 그냥 국적이랑 별개로 지금 집은 스위스였나 오스트리아였나 그러니까 미국 오는 게 귀찮아서 다시는 부르지 말라, 날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성악가는 무대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전하는 거라는 말씀을 하신 분이니 영혼 없는 브링 힘 홈이라고는 못 하겠고 영혼이 있다치면 이 영혼은 굶주린 조카들을 보다못해 빵 하나 훔쳤다가 19년의 감옥살이라는 비참함에 빠졌던 남자의 영혼이 아니다. 


이 발장은 어릴 때 가난에 시달리면서 진작에 가지치기 일꾼 따위는 전망이 없다 깨닫고 다른 길을 찾아서 안정된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서 조카들 학교 다 잘 보내고 굶주림 따위 모르게 잘 길렀을거다. 이 발장의 조카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각자 쁘띠부르주아정도는 됐겠지. 그러니 이런 사람이 뭔가를 훔친다면 그건 빵 한덩이 같은 시시한게 아니라 다른 것, 작게는 권력, 크게는 인간의 영혼 정도는 되어야 할 거다. 레미즈에서 굳이 배역을 찾아주자면 그건 경찰청 수뇌부의 더 위쪽, 복고왕정의 궁정 어딘가에 있는 사람, 왕정이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고 제정으로 바뀐다고 해도 잘 살아남을 그런 사람. 하우스 오브 카드를 오페라로 만들면 프랭크 역은 햄슨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마들렌으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다 못해 작은 도시의 시장감으로는 넘친다는 느낌인 이 발장이 과연 샹마티외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가 쌓아온 것과 지켜야할 것들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릴까? 우직하고 정직하게 자베르에게 팡틴의 딸을 구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할까? 자베르는 이 발장과 감히 컨프롱할 기회나 있을까? 아니다. 이 발장은 포슐르방 노인을 구하기 위해 마차를 들어올리는 것을 피하지는 않겠지만 그 선행이 자신의 과거를 건드리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거다. 샹마티외가 뒤늦게 발견된 사법상의 헛점때문에 매끄럽고 빠르게 무죄로 풀려났을때 쯤엔 자베르는 법이 허락하는 최고한도의 승진명령서를 받아들고 프랑스령 식민지 어딘가로 가는 배에 올라있을 거다. 그리고 그 뒤로 자베르는 살아서 다시는 프랑스 본토를 밟지 못하겠지. 덕분에 법과 정의의 모순이라는 무서운 깨달음 없이 만족스러운 경찰 생활을 마치고 은퇴해서 텃밭이라도 가꾸면서 평안하게 천수를 다 누릴 거다. 당연히 세느강 물맛 볼 일도 없을 거고. 조용하고 말끔하게 과거를 정리한 마들렌은 그래도 꿀보직으로 골라서 보냈으니 자베르가 그 먼 곳에서 잘 지내길 바라면서 은촛대 앞에서 올리는 기도로 양심의 가책도 정리하겠지.   


이런 발장이라면 딸이 사랑하는 청년이 바리케이드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본인이 직접 뛰어들지도 않을거다. 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 더 나은 방법을 알기 때문에. 저녁식사 자리에 지스케를 불러서 마리우스 퐁메르시라는 청년이 있으니 바리케이드에서 빼내오라고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을 하겠지. 그것도 본인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지스케는 서 있는 상태일걸. 지스케가 곱게 마리우스 구해다 바치면 딸 고생하지 말라고 사위놈에게 허울뿐인 남작 자리 말고 진짜 작위라도 하나 안겨주면서 앞날 걱정 없이 3대가 잘 먹고 잘 살고도 남을 합법적인 재산에다가 프랑스의 혼란에도 영향받지 않을 국외재산까지 살뜰하게 마련해서 물려주는 다정한 아빠는 맞겠지만 자신의 과거와 양심에 짓눌린 나머지 딸의 행복에 방해가 될까봐 쓸쓸한 노년을 택하지는 않을거다. 딸의 결혼식날 밤 딸이 어릴때 입던 작은 검정 드레스를 안고 비통한 울음이야 울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딸바보라서 그런 거고. 대체 이 발장의 어디에 비참함이 감히 침범할 수 있단 말인가.

콤발장은 브링 힘 홈을 부를 무렵에는 후광만 없다 뿐이지 세인트 발장이었지만 천상에서 갓 내려온 존재가 아니라 인생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겪은 느낌이 났단 말이지. 애초에 브링 힘 홈은 그런 노래잖아. 그 긴 세월을 다 겪고 이제야 겨우 행복을 찾은 발장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코제트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려도 좋으니 그 애가 사랑하는 이 청년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노래. 툴롱에서 MsurM, 파리로 이어지는 발장의 고달픈 인생을 봤고 그런 인생에서 코제트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감동이 오는 것. 


내 발장은 콤발장이지만 콤발장뿐만 아니라 좋았던 발장들한테서는 다 그런 절박함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바리케이드 부숴서라도 마리우스를 구해올 것 같은 라민발장도, 너무 젊고 어리지만 그래도 애틋함은 그대로였던 JN발장도, 날 죽여 청년을 집으로 보내달라던 정발장도 김발장도, 그밖에 다른 발장도 다 운명에 시달리면서도 사랑하는 딸의 행복을 위해 자기를 전부 내어주는 희생 이외의 다른 우회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브링힘홈에서 마음이 아픈 건데 햄슨의 브링 힘 홈에는 그런 미련함과 안타까움이 없다. 젊은 시절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와 건더기도 별로 없는 묽은 스튜를 떠먹고 있으면 누이가 손을 그릇에 들이밀고 그나마 있는 건더기를 건져내서는 조카들의 입에 밀어넣는 그 비참함에 항의도 원망도 없이 그저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묵묵히 먹기만 하던 그 마음 아리는 미련함이 요만큼도 없이 너무도 영리하고 너무도 유능해서 운명의 장난 따위로는 흔들 수 없는 사람이 보일 뿐.


아니 도대체 왜 브링힘홈을 이렇게 부른 걸까.


이 분이 후작 백작 황제 총독 이런 역할만 해서 가난하고 비참한 역할을 못 하냐하면 당연히 그런 것도 아닌 게 올해 3월에 메트에서 보이첵은 멀쩡하게 했더랬다. 가난하기 때문에 조롱받다가 결국 살인자가 되고마는 보이첵에 과연 햄슨이 어울리냐로 오픈 전부터도 말이 나오기는 했다. 기관지염을 이유로 1, 2회차를 캔슬한 덕분에 1회차에는 '마침' 콘서트하러 와 있다가 '마침' 드레스 리허설까지 다 보고 '마침' 스케줄도 맞았던 독일 보이첵을 모셔다가 올리고 2회차는 그 보이첵도 바빴는지 원래 있던 얼터인지 언더인지가 올라오고 3회 차에야 햄슨 본인이 무대에 올랐는데 보이첵은 발장이 주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걸었을 인생을 사는 인물이니까 브링힘홈을 보고 느낀 감상대로라면 거부감이 들어야 하는 것이 맞을거다. 그런데 또 보이첵은 제대로 비참했단 말이야. 평도 비록 더 좋은 기회가 있었다면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을 바탕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참한 보이첵을 보여줬다고 했고. 


못 믿겠으면 들어보자. 줄곧 무기력하게 예, 대위님-만 반복하다가 대위가 보이첵의 아이가 정식결혼 없이 낳은 아이라는 걸 비난하면서 사람이면 도덕을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조롱하자 대꾸하는 부분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오페라가 듣기 편안하지는 않다는 걸 미리 양해를 구하고 더불어 티스토리 플레이어가 자동 무한 반복인점도 양해를...아니 왜 설정이 없어;;; 모바일에서는 반복 안 되는 듯.





Wir arme Leut - Sehn Sie, Herr Hauptmann: Geld, Geld! 

Wer kein Geld hat - 

Da setz einmal eines seinesgleichen auf die Moral in der Welt! 

Man hat auch sein Fleisch und Blut. 

Ja,wenn ich ein Herr wär und hätt ein Hut und eine Uhr und eine

Anglaise und könnt' vornehm rede, ich wollt' schon

tugendhaft sein. 

Es muß was Schönes sein um die Tugend,Herr Hauptmann. 

Aber ich bin ein armer Kerl! 

Unsereins ist doch einmal unselig in der und der andern Welt. 

Ich glaub, wenn wir in Himmel kämen, so müßten wir donnern helfen.


우리네 같이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대장님, 모두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없는 놈은 도덕이고 뭐고 

자식새끼도 그렇게 밖에 생산하지 못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놈들도 육체가 있고 피가 흐릅니다.

제가 돈 있는 신사였다면, 중절모도 쓰고,

시계도 차고, 예복도 입고, 점잖게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저도 도덕을 지키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전 보시다시피 가난뱅이입니다. 

우리 같은 인간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천덕꾸러기 밖에 더 되겠습니까! 

아마 우리 같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 가면 

고작 천둥 때리는 일 따위의 저주받은 일이나 돕게 되겠죠.


멀쩡하게 비참하지 않음? 라디오중계라서 소리만 들리지만 환각을 보고, 사실혼 관계인 마리를 의심하고 그러다 결국 자기 손으로 마리를 죽이게 되는 2막 3막까지 가면서 사람이 무너지는 게 제대로 들려서 뭐 보이첵으로도 괜찮네, 목 상태도 꺼끌꺼끌하니 뒤로가면 힘들어 하시는게 완두콩 밖에 못 먹은 사람 소리같네 하고 들었는데...그래서 더 납득이 안 되는 거다. 이런 보이첵을 할 수 있는 분이 내 브링 힘 홈한테는 왜 그랬어요?


영상과 함께 올라온 설명에는 부시의 요청으로 부른 노래라고 되어있긴 한데 부시가 브링 힘 홈 좀 불러달라고 한건지 아니면 그냥 한 곡 불러달라고 했는데 햄슨이 브링 힘 홈을 부른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자라면 부시가 잘못했네, 그러게 왜 남의 장르 노래를 불러달라고 그랬어요라고 해결이 되지-는 않는게 아무리 시켜서 불러도 그렇지 왜? 거기다 햄슨이 굳이 곡 설명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후자같단 말이지. 


그동안의 레미즈 덕질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콤발장처럼 부를 수 있는 발장은 콤발장뿐이라는 것이라서 사실 햄슨의 브링 힘 홈에서 콤발장같은 소리를 기대하고 보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알피 보의 발장을 봤기 때문에 성악 발성으로 둥글어진 소리겠거니 하면서도 일말의 즐거운 기대를 가졌던 건 이 분이 '보여줄' 브링 힘 홈이 어쨌든 발장의 감정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는데...어떻게 이럴 수가. 


오페라에서뿐만 아니라 콘서트를 해도 캐릭터랑 감정을 대충 잡고 가는 걸 못 봤는데, 마스터클래스에서건 인터뷰에서건 이 노래가 어떤 사람에게서 어떤 감정에서 나온건지 왜 부르는 건지 먼저 알고 가야한다고 테크닉은 그 다음 일이라고 누누히 강조를 하는 분이 도대체 무슨 발장이 이래. 발장의 캐해석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냥 여기 발장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왜? 네? 왜? 어째서 이러셨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나 다를까 댓글이 와글와글한데 실드는 눈물 겨우나 동조하기 힘겹고 그렇다고 까글에 마음 편하게 편승할 수도 없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 음향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실드는 사실 소리 자체는 그런대로 멀쩡하니 실드가 못 된다고 본다. 원곡의 고음 그대로 가지는 않았지만 편곡 안 한다는 원칙이야 실제 무대에나 올릴때나 그런거고 바리톤 음역에 맞게 무난했으니 소리가 문제가 아니다. 소리가 문제였으면 내가 정발장이 포은에서 삑 낼때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뭐냐고 깠겠지. 나한테 브링힘홈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님. 삑은 나도 됨. 하지만 감정이 이런건 용납할 수 없음 ( mm  


알피 보가 낫다는 소리에는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

그동안 대놓고 밝힌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난 사실 알피 보 발장을 별로 안 좋아한다. 싫은 것까지는 아니고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사실 사소하다. 브링 힘 홈 부르고 박수 계속 터져나왔을때 뿌듯하게 웃어서. 물론 박수를 받으면 기쁘겠지만 아무리 콘서트 형식이라도 이건 레미즈 공연인데 발장이 브링 힘 홈에서 그렇게 웃으면 안 되잖아? 이걸 밝히는 건 그래서 알피 보를 안 좋아하는 게 정당하다고 우기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부분까지 트집 잡을 만큼 유난을 떨면서 레미즈를 본다는 소리를 하려는 거다. 알피 보가 뭐 그렇게 완전 활짝 웃은 것도 아니었음. 되게 조심스럽게 수줍게 좀 웃었을 뿐인데 내가 별 쓸데없는 트집을 다 잡는 거고 알피 보는 좋은 발장 맞음. 


그런데 겨우 그거 한 번 웃었다고 별로네=_=했던 눈으로 이런 브링 힘 홈을 보고 나니 뭐라 할 말이 없는 거라. 발성이고 뭐고 다 떠나서 적어도 알피 보는 빵은 훔칠 것 같잖아. 알피 보의 도덕성이 의심된다는 게 아니라 그런 극단적이고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 있을 것 같았다는 말임. 반면에 햄슨은 빵같은 건 훔칠 리가 없을 뿐더러 나중에 마들렌 사장님으로 돌아와서 빵집이 파산 위기에 놓인 걸 구해줄 발장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단순히 유능하고 선한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 나는 저 자비를 몰랐던 빵집 주인과 달리 이토록 자비롭다는 우월함을 만끽할 것 같은 느낌. 그러니 이제는 알피 보에게 사과해야하나ㅠㅠ 하지만 난 아직도 거기서 웃었던 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ㅠㅠ


콤 윌킨슨도 알피 보도 존 오웬 존스도 햄슨도 다 좋은 발장이잖니, 비교질 하지 말고 각자의 아름다움을 즐기면 안 됨?하는 이성적이고 옳은 말에도 수긍을 할 수가 없는 게 아니 노래와는 별개로 난 이 발장을 인정할 수 없음.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ㅠㅠ 곡 소개할때 리더의 노래라고 할 때부터 응? 브링 힘 홈이? 싶었지만 그래 뭐 그런 자기 희생도 리더의 덕목이니까...하고 넘어갔는데 역시나ㅠㅠㅠㅠㅠ 진짜 왜 이렇게 부르셨지? 이날 분위기가 영 꽝이었나? 부시가 듣는 데서는 영혼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만큼 그렇게 싫었나? 왜? 어째서? 도대체 왜??? 


그래서 이 충격에 햄슨 그만 파기로 했냐하면 아니다. 그랬으면 굳이 이걸 쓰고 있을리가. 사실 이 브링 힘 홈 본 건 벌써 몇달 전 일이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레미즈 덕으로서는 까고 싶은데 심정적으로 지금 파기 시작한 분을 깔 수는 없고 하지만 다시 들어봐도 이건 발장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는 혼란의 가운데 실드 쳐주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까는 건 이해하지만 사실 이분은 훌륭한 바리톤이란다, 못 믿겠으면 이거 들어보렴하고 이런 거 저런 거 추천을 해줬는데 무서워서 The Music of the Night은 못 들었고 앞으로도 안 찾아볼 거고궁금해서 찾아봄  다른 거 찾아보고 1차로 안심하고, 더해서 브링 힘 홈은 이 뒤로 다시 안 부르시는 것 같아서 2차로 안심하고 넘어갔다. 이후로 불렀대도 별로 알고 싶지 않음. 구글에서 잊혀질 권리 신청을 제3자가 제기하는 것도 받아주면 저 브링 힘 홈 영상 접수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되니까 그냥 치료제 차원에서 안심 시켜준 노래중에서 하나.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별이던 시절의 Largo al Factotum. 

이렇게 자기 전공 잘하는 분이 왜 그랬을까. 사실 요즘 베르디 작품 하느라 좀 까여서 그렇지 메트 아카이브에서 데뷔 때부터 공연 평론들 쭉 찾아보면 조연하던 시절부터도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예쁜 진짜 별오브별 맞는데 브링 힘 홈은 왜 도대체 왜?


훌륭한 바리톤인건 알겠지만 노래 성격이 너무 달라서 치유가 덜 되는 것 같으니 비슷하게 아들 집에 데려가려는 노래를 보자.







05 잘츠부르크 라 트라비아타의 Di Provenza il Mar il Suol. 

내가 하느님이면 저 발장 기도는 안 들어줘도 이 제르몽 기도는 들어줄 듯. 아, 혹시 햄슨도 마리우스가 싫었나? 그래서 영혼 없이 불렀나?? 

아냐, 그래도 브링 힘 홈 때의 발장은 마리우스가 어떤 놈이라도 구해올 마음이었어야 했어. 코제트가 사랑하는 놈이니까ㅠㅠ 

 

햄슨 팬들은 이걸로 치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레미즈 덕으로서는 이걸로는 치유가 안 되니까 콤발장도 모셔옴.







이거 보고 있으니까 레미즈가 너무너무너무 그립다.

특히 OST 하나 안 내주고 세월 지나 여름 가자 사라진 내 초연 레미즈ㅠㅠㅠㅠㅠㅠㅠㅠ예쁜 앙상블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끝난지가 1년인데 아직도 OST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OST 내줄 때까지 생각날 때마다 울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도 닦고 코도 풀고 나서 덧붙이는데 그래도 저 브링 힘 홈이 아주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걸 보기 전까지는 베르디 바리톤 아닌데 베르디 작품 한다고, 드라마틱 바리톤 아닌데 드라마틱 바리톤 배역 맡는다고 그렇게 격하게 까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니 이 분이 베르디 무덤 발로 차고 인증한 것도 아닌데, 베르디 유령이 무대에 난입해서 너 내 작품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 말고 마음을 열고 보면 될 것을 왜들 그러시나 언제까지 로시니만 하다 가란 말인가ㅎㅎㅎ하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모두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브링 힘 홈 덕분에 그런 벽이 허물어졌다. 내 맥베스가, 내 시몬이, 내 이아고가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겠음. 내 마음에 콤발장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마음에도 각자의 맥베스가, 시몬이, 이아고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내가 저 브링 힘 홈을 보고 받은 충격을 베르디 덕들은 2시간 넘게 받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대문자로 베르디 하지 말라고 외치는 저들의 마음을 알겠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보니 그럼 까인다고 떨면서 파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의 평온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저 브링 힘 홈도 나름의 의미는 있었음. 


게다가 브링 힘 홈에 충격을 받아봤자 이미 늦은 게,

그 사이 96샤틀레 돈 카를로도 보고 09취리히 토스카도 보고 번스타인이랑 한 말러도 보고 무엇보다도 이걸 봐버려서.









01 취리히오페라하우스 맥베스.


뱅코우의 자손들이 결국 왕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보고 쓰러진 건데 여기 맥베스가 참...

평은 그냥 그렇고 연출이 특이한 것 같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질러서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가...

맥베스가 예쁘고...가련하고...예쁘고...예쁘고 예쁜데다가 예뻐서......

이것만 안 봤어도 브링 힘 홈을 출구 삼아 나올 수가 있었는데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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